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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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고생했으므로 이제 아름다운 날씨를 즐길 자격이 있다. 모든 농부가 흠뻑 적셔진 논밭을 바라보며 웃음 지을 여유가 생겼으리라. 전업 농부가 아닌 귀촌 주부도 예쁘게 가꾸어진 앞뒤 뜰과 50평 텃밭이 자랑스러워 미소가 절로 얼굴에 피어난다. 맘껏 즐기고픈 행복한 기분이었는데 아뿔사, 비가 오지 않고서는 알지 못 했을 문제점이 나타났다. 조성하고 있는 동림원에 물 빠짐이 순조롭지 못한 점이 발견된 것이다. 배수 구거를 설치하고 배수로를 다시 구비해야 하는 일이 새로이 남았다.
코로나 19의 시대지만 계절과 함께 하는 농촌은 절기대로 농사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지난 주 6월 3일에 우리 추곡 동네에서 통일 쌀 손모내기 행사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와 함께 열렸다. 전래의 풍습대로 돼지머리 앞에 빳빳한 현금이 마음 속 염원과 함께 수북이 쌓였다. 올해도 풍년이 들게 해 주시고 이 통일 쌀로 북녘 동포들을 배불리 먹게 하길 바라나이다.
모내기로 벼농사가 시작이라면 거둬들여야 할 작물도 있다. 조금씩만 심었지만 지난겨울에 심어 추운 겨울을 지낸 마늘과 양파는 이제 거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비가 온 후에 뽑으면 쉽다고 했는데 손으로 뽑아 보려니 그리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이럴 때 낫을 써야지. 왼손으로 연장을 써본다. 왼쪽 근육도 써줘야 되니까. 봄에 심은 하지 감자 또한 궁금하다. 일주일이면 하지인데 잎은 성하지만 과연 땅 밑에서 잘 크고 있을까? 3월도 중순경에 감자를 심은 것 같은데 석 달 만에 다 커져서 수확한다고? 신기하다.
신기할 일로는 꽃씨 심은 일이 있다. 꽃모종만 사다 심다가 5월 말 경에 꽃씨를 심어보자 싶었다. 텃밭에 자리가 좀 나서 뭘 할까 하다가 맨드라미와 백일홍 꽃씨를 각각 2000원에 사서 심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기다렸다. 꽃씨 봉투 겉면에 -4월과 5월에 파종하시오-란 말만 보고 며칠 안 남았네, 부랴부랴 심은 기억이 난다. 백일홍 꽃씨도 작았지만 맨드라미 꽃씨는 채송화 꽃씨처럼 깨알보다 작았다. 20일이 지나도록 싹이 안 텄다. 거의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자고 마음먹은 게 어제 같은데 드디어 두 놈 다 움이 텄다.
잡초 속에서 나는 용케 그 놈들의 실낱같은 움을 구별해냈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냥 알았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귀티(?) 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2000원 짜리 봉투에서 40개 움이 텄다면 3000원 짜리 모종 값으로 해서 12만원 값어치가 된다. 아니 2000원이 12만원이 될 수 있다니? 60배의 부가가치를 벌어들이는 셈이 아닌가? 물론 시간이라는 변수는 고려에 넣지 않았지만........시골서는 이런 주먹구구가 어디서나 통한다는 게 재미있다. 정확하게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에서는 이런 셈법이 통하지 않았다. 가끔씩 모종을 사기도 하고 다 큰 화초를 사기도 했지만 1회성이었다. 땅이란 것은 도회생활의 환경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시멘트가 환경이라면 시골에서는 흙이다. 시멘트는 생명을 품을 수 없는 대신 깔끔하고 위생적이다. 시멘트에서는 벌레가 생기지 않고 대신에 먹을거리도 생산할 수 없다.
요사이 보는 책으로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작, 출판사 보리, 류시화 옮김) 이 있다. 이 부부는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더불어 전원생활을 그대로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들 중 스코트는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고 헬렌은 그를 보내고 또 한 권의 책을 저술한 후 90세가 넘어 세상을 떠났다. 그들 생활의 기록이 이 책이며 그 외 시리즈로 몇 권의 책을 더 저술했다. 그들은 말한다.
-일생의 어느 시점까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 또 자기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로서 시골 생활을 추천한다, 동양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마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성인이나 은둔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조화로운 삶 p200)
니어링의 책을 보면 자연 속에서 살면서도 언제나 자연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나처럼 시골 생활을 몰랐다가 지금처럼 자연에 푹 빠져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된다.
또 니어링은 말한다. -직업적으로 보아도 소설가나 시인이 시골에 사는 것은 도시의 복잡한 자리를 양보하는 의미로 보아도 무방하다. 직장이 따로 없는 문필가가 시골에 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의 책 p199)
코로나 19 이후 앞으로의 시대에는 시골에서 살면서 직장 일과 가정 일을 양립하는 직업군이 더 많이 나타나리라고 생각된다. 휴대폰만 가지고 어디서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의 동림원처럼 스마트 팜 조성 자체는 힘들지만 일단 조성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화 율을 높여 인력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도시에서도 농업을 할 수 있다.
코로나 19 이후의 세상에서 자연과 농업과 시골과 같은 단어들은 좀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인간이 동물로서 자연의 한 부분이므로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역사를 잊지 않고 항상 보호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 역병도 인간이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시골의 6월은 창포물에 머리 감고 자연의 바람에 몸을 맡겨 마르게 하는 그런 날씨다. 아침에 빨래해서 뒷마당 높은 줄에 걸어 뽀송뽀송 마르게 하고 저녁 되기 전에 걷어 그 깨끗하고 따스한 마른 빨래 속에 얼굴을 폭 파묻고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날씨다.
우리에게 삶이란 누구나가 몸 바쳐 벌여나가는 사업과 같다고 (니어링의 책 p 198) 작가는 말했다. 사람들이 사업을 벌이면 집중해서 이익을 창출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에도 많지 않다. 인생 그 자체가 사업이라면 분기별로 또는 해마다 결산을 할 것이고 죽을 때 우린 삶의 마지막 결산을 하게 될 터이다. 그 때 우리 입에 감도는 미소를 기대하면서 언제나 조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