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의 융통성과 정책의 유연성이 필요한 때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민심(民心)이 요동치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임에도 여론의 매서운 회초리가 한기(寒氣)를 느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추월당했다.

총선 압승 후 3개월만에 대통령 지지율이 32%포인트나 급락하고 철옹성을 자신하던 여당이 제1야당에 밀린 것은 ‘민심의 바다’가 준엄함을 무섭게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긍정 평가는 39%인 반면, 부정평가는 53%로 긍정치 보다 14%포인트 높았다.

긍정률은 취임 후 최저치, 부정률은 최고치로 모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 즈음이던 작년 10월 셋째 주와 같은 수치다.

직무수행 부정 평가자는 부정평가 이유로 '부동산 정책'(35%)을 1순위로 꼽았다. 이는 전주보다 2%p 높은 수치로, 6주째 부동산 문제가 부정 평가 이유 1순위에 올라 있는 상태다.

한국갤럽측은 "정부는 6·17, 7·10, 8·4 대책, 임대차 3법·부동산 3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이르기까지 최근 두 달간 부동산 문제에 집중해왔지만, 집값과 임대료 상승 우려감은 여전히 크다"며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의 '집값 상승세 진정' 발언, 청와대 다주택 고위 참모진 논란 등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바라는 이들에게 적잖은 괴리감 또는 실망감을 안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통합당 등 보수계열 정당이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도를 앞선 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0∼14일 전국 유권자 2,515명을 대상으로 한 주간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4.8%, 통합당은 36.3%로 집계됐다. 통합당이 민주당을 1.5%포인트 앞섰다.

이런 현상은 뭣보다 부동산 관련 복잡한 세제(稅制), 중과세(重課稅) 등 일련의 규제 조치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근간(根幹)인 사유재산을 과도하게 옥죄는 것으로 판단한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민심 악화로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여당 의원들은 계속해서 “조만간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하고 있다.

진성준 의원은 14일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가 되면 체감하게 될 것이다. (집값이) 떨어졌다는 보도도 나오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이 잘못돼서 그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하고, 당이 부동산 정책을 수정하거나 속도를 조절해야 반등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며 “그럴 생각이 전혀 없고 그렇게 평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과열현상을 빚던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제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호언했다.

이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부동산정책 실패로 크게 상처받은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상황인식과 판단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청와대는 신문도 안보고 여론청취도 안하느냐?”고 말했다.

이 정부의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겸 기재부장관도 지난 14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59주 연속 상승중인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쏙 뺀채 “부동산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낙관론을 펼쳐 정부가 일부 통계만을 근거로 정책효과를 부풀리고 있다는 뒷말을 들었다.

홍 부총리는 또 지난달 실업자 수가 113만8000명으로 7월 기준으로는 1999년 이후 21년만에 최악인데도 “작년 같은 달이 아니라 바로 전달과 비교하면 5월부터 고용상황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등 그동안 정부가 쓰지 않던 새로운 기준(전월 대비)을 제시하며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자화자찬(自畵自讚)에 치중, 오히려 경제상황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야당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여당 및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부동산 정책 실패로 국민들의 아우성과 여당지지도 급락에도 아랑곳 않고 “또다시 다른 나라 이야기하듯 한다”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수도권 13만 2천호 공급 등을 골자로 한 ‘8.4 부동산대책’을 비롯해 지금까지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무려 23번이나 나왔으나 별무효과(別無效果)란 지적이다.

하기야 이 정권의 ‘호언장담’과 ‘자화자찬’ 습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부터 국무위원, 여권 고위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역대급이다.
무슨 정책발표나 수습책 제시 등 이슈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니 말이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 표출이야 필요할뿐 아니라 이해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빈번한, 과도한 자신감 표출은 잦은 헛기침처럼 오히려 듣는 이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반증(反證)으로 비쳐져 역효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진정으로 자신감이 있다면 ‘소리없이 강하다’는 광고 문구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신있다”는 허언(虛言)을 남발하지 않는 법이다.

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자신감은 지난해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라고 발언한 것을 비롯, 올해 초 신년기자회견에서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의 연장선상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018년 7월 당 대표 경선에서 ‘20년 집권론’을 펼친 데 이어, 지난해 1월 16일엔 “20년 집권도 짧다. 할 수 있으면 더해야 한다”는 호언장담을 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거듭되는 부동산정책 난맥상으로 대표되는 국정폭주(國政暴走)와 불통인사(不通人事)에 실망과 우려를 나타내는 민심 폭발에도 꿈쩍않는 청와대와 여권 고위관계자의 철학(?)과 소신이다. 여전히 국정기조와 정책방향을 바꿀 뜻이 없다며 “긴 호흡으로 뚜벅뚜벅 국정현안을 챙겨나갈 것”이라는 발언이 시사하듯이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오기(傲氣)와 아집(我執)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위대한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은 공직자(公職者)로서 가장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야 할 한 글자로 ‘畏(외, 두려워함)’를 거론했다.

“공직자는 늘 두려워해야 한다. 내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를 두려워해야 하고(畏義·외의), 내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해야 하며(畏法·외법), 내가 공직을 수행함에 백성들의 마음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두려워해야 한다(畏民心·외민심).”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律己) 6조(六條)’ 제1조 칙궁(飭躬·바른 몸가짐) 치현결(治縣訣)>

공직자가 의로운 길을 포기하면 이익을 탐하게 되고, 국법을 어기면 자신의 독단(獨斷)으로 일을 처리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뒤로하면 결국 파국(破局)에 이르게 된다는 요지다.

선생의 당호(堂號) ‘여유당(與猶堂)’도 같은 맥락이다.

"여(與, 조심함이여)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두려워하고 유(猶, 머뭇거림이여)함이여! 사방에서 너를 엿보는 것같이 네 이웃을 두려워하라(與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여혜 약동섭천 유혜 약외사린)"<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중>

또한 형법서(刑法書)인 ‘흠흠신서(欽欽新書)’의 책 이름을 '흠흠(欽欽)'이라 지은 이유를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서문에 적고 있다.

백성의 삶을 자신의 일처럼 느꼈던 다산 선생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뼈저린 고뇌를 거듭하였다.

그래서 평생 매사 외(畏·외두려워 함), 여유(與猶·조심하고 머뭇거림), 흠흠(欽欽·삼가고 삼감) 등 옷깃을 여미는 ‘여리박빙(如履薄氷·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처세에 극히 조심함)’의 자세를 화두(話頭)로 삼았던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는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위대한 경구(警句)다.

라틴 속담에 '복스 포풀리, 복스 데이(Vox populi, vox Dei)'라고 했다. '민(民)의 목소리는 신(神)의 목소리'라는 뜻이다.

‘민심지욕(民心之欲) 천필종지(天必從之)’. ‘백성이 원하는 곳으로 하늘도 따른다’는 뜻이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이 좋은 정치를 하려면 이것에 정통해야 한다고 권하는 중국 고대 서경(書經)에 있는 글이다.

맹자(孟子)는 군주의 자리를 주고 뺏는 건 하늘이라며, “하늘은 반드시 민의가 따르는지 살핀 다음 덕이 있는 자를 군주로 골랐다”고 했다.

‘민심(民心)과 바다‘의 비유는 제왕학(帝王學)의 으뜸이라는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명재상 위징(魏徵)이 당 태종에게 올린 간언(諫言)에 나온다.

“민심은 바다와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으며 뒤집을 수도 있다.”

배가 권력이라면 바다는 민심에 비유하고 있다. 날씨가 나쁘면 민심인 바다는 크게 동요할 것이고 배는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엎어버리기도 하듯이 민심은 늘 지지해주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위정자(爲政者)가 방심(放心)하면 가차없이 응징한다는 말이 무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모두 국민의 믿음을 얻는 정치, 겸손하고 공정한 정치를 말하고 있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니 위정자(爲政者)는 국민과 절대자(絶對者)를 두려워하면서 정치를 하라는 가르침이다.

무릇 위정자와 정책은 단견(短見)과 아집(我執)을 버리고 민심과 환경변화에 따라 융통성(融通性)과 유연성(柔軟性)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발 현장(現場)을 중시하고 기본(基本)을 돌아보며 실용주의자(實用主義者)가 되라는 현인(賢人)들의 충고(忠告)를 흘려듣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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