조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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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계엄령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독감의 일종인 코로나 19가 사그라질 것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겨울 학기를 흐지부지 종료한 영천의 문화센터에서는 각 강사들에게 재료비를 반환하도록 조치했고 새롭게 시작하는 여름 학기 정원을 반으로 감축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로 했다. 은행 계좌로 반환되는 액수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도 컸지만 생활에 직접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것이 실감나서이다. 이제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는 상례화가 됐다. 2주일 이상 동네서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은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하에 마스크 없이 서로 대화를 한다. 2주일이란 기간은 이제는 상식이 된 코로나 19의 잠복기간이다. 물론 그들이 모르는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한 경우에는 사정이 또 달라지겠지만. 그러므로 서로를 위해서도 모두 조심한다.
4월과 5월은 농촌에서 가장 바쁜 계절이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생동하면서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비료를 주고 약을 치기도 한다. 봄꽃들은 활짝 폈다가 벌써 졌고 이젠 여름 꽃들이 봉오리를 품고 있다. 봄꽃과 여름 꽃 사이를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는 것은 장미다. 동네의 이 담 저 담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줄장미며 각색의 장미들과 역시 장미과의 하얀 찔레꽃이 질병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초여름의 정취를 맘껏 뽐내고 있다. 이곳저곳 보이는 뽕나무에서는 검붉게 익은 오디가 한창이다. 아마 이 동네에서 제일 먼저 선을 보이는 열매는 오디가 될 것 같다. 복숭아 열매들은 벌써 적과 시기를 지냈고 튼튼한 과일로 성숙할 것을 선택받은 놈들만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우리 집 텃밭은 점점 반 꽃밭으로 바뀌고 있다. 마늘과 양파 합해서 두 이랑, 상추와 고추, 파, 도라지, 방풍나물, 호박, 오이, 토마토, 참외, 수박 합해서 두 이랑, 그 네 이랑만 채소일 뿐 다음은 모두 꽃밭이다. 귀촌 네 번째 해인 지금 텃밭의 모양이 제대로 갖춰져서 기분 좋다. 우리 부부가 먹을 만큼만 채소 모종을 샀기 때문이다. 고추가 종류 별로 세 모종씩, 호박 오이가 종류별로 두 모종씩 상추도 붉은 상추와 푸른 상추 두 종류로 세 모종 씩 등이다. 벌써 오이도 상추도 수확해서 먹고 있다. 토마토는 위로 뻗게 지지대를 받쳐 묶어 주었고 밑의 잔가지는 다 잘라 주었다. 작년엔 토마토가 정신없이 자라서 나중에는 토마토 있는 곳엔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것을 경험 삼아 넉넉히 자리를 잡아 주었다. 지난해 알뿌리를 얻어 심은 붉은 칸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뿌리를 갈라 여러 곳에 심었더니 모두 움이 텄다. 애기 칸나 잎은 처음 땅을 뚫고 나올 때부터 초록 큰 잎이 뚜렷해서 눈에 띈다. 대신 뒷마당에 심은, 진짜 농부들한테 부탁해서 심은 알뿌리들은 흙 속에서 썩어 버린 게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내 손이 무슨 마이더스의 손인 양 신기해서 보물처럼 들여다본다.
그래! 드디어 해 냈어. 이젠 나도 농부가 된 거야!
반면 꽃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씩씩하게 자라는 놈들이 있다. 작년에 많이 피었던 코스모스이다. 텃밭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나온 코스모스를 전부 한 군데에 모아서 코스모스 밭을 만들어 주었다. 깻잎 역시 심지 않았는데 여러 군데서 꼭 자기처럼 생긴 예쁜 떡잎을 내민다. 맨드라미와 백일홍 쪽으로는 씨도 뿌리고 모종도 심었는데 씨는 거의 발아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채송화 씨도 감감 무소식이다. 내년에 다시 시도해 볼 수밖에.
참! 옥수수, 씨(?) 뿌려서 자라는 놈 얘기 좀 해보자. 작년에 수확한 옥수수 중 다섯 자루를 예쁜 갈색 수염이 달린 채로 묶어서 고택의 서까래에 매달아 놓았다. 겨우내 고택의 품위를 유지시켜 준 그 옥수수를 유튜브에서 본 대로 한 자루만 알을 손톱으로 벗겨서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놓았다가 텃밭 끄트머리에 심었다. 내가 즐겨 먹던 그 옥수수 알이 씨가 되어 다시 그 커다란 옥수숫대가 된다는 건데 며칠 안 돼 전부 움이 터서 떡잎이 나오는 게 아닌가? 너무 촘촘하기에 몇 개는 옮겨 심을 정도였다. 이것은 성공!
우리가 조성하고 있는 과일나무 정원인 동림원 얘기도 해 볼까? 이곳은 처음부터 유기농 농업을 하려고 생각했었다. 토양 소독을 위하여 땅 전부에 간수 빠진 오래된 바닷소금을 뿌린 것을 필두로 5톤짜리 물통에 바이오 볼을 넣어 정원에 물을 공급하려는 것이다. 바이오 볼이란 일명 그린 볼이라고도 하는데 농구공 크기의 속이 뚫린 초록색 외양을 하고 있다. 원적외선을 나노 공법으로 추출한 친환경 소재로 볼을 만드는데 이 볼을 한 시간 정도 물속에 놓아두면 물의 성분이 유해균을 죽이고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유용한 물로 바뀐다고 한다.
이러한 최신 기법을 적용시키는 위에, 센서와 타이머가 부착된 관수 모터에 스프링클러와 점적 호스를 연결해서 급수를 자동화한 스마트 팜 농법으로 물을 항상 넉넉히 주도록 하고 농약은 천연 농약 위주로 최소한만 사용할 계획이다.
모든 과정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순조롭지 않다. 땅 속에서 퍼 올리는 지하수가 대형 급수 통으로 들어가고 그 통 속의 물이 최소 한 시간 동안 바이오 볼과 함께 있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그 시간 후에 준비된 물이 빠져나와 스프링클러로 우리가 미리 정한 시간에 방사되도록 자동화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각각 용량이 다른 몇 개의 모터가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고 그 사이에 10톤의 물을 실은 물차가 묘목에 물을 공급하느라 이삼일에 한 번씩 와야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동림원이 훌륭하게 제 기능을 발휘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희망이 첫 번째 삽에 이어 두 번째 삽을 뜨게 만드는 이유다. 이른 봄의 냉해에 상당수의 묘목을 잃었고 가뭄을 견디지 못해 움이 트지 않고 말라 버린 묘목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도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어려운 시절이므로, 그러므로 더욱, 가장 소중한 것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