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코로나 19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온지 반년이 다 되고서야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처음의 경악하던 심정으로 절망하고 한탄하던 시기를 지나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고서는 순하게 치료에 임하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 질병이 이전의 메르스나 사스처럼 쉽게 사라질 성질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 인류가 진짜 독한 놈을 만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홀연히 내일의 신규 확진자 수가 0명이 되고 그 상태가 한 달이 되어 가면서 이 질병이 종식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꿈이며 환상이라는 것 또한 맨 정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유는 세계가 한 그물로 엮여져 있기 때문이다. 질병의 진정한 종식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아야 하니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이제 인류는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야 할 수 밖에 없다고 마음을 바꿨다.

사실 질병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나 같은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일도 아니다.

질병은 노화와 함께 오므로 이미 익숙한 것이다.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기억력이 퇴화되고 이명이 들려온다. 그러면서 사는 것이다.

사실 그런 노화와 질병의 고통이 노인들에게는 개인적인 것이었는데 코로나라는 존재는 그런 고통을 전 인류에게로 확대한 것이다.

젊은이들, 어린이들이 안쓰럽다. 그들은 그런 질병을 이렇게 일찍부터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직접 그 질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걸릴까봐 지레 생기는 고통이라는 점이 더 안타까운 것이다.
 
코로나와 더불어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어떻게 대처해야 그나마 고통이 줄어들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많은 석학들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쏟아낼 뿐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하는 세상에서 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조언을 전해주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우주와 닮은 모습의 무엇과도 가까이 해 보자는 것. 그것은 시와 음악, 이야기, 그림등과 같은 예술도 될 수 있고 명상, 종교, 철학이나 사색과 같은 깊은 통찰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침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다. 우주와 가장 닮은 모습인 자연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된다. 우주란 누구나 그 속에 들어있고 어떤 식으로든 관계되어 있지만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고 한없이 열려 있으며 영원한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는가? 우리가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자연에서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서 우리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우주를 상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코로나 19의 시절을 지나면서 피폐해진 심신을 우주와 닮은 자연 속에서 위로 받기를 바란다.
 
오늘, 비가 축축이 내리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시 하나를 지었다.
 
잎이 가득한 나무 옆에
죽은 나무가 있다.
붉은 칸나 꽃 아래에
바랭이가 천지다.
 
레이 챨스의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가
가슴을 적신다.
언젠간 사라지고 말 것들이
왜 이리 사랑스러운지.
 
제목을 지으려고 고심하다가 “사랑할 수밖에”라고 지어 보았다. 나는 소설가이므로 소설이라면 쉽게 느껴지는데 시는 어렵다. 그래도 나이 들면서 점점 시를 쓰고 싶어졌다. 시를 쓰려 하면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내일 갚을 빚도, 내일 해야 할 일들도 생각나지 않는다. 자연은 시 소재의 마르지 않는 보고다. 이렇게 단순해지고 싶다. 단순해지면서 자연의 경이에 빠지고 싶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신비로움’이다. 그것은 모든 과학과 예술의 원천이다. 더 이상 ‘경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이 어떤 책에서 이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하지만 과학자가 이 말을 했다는 것이 내게는 “경이롭다”

신비로움, 경이로움, 이러한 단어는 심장이 뛰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의 이 엄혹한 시절에도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에서 키우고 있던 화분 속의 연약한 식물이 한 점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아도 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테고, 좀 더 넓은 들판으로 나올 수 있다면 주위의 모든 자연이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의 대상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골에서 살고 있다는 조건이 내게는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 같다. 우주의 신비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 우주의 영원함과 가장 닮은 자연이 내 주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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