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수해(水害)가 상상을 넘어 심각하다.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엊그제 서울 한 구청의 새마을 부녀회 회원들은 집이 물에 잠긴 수해 마을을 찾아 하루 종일 피해 주민과 함께 가재도구를 씻고 방을 닦고 왔다. 많이 힘들고 피곤했지만, 피해 이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다. 부녀회 회원들은 낼 모레 다시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시각은 8월12일 오전이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문재인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수재(水災) 현장에 있기를 기대한다. 피해 할머니와 함께 냄비며 숟가락을 씻는 퍼스트 레이디의 모습을 보고싶다.
 
짐이며 가재도구 어느 것 하나 성할 것 없이 물에 잠겨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수재민에게 국가 통수권자는 이미 그곳에 다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치적(治績) 자랑에 앞서 수재민 옆에
 

이 시기에 경제사정이 어느 나라보다 좋고, 집값이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자화자찬(自畵自讚)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직장생활 30년 후 은퇴한 70대 초반의 시민은 강남 어느 동네 한 아파트에서 20년 살아왔다. 이 아파트가 수년전 재건축돼 새집에서 행복하게 살아오다 최근 고민에 빠졌다. 집값이 올라도 그만 내려도 그만인데, 작년부터 집값이 크게 올랐다.
 
나쁠꺼야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다. 재산세며 종부세며 각종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연금과 얼마간의 저축으로 그냥 그냥 살아왔는데 부담이 급증하니 대책이 없다.

집을 팔아야 하나, 팔면 어디로 가나, 정든 이웃과 헤어져 늘그막에 갈 곳이 막막하다. 집값은 정부 잘못으로 오른 것 같은데 죄 없는 서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한숨만 나온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 최측근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서울 반포 아파트가 11억3천만원에 팔려 차익이 8억5천만원이라고 한다. 오래 살아 차익이 컸으니 잘못된 게 없다는 청와대 설명이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국민들에게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 드러난 소위 지도층의 행태를 보면 가관이다. 대통령 코밑에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비서진은 물론이고 장 차관 국회의장 국회의원 등 지도급 인사들의 다주택 보유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한지 오래다.
 
대통령의 어느 수석비서관은 2주택을 지키고, 직책을 버렸다. 직(職)보다 집이 더 좋았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마냥 피곤하다. 화난다.
 
적폐청산 내로남불에 국민 스트레스
 

국민들을 짜증나고 피곤하게 만드는 행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이른바 적폐청산 과거정리로 나라가 뒤집히는 것 같더니, 작년부터는 검찰개혁으로 온 나라가 법석이다. 개혁한다며 법무부장관에 임명한 조국은 온갖 비리와 내로남불 성 언행으로 국민의 지탄을 못견디고 하차했다.
 
뒤를 이은 추미애장관은 거칠 것 없이 윤석열검찰총장을 식물화하고 있다. 개혁이란 명분은 항상 근사하다. 그러나 국민은 다 안다. 개혁의 뒤편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권력 싸움이고, 권력유지를 위한 몸부림임을 눈치 챈지 오래다.
 
“썩은 내 나는 검찰개혁”(문재인 대선캠프 공익제보위원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 “애완 검사”(김웅 국회의원). 같은 험한 말들이 난무하는 상황에 국민은 피곤하다.
 
더욱 서민들을 화나게 하는 건 ‘국민을 볼모로 한 정책실험’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주도성장정책과 최저임금인상이다. 이 두 정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 났다고 보여진다. 소득격차를 좁히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이 정부의 의도는 빗나가도 훨씬 빗나갔다.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만 더 힘들게 만들고 만 것이다.
 
부동산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세상 어느 정부가 한 가지 어젠다에 2년 여 동안 22차례의 대책을 내놓고도, 효과를 못보고 상황은 악화일로다. 자신들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어가고 있다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정부가 제시하는 통계수치와 시장에서 느끼는 온도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편한 통계만 이용하고 시장 체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경실련 측은 문재인정부 들어 중위 아파트 시세가 50% 이상 올랐다는데, 정부는 11% 올랐다고 우긴다. 이 와중에서 쏟아지는 갖가지 무리한 정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형국을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의아한 침묵도 문제다
 
의아한 침묵도 국민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박원순서울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한 사건을 두고도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고인은 죽음으로 속죄했는지 모른다. 잘못이 없었다면 왜 죽었겠는가. 그럼에도 청와대와 이 정부는 고인의 평생 업적 부각에 신경 쓸 뿐, 피해자에 대한 위로나 진상조사에 대한 의지가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호의호식한 세력에 대해서도 정부는 말이 없다. 윤미향에 대한 침묵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의아해 한다. 미사여구 좋은 말 잘 골라 코멘트하는 정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남북 문제에서도 그렇다. 문대통령에 대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 남북협력 상징 건물을 폭파해도 그만이다. 남쪽이 수해로 난리인 판에 북쪽 댐 물을 방류하면서 한마디 통보도 않는 북측에 왜 항의하지 못하는가. 합의사항이 아니던가. 국민 자존감을 넘어 주민 생사가 걸린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에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국가원수 말을 충실이 이행하고 있다. 감사원장은 이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원전 문제에 정면으로 대들며,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문재인대선캠프 출신 인사들인 김광두교수 신평변호사, 그리고 정권과 성향이 같았다고 볼 수 있는 경실련 참여연대(김경률) 민변(권경애) 진중권교수 등이 등을 돌려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금태섭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의 입에서도 국민 의중을 살핀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진보적인 학자로 알려진 최장집 강준만 조기숙 교수등 식자층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고 있다.
 
국민들은 맘 편히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화나게 하지 말고, 스트레스 주는 언행 삼가길 바란다. 5년 임기의 정권에 국가 전체의 틀을 바꾸라고 위임한 건 아니다. 틀을 바꿔야 한다면 5년 10년 20년을 두고 온 국민이 지혜를 모으고, 컨센서스를 이룬 다음에 추진해야 한다. 국가 중대사를 어느 특정세력의 집권이나 정권연장 차원에서 추진하면 안된다. 역사의 준엄함을 인식해야 할 터이다.
 
 

키워드

#권순직 칼럼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