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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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표현은 자기 마음 속을 드러내는 일
이런 막가파식 언행(言行)은 가뜩이나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에 ‘코로나19 사태’와 ‘부동산 이슈’ 등 숱한 난제(難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심신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몰상식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난 굵직한 막말 참사(慘事)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지난 10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투 의혹'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원색적인 욕설을 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 대표는 이날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黨)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얘기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답한 뒤, 기자를 노려보다 버럭 "ⅩⅩ자식 같으니"라고 말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이 대표는 박 전 서울시장 영결식이 끝난 13일 강훈식 수석대변인을 통해 ‘대리’사과를 해서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기자협회의 사과촉구 성명서 발표에도 불구하고 열흘이 지난 20일 현재까지 ‘기자 욕설 사건‘에 대한 본인의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또 박 시장 사망 후 닷새 만에 성추행 의혹에 대해 사과를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법률상의 용어인 ‘피해자’라는 용어 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써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아울러 서울시도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 발표 과정에서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피해호소인’ 표현에는 고소 사실을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하고 싶은 의도가 담겼다는 여론의 거센 비판에 결국 며칠 뒤 ‘피해자’로 고쳐 부르는 촌극(寸劇)을 벌였다.
역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개최 행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내 지시 절반을 잘라먹었다",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했다", "말 안 듣는 검찰총장" 등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 입길에 올랐다.
추 법무장관은 또 미래통합당 조수진 의원이 제기한 '링컨 콘티넨털 차량 의전' 의혹에 대해 17일 '의정 경험 없는 분', '낮잠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발언, 조 의원으로부터 "제기된 의혹들엔 답하지 않으면서 훈계하려는 듯한 태도, 이런 게 속칭 '꼰대' 소리 듣는 법"이라는 맞바람을 맞았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최근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자 ‘똘마니들의 규합’이라고 비난하는 등 걸핏하면 자극적인 표현으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미래통합당 정원석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지난 16일 비대위 회의에서 박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섹스 스캔들'이라 지칭해 논란을 샀다. 이에 통합당은 다음날 긴급 비대위원회를 소집, '섹스 스캔들'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 비대위원에 대해 경고 및 활동정지 2개월 권고를 결정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한 배현진 미래통합당 의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난타전을 벌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12일 “머리에 우동을 넣고 다니냐” “똥볼이나 차고 앉았다”는 진 전 교수의 노골적인 비난에, 배 의원은 이튿날 “막말 혹은 X만 찾으니 안타깝다”고 받아쳤다.
대구지검 진혜원 부부장검사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박 전 시장 등과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과 함께 “권력형 성범죄를 자수한다. 성인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했다” “팔짱 끼는 것도 추행이에요?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추행이라니까!”라는 등 고소한 피해자를 조롱하는 글을 올려 여성변호사회가 대검에 징계를 요구했다.
방송 진행자와 패널(panel)의 일탈(逸脫)도 빼놓을 수 없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진행자 이동형씨는 15일 개인방송에서 “지금 피고소인은 인생이 끝났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그런데 자기(고소인)는 숨어 가지고 말이야”라면서 “미투는 (중략)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설립한 TBS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박지희 아나운서도 지난 14일 팟캐스트(Podcast)에서 “(박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피해자에 대해) 4년 동안 대체 뭐 하다가 이제 와서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진행자인 노영희 변호사는 지난 13일 MBN ‘뉴스와이드’에 패널로 나와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논란) 이해가 안 된다. 저 분이 6.25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쏘아서 이긴 공로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충원에 묻히냐”고 비판, 논란이 일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막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린 학생에서 사회 지도층까지 욕설과 조롱이 섞인 천박한 말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사회 지도층의 막말이 줄어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그 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막말과 독설(毒舌)에 취해 자칫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막말 현상’을 공동선(共同善)의 약화와 사회 양극화의 심화, 대중 매체의 발달로 인한 상업화의 가속화 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진단한다.
특히 일부 정치인과 오피니언 리더의 막말은 각종 이슈를 요란스럽게 치장해 화젯거리로 만들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인지도를 높이는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막말에 노출되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돼 혈당과 혈압 수치를 급격히 상승시켜 심한 경우 뇌중풍과 심근경색 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의사들의 얘기다.
‘말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막말은 언어폭력이자 인격 살인이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설파했다. 말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속담에도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혀를 잘못 놀려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처세(處世)의 달인(達人)’으로 유명한 후당(後唐)의 재상 풍도(馮道·882~954)가 쓴 ‘설시(舌詩)’도 같은 맥락이다.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신상이 편하리라.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
자꾸만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편승해서 막말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공동체 회복을 위해 막말의 추방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의 국제적인 종합전자기술기업인 ‘파나소닉(Panasonic)’ 그룹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는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대그룹을 일으킨 ‘경영(經營)의 신(神)’으로 불렸던 인물로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와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가 95세까지 장수하면서 회사 임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여러분 덕분입니다.”
‘막말 공화국’이란 오명(汚名)에서 벗어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명예를 다시금 회복하기 위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격을 존중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뭣보다 이런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고 질서와 예의, 도덕률이 회복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에 겸손과 배려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인격(人格)은 언격(言格)이 결정한다. 한 사람의 품격(品格)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언어(言語)를 보면 된다. 언어의 품격, 즉 언격이 그 사람의 품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이 부드러우면 언어도 부드럽고, 마음속이 거칠면 언어도 거칠게 마련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의 언어에는 부드러움에다 진정성과 책임감까지 담겨 있어야 한다. ‘산속의 모난 돌을 동글고 고운 조약돌로 변신시켜주는 것은 날카로운 정(釘)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시냇물’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무릇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언어는 국가의 기본이며 기초질서를 형성한다. 이들의 공식적인 언어가 혼란스러우면 당연히 사회는 혼란하고 국가가 무질서하게 돌아가게 된다.
이 시대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언어가 화합과 화해, 그리고 조화롭다면 통합과 통일이라는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들의 정제(精製)되고 절제(節制)된 언어가 정치의 품격, 사회의 품격, 나라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