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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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선 각종 현금 살포성 지원과, 국민 전 가구당 100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키로 함으로써 여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현금 약효(藥效) 직방효과를 누렸다.
이 효과는 포퓰리즘의 본격화를 가져왔다. 여권 대선 잠룡(潛龍)은 물론이고 야당의 비상관리인인 김종인까지 한 술 더 뜬 가세로 포퓰리즘 열풍이 일고 있다.
국민들은 환영해야 할지, 우려해야 할지 아직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일부 남미 국가와 그리스 이탈리아 등이 극심한 포퓰리즘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머지않은 훗날 우리의 일이 아닐까 걱정이 태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포퓰리즘적인 정책은 곧 닥칠 대선(大選)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피할 수 없는 국민적 어젠다로 등장했다.
서민가계가 아파트를 장만하려 한다. 몇 평짜리를 사야할지, 내가 가진 돈은 얼마이고 은행에서는 얼마를 융자받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수입 규모에 적정한 액수인지, 원리금 상환 부담은 감당 수준인지 식구들은 몇 달간 머리 맞대고 심사숙고한다.
마지막 가족회의에선 허리띠 졸라맬 방안을 논의한다. 좀 힘들더라도 내 집 마련을 위해 몇 해 고생하자고 각자 마음다짐을 한다.
서민생활도 이럴진데, 국가 살림이야 어떻겠는가. 나라 지도자들이 우리 서민가계의 가장보다 수만 배 걱정이 클 것이다.
과연 재정정책의 재원 마련, 갚을 방안, 허리띠 졸라 맬 대책은 제대로 세워가며 정책을 추진하는지 걱정이다.
지도자들이 모두 선심성 정책 들고 나와
다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여권 지도자들, 이낙연 이재명 김경수 김부겸은 물론이고 야당의 김종인비대위원장까지 발벗고 포퓰리즘적 정책을 들고 나온 형국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기본소득의 경우, 전국민 1인당 한 달에 10만원씩을 준다면 연간 60조원, 50만원씩 준다면 311조원이 필요하다.
1인당이 아닌 가구당 월20만원을 지급하면 연간 34조원, 월50만원이면 86조원이 소요된다는 계산이다.
이들 지도자들이 도입을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한번 지급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지난번 재난긴급지원금에서 보았듯이 현금 살포성 지원은 마약이나 다름없다.
포퓰리즘적 현금 지급은 국민을 타락시킬 수도 있다. 정치세력은 이를 악용해 집권을 노릴 것은 뻔하다.
문제는 이같은 정책 추진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이다. 경제가 잘 돌아 세금이 많이 걷히면 좋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빚을 내야 한다. 우선 국채 발행인데, 과도하면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경기호전에 의한 조세수입 증가 말고는 각종 세금을 올리는 증세(增稅)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자고로 증세엔 극심한 조세저항이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기존 시행중인 복지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방안이 있다. 수많은 현금 지급성 복지 항목 중 없앨 것은 없애고, 줄일 건 줄이고, 통폐합할건 통폐합해 효율성을 높이고 이중성 낭비성을 개선해야 한다.
이것 또한 이미 혜택을 받는 계층으로부터의 심한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국방비를 포함한 공공부문에서의 과감한 세출구조 조정은 필수적인 과제다. 하나 하나가 쉽지않은 숙제다. 정치지도자나 정당이 손대기 싫어하는 분야다.
결국 현금 살포성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려먼 국채발행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데, 국가채무비율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채무비율이 급속 상승, 재정건전성이 악화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국채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자금조달 코스트가 높아진다. 그러면 자연히 신규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게 된다. 이러면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신용등급을 낮춘다. 국제신용도 추락을 의미한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 등이 그런 전철을 밟아 오늘날 어려움이 심한게 아닌가.
마약 같은 현금 살포 정책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진행으로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수준이다.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 생산인구가 감소하게 되고, 세입이 줄어드는 한편 노인층에 대한 의료 복지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재정수입은 줄어드는 데 지출 수요는 급증하니 재정건전성은 급속 악화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의 임기는 짧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세력들은 집권을 위해 온갖 포퓰리즘 동원에 물 불 안가린다.
표나 인기를 얻기 위해 단물을 제공하고, 과제는 일단 뒤로 넘겨놓고 본다.
포퓰리즘 현금살포로 국민들을 타락시키고, 책임은 뒷 정권 혹은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습성이있다.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나, 기대하기 어렵다. 지도자들의 양식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면 공론화(公論化)를 통해 널리 지혜를 짜내 최상의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증세건 복지시스템의 정비건 재정건정성의 확보건 국민적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돌입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 정책이 누가 집권한 시기에 도입됐으며, 정책 책임자는 누구였는지를 명확히 기록해두고 후대 역사가 책임을 묻도록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역사의 엄정함을 인식한다면 정책 판단에 조금이라도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필자 약력
(전)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기금관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