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올해는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더니 태풍 하구핏과 겹쳐 엄청난 폭우로 변하고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온 재해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이미 코로나 19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차에 물난리까지 겹치니 모두가 아비규환이다. 이 자리를 빌어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휴대폰은 통하는지라 이곳저곳 전화를 걸어 안부를 알아보았다. 전라도 지역에선 물이 집안까지 들이찼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픈 이들이나 웃어른들이 여름 보내기가 힘들 것이다.

전화을 걸어 안부를 묻는 김에 주소도 알아 놓았다. 여름이 끝나는 즈음 등장하는 과일이 있다. 샤인머스켓이라고 이름도 멋진 청포도다. 그 청포도를 우리 동림원을 후원하는 후원자와 아울러 특별 비회원 여러분께 배달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후원자 전원에게 복숭아 한 상자씩을 보냈다. 장마 중에도 그렇게 달콤하게 맛이 든 복숭아가 있었냐고 모두들 칭송했다. 물론 동림원에서 생산된 과실은 아니다. 생산은커녕 어린 묘목이 잘 크라고 두어 개씩 달린 열매마저 다 따 주었다. 후원자에게 보내는 복숭아는 우리의 비밀 병기이다. 아마 우리 동림원에서는 앞으로도 그렇게 맛있는 복숭아를 생산해 내지는 못할 것이고 그만한 양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이번에 두 번째로 보내는 샤인머스켓도 충분히 완숙된 최상품만 보낼 예정이다. 특별 비회원이라 함은 매달 후원금을 보내진 않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분들을 말한다. 일 년에 한 번 과일을 보낸다니! 얼마나 근사한가! 몸이 힘든 어르신들, 선배들, 남편을 일찍 잃은 친구의 부인들. 형편이 아직 어려운 젊은 부부들이 그 대상이다.

전화하고 안부를 물으면서 포도를 보내 주겠다고 말하자 상대방 부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겨우 채근해서 이유를 알아보았다. 오랫동안 만나던 부부 모임의 한 부인이 전화해서 옥수수 택배를 받았다고 자랑하더란다. 작년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 까지는 그녀도 모임의 그 멤버로부터 옥수수를 받았는지라 너무나 기가 막혔다고 한다.

어쩌면 그럴 수가!

앞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남자가 작고했다고 해서 그 부인을 외면해 버리는 사람의 마음이 무섭고, 모임을 오랫동안 같이 하면서 사정을 뻔히 아는데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동료의 상처를 헤집는 그 여인은 더 무서웠다. 그렇게 코로나 19보다도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앞으로 ‘옥수수 택배 한 상자’는 우리 부부 사이에 자주 회자될 것 같다. 남편이 술이라도 먹으러 나갈 때 내가 말할 것이다.

“여보, 설마, 내가 옥수수 택배 한 상자를 받지 못하게 하지는 않겠죠?” 그러면 남편은 할 수 없이 말 할 것이다.

“알았어요. 술 많이 안 먹고 올게요.”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흘린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꿔 흘리게 한 우리 부부가 자랑스럽다.

무서운 사람들에게 상처 받은 이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는 것이 이렇게 보람찰 수 있을까? 샤인 머스켓은 과일이 흔한 우리 영천에서는 정말 ‘자그마한’ 선물이다. 서울 사람들은 유독 이 과일을 좋아한다. 신품종이고 예쁘고 맛있고 그리고 비싸다. 내 부자(?)친구 하나는 과일 가게에 가서 샤인 머스켓 한 송이를 들어 올리는데 부들부들(?) 손이 떨렸다고 엄살을 부렸다.

이렇게 ‘자그마한 선물’을 힘든 사람들에게 많이 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고 ‘산타 크로스’가 아닐까? 그런 선물을 주는 자체가 행복이다. 누구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온 세상을 다녔다고 하는데 결국은 홈 스위트 홈이 행복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그건 좀 이기적인 것 같고. 나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행복이란 누구에게 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비싸고 커다란 선물이 아니다. ‘자그마한’ 선물을 힘들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줄 때 이 세상은 좀 더 밝은 곳이 될 것 같다.
 
남편은 옛날부터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갓난이 어린 딸 하나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서 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한 그 부인 대신 친구의 어머니 생신을 수 십 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챙겨준 남편이다. 친구의 딸은 예쁘게 자라 결혼해서 지금은 동림원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베푸는 남편에게서 배우는 게 많다. 베푼다는 것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타인을 슬프게 만드는 무서운 사람들 역시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은 무서운 사람 천지다. 이상이라는 시인이 쓴 시에 -세상에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가 있다고 했는데 꼭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이상은 세 번째 아해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가 있는 무서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 번째 아해에 대해서 말이다.
 
가끔씩 나는 ‘옥수수 택배 한 상자’를 들먹일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표정을 살필 것이다.

만약 그 부인의 남편이 천국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일에 파묻혀 건강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당신이 무시당하는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죽지 않았을 거요.”

그것이 모든 남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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