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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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을 걸어 안부를 묻는 김에 주소도 알아 놓았다. 여름이 끝나는 즈음 등장하는 과일이 있다. 샤인머스켓이라고 이름도 멋진 청포도다. 그 청포도를 우리 동림원을 후원하는 후원자와 아울러 특별 비회원 여러분께 배달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후원자 전원에게 복숭아 한 상자씩을 보냈다. 장마 중에도 그렇게 달콤하게 맛이 든 복숭아가 있었냐고 모두들 칭송했다. 물론 동림원에서 생산된 과실은 아니다. 생산은커녕 어린 묘목이 잘 크라고 두어 개씩 달린 열매마저 다 따 주었다. 후원자에게 보내는 복숭아는 우리의 비밀 병기이다. 아마 우리 동림원에서는 앞으로도 그렇게 맛있는 복숭아를 생산해 내지는 못할 것이고 그만한 양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이번에 두 번째로 보내는 샤인머스켓도 충분히 완숙된 최상품만 보낼 예정이다. 특별 비회원이라 함은 매달 후원금을 보내진 않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분들을 말한다. 일 년에 한 번 과일을 보낸다니! 얼마나 근사한가! 몸이 힘든 어르신들, 선배들, 남편을 일찍 잃은 친구의 부인들. 형편이 아직 어려운 젊은 부부들이 그 대상이다.
전화하고 안부를 물으면서 포도를 보내 주겠다고 말하자 상대방 부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겨우 채근해서 이유를 알아보았다. 오랫동안 만나던 부부 모임의 한 부인이 전화해서 옥수수 택배를 받았다고 자랑하더란다. 작년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 까지는 그녀도 모임의 그 멤버로부터 옥수수를 받았는지라 너무나 기가 막혔다고 한다.
어쩌면 그럴 수가!
앞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남자가 작고했다고 해서 그 부인을 외면해 버리는 사람의 마음이 무섭고, 모임을 오랫동안 같이 하면서 사정을 뻔히 아는데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동료의 상처를 헤집는 그 여인은 더 무서웠다. 그렇게 코로나 19보다도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앞으로 ‘옥수수 택배 한 상자’는 우리 부부 사이에 자주 회자될 것 같다. 남편이 술이라도 먹으러 나갈 때 내가 말할 것이다.
“여보, 설마, 내가 옥수수 택배 한 상자를 받지 못하게 하지는 않겠죠?” 그러면 남편은 할 수 없이 말 할 것이다.
“알았어요. 술 많이 안 먹고 올게요.”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흘린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꿔 흘리게 한 우리 부부가 자랑스럽다.
무서운 사람들에게 상처 받은 이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는 것이 이렇게 보람찰 수 있을까? 샤인 머스켓은 과일이 흔한 우리 영천에서는 정말 ‘자그마한’ 선물이다. 서울 사람들은 유독 이 과일을 좋아한다. 신품종이고 예쁘고 맛있고 그리고 비싸다. 내 부자(?)친구 하나는 과일 가게에 가서 샤인 머스켓 한 송이를 들어 올리는데 부들부들(?) 손이 떨렸다고 엄살을 부렸다.
이렇게 ‘자그마한 선물’을 힘든 사람들에게 많이 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고 ‘산타 크로스’가 아닐까? 그런 선물을 주는 자체가 행복이다. 누구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온 세상을 다녔다고 하는데 결국은 홈 스위트 홈이 행복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그건 좀 이기적인 것 같고. 나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행복이란 누구에게 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비싸고 커다란 선물이 아니다. ‘자그마한’ 선물을 힘들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줄 때 이 세상은 좀 더 밝은 곳이 될 것 같다.
남편은 옛날부터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갓난이 어린 딸 하나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서 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한 그 부인 대신 친구의 어머니 생신을 수 십 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챙겨준 남편이다. 친구의 딸은 예쁘게 자라 결혼해서 지금은 동림원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베푸는 남편에게서 배우는 게 많다. 베푼다는 것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을 슬프게 만드는 무서운 사람들 역시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은 무서운 사람 천지다. 이상이라는 시인이 쓴 시에 -세상에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가 있다고 했는데 꼭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이상은 세 번째 아해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가 있는 무서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 번째 아해에 대해서 말이다.
가끔씩 나는 ‘옥수수 택배 한 상자’를 들먹일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표정을 살필 것이다.
만약 그 부인의 남편이 천국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일에 파묻혀 건강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당신이 무시당하는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죽지 않았을 거요.”
그것이 모든 남편의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