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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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장기화에 지친 시민에게 최소한 여유공간 필요
선릉을 비롯한 조선왕릉은 일반 시민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입장료를 받고 관람을 허용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로 입장한다. 이른 아침부터 산책 삼아 입장하는 시민들이 많지만 임금을 모신 엄숙한 곳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이 앞서 혼잡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반려견 입장과 음식물 반입이나 소란 행위를 금지하는 등 규칙이 엄격하다.
조선왕릉은 밀폐되지 않은 야외 개방 공간으로 인파가 밀집하는 곳도 아니어서 입장객들이 마스크만 제대로 착용하면 코로나 19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인식해왔다. 지난 3월과 4월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했을 시기에도 벚꽃이 만발하는 구내 일부 관람코스만 이용을 제한하거나 통행이 엇갈리지 않도록 방향을 지정했을 뿐이다. 시민들도 이같은 조치와 위생수칙에 잘 따라 최소한 왕릉에서의 접촉으로 코로나 19가 전염됐다는 사례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29일 궁·능 관람을 일시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당초 6월 중순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코로나 19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자 사실상 무기한으로 중단했다. 그 대상을 4대 궁과 조선왕릉, 종묘 등으로 했는데 실내공간이 포함된 궁과 종묘는 관람을 중단할 소지가 있겠지만 넓은 녹지공간으로 조성된 왕릉을 포함시킨 조치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방역 당국은 탁구장 피트니스클럽 등 실내운동시설을 위험 공간으로 분류해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고 가급적 불필요한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이런 조치가 단기간에 끝나면 좋겠지만 지금 추세로는 코로나 19 방역 조치가 장기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시민들에게 무조건 외출과 모임을 금지하고 체육 활동까지 삼가도록 요구만 할 게 아니라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왕릉처럼 비교적 안전한 곳은 입장을 허용해 녹지공간을 산책하도록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
왕릉 관람을 중단한 결과 담장 바깥쪽 산책로 공간이 시민들로 지나치게 붐비는 풍선효과를 보이고 있다. 선릉의 경우 담장 밖에 합성수지로 포장한 보행로가 있어 평소 달리기를 하거나 반려견을 동반한 주민들이 즐겨 찾았고, 담장 안쪽의 관람로는 주로 노인층이 산책하는 한적한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선릉 입장이 중단되면서 폭 1m에 그치거나 대부분 3m 안팎에 불과한 좁은 보행로에 인근 지역 노인들과 달리기를 하거나 반려견을 동반하고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새벽부터 붐비는 곳이 됐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주민들과 걸음이 느린 노인들이 엇갈려 지나치는 모습이 때로는 위태롭게 보인다.
왕릉까지 관람을 중단하고 입장하지 말라는 조치는 공무원 편하게 막아놓고 보자는 행정편의주의에 가깝다. 책임질 일은 없고 근무자도 편한 일석이조의 발상이라고 쾌재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코로나 19 접촉 감염의 우려가 거의 없는 데도 당국이 관람을 중단시켜 한적한 산책의 기회를 봉쇄하고 복잡한 담장 밖 보행로로 내쫓는 과잉 조치로 보이기 십상이다.
공공 도서관의 제한 운영 조치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대부분 공공 도서관들이 코로나 19 영향으로 열람실 운영과 대출시간을 조정하는 제한 서비스를 하고 있으나 서울시 교육청 산하 감남도서관 등은 서비스 운영을 모두 중단하는 임시휴관에 들어가 있다. 방역을 위해 열람실 운영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장기간 외부활동을 줄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도서대출 서비스 등은 재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비대면으로 대출·반납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자동화기기도 도입된 만큼 전면 휴관보다는 제한 운영으로 이용자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유독 더위가 심했던 6월을 지나 찜통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접어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되는 어려운 시기에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최소한 필요한 활동 공간을 보장하고 독서를 통해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도록 공공시설의 세심한 운용이 필요하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