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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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상식 무시, 强대强 대결로 일촉즉발‥세계평화 위협
저마다 ’스트롱맨(strong man)’을 자처하는 독불장군 같은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 사태 악화의 주범이다.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완력(腕力)을 과시하는 ‘스트롱맨(Strongman)’ 리더십이 문제인 것.
우선 최대의 뇌관(雷管)으로 떠오르고 있는 ‘남중국해(南中國海)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미·중 갈등을 보자.
중국군은 지난 26일 남중국해에 미사일 3종 세트를 쏘아 올렸다. ‘항공모함 킬러’ 둥펑(東風ㆍDF)- 21D는 최근 미 함정의 훈련 해역을 겨냥했다. 중국 내륙 칭하이성에서 쏘아 올린 사거리 4000km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둥펑-26B는 괌에 있는 미 해군 기지와 중국군 훈련 해역을 정찰한 미 구축함에 대한 경고였다. 또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ㆍJL)-2A까지 발사했다.
이런 미사일이 군사훈련에서 동시에 발사된 건 과거에 없던 일이다. 홍콩 명보는 “미국이 중국 본토를 목표로 공격할 경우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을 그은 뒤 9단선 내 곳곳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의 90%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주변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기자화하고, 광범위한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려는 이웃국가를 위협한다고 비난해 왔다.
미·중 양국은 그동안 무역갈등, 코로나19 진원지 공방, 트럼프 행정부의 주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 등 통상·외교 마찰에 이어 군사적 긴장까지 유례 없는 삼각파도에 직면해 있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갈등을 오히려 정치적 호재로 계산, 긴장의 수위를 갈수록 높여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자칫 남중국해의 국지적·돌발적인 충돌이 ‘화약고(火藥庫)’로 비화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중국과 일본 간의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列島)를 둘러싼 갈등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의 접속수역에 해경국 소속 선박들을 100일 넘게 연속 진입시켜 당사국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센카쿠 열도는 미일 방위조약 대상으로 재확인된 지역으로 태평양국가의 좌장을 자임하는 미국으로선 남중국해와 마찬가지로 ‘항행(航行)의 자유’ 문제가 걸려있는 안보·경제적 측면에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미국·러시아 간 긴장 국면.
지난 28일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Su-27 전투기 두 대가 미군 폭격기 한 대에 근접 비행해 아찔한 상황이 빚어졌다.
미국이 강력히 반발한 가운데 러시아 측은 국제항공법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밝혔지만 최근 미·러간 긴장 속에 러시아 측의 의도적 위협 비행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 미 공군과 아프리카 미 공군의 제프 해리지언 대장은 성명을 통해 “흑해 상공 국제 공역을 비행 중이던 B-52 폭격기에 러시아 군용기 두 대가 약 30m 거리로 접근해 위협했다”고 밝혔다.
지난 27일에도 러시아 Tu-142 해상초계기가 미국 알래스카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미 공군이 F-22전투기를 보내 맞대응한 바 있다. 또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5일 시리아에서 발생한 양국 장갑차의 충돌 사고로 미군 8명이 다치자 책임 공방을 벌였다.
중국과 인도간 국경분쟁도 화약고 가운데 하나. 지난 6월 15일 양국 접경지대인 인도 북부 카슈미르 동쪽의 라다크 지역 갈완 계곡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충돌, 인도 군인 20명이 사망했다.
특히 중국군이 전투 때 사용한 '못이 달린 쇠파이프' 등이 공개되면서 인도 국민들이 반중국 대규모 시위를 통해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등 인도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 양쪽에 등거리를 유지해 온 인도의 외교정책과 대 중국 경제교류가 변곡점(變曲點)을 맞이할 중대 위기사태라고 진단했다.
오랜 앙숙관계인 터키와 그리스간 갈등도 폭발직전 상황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26일 그리스를 향해 "터키는 동지중해, 에게해, 흑해에서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터키와 그리스는 동지중해 천연가스 개발과 해양 경계 등을 놓고 분쟁 중이다.
그는 "터키는 지중해와 에게해, 흑해에서 우리가 얻을 권리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취할 것이고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그리스)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한다면 우리 앞에 서라"고 경고했다.
터키는 동지중해에 군함과 시추선을 보내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하고 있는데, 친(親)터키 성향 북키프러스와 터키가 해당 지역 대륙붕을 개발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그리스는 1차 대전 직후 맺은 로잔 조약에서 에게해 대부분이 그리스에 귀속된 만큼 터키의 행동은 불법이라고 맞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인 그리스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스는 군함을 보내 터키 시추선을 감시 중으로 이 과정에서 양측 군함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에르도안 터키 정부의 독불장군식 행보는 최근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Hagia Sophia)을 86년 만에 박물관에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지위를 변경시킨 데서도 드러난다.
스트롱맨 지도자들은 대외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정치에선 더욱 가관이다.
정적을 독살하려고 시도하는가 하면, 2인자를 왕따시키고, 대선 경쟁자인 상대방을 폄훼 모욕하는 인신공격이 목불인견(目不忍見) 수준이다.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온 변호사 출신 나발니(44)는 지난 20일 러시아 시베리아의 톰스크공항 카페에서 차를 마신 뒤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이동하다가 의식을 잃었다.
비행기가 비상 착륙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나발니는 가족의 요청과 독일 인권단체의 지원에 따라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독일 시민단체가 곧바로 의료용 항공기를 보냈지만 러시아 병원은 하루가 지나서야 나발니를 내줬다. 체내 독극물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끈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독일 샤리테 병원은 성명을 내고 "나발니가 독살공격을 받은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스트롱맨의 원조(元祖)’격인 KGB 출신 푸틴 대통령은 비밀경찰 조직을 반대파 제거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태자당(太子黨) 출신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경쟁했던 '공청단(共靑團)계'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36년간 이어져 온 집단지도체제 대신 시진핑 1인지배 체제가 공고화하면서 공식 권력 서열 2위 답지 않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당하는 등 갈수록 왕따 당하는 분위기다.
'부패 척결'을 이유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숙청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임을 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FT는 전문가들을 인용, 시 주석이 연임을 넘어 중국의 '국부'라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에게만 부여됐던 공산당 '주석'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수의 중국 정치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국가 주석, 군사위 위원장 등 현 직잭을 모두 유지하지 않고 마오쩌둥에게만 부여됐던 당 주석직을 차지해 종신집권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스트롱맨 정치지도자.
지난 27일 미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대선후보 수락 연설 장면이 단적인 예.
백악관을 정치에 끌어들이지 않는 관례를 무시하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장소로 선택한 트럼프는 자신을 링컨 대통령에 빗대며 70분 동안 노마스크 청중 1500명 앞에서 경쟁자인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41번이나 거명하며 시종 물고 늘어졌다. 그는 특히 중국과 바이든을 싸잡아 공격했는데, ”지난 47년간 조 바이든은 미국의 일자리를 중국과 많은 다른 나라로 보내는 데 찬성했다“며 ”그가 당선되면 중국이 이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또 지난 2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세계적 수준의 ‘체스 플레이어(chess player)’로 비유한 뒤, 이날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바이든이 ‘체스 마스터(chess master)’인 전 세계의 스트롱맨(독재자)들과 맞서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못말리는 스트롱맨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방역당국 통제에 응하지 않으면 사살할 것”,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언론을 상대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언론인은 합법적 암살 대상”이라고 경고하는 등 공포정치를 일삼고 있다.
또 10년째 헝가리를 철권통치 중인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질병 확산 억제를 위해 정부가 언제든 계엄령에 준하는 통제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의 나치 독일의 ‘수권법(授權法)’에 버금가는 ‘코로나19 방지법’을 제정하고, 사법부와 언론 등을 장악해 ‘빅테이터(빅토르와 독재자를 뜻하는 딕테이터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 집요하게 일본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해 온 ‘스트롱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집권 자민당이 총재 임기를 늘리면서 2021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게 됐으나 신병으로 중도하차 했다. 최근 일본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갱신한 아베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상의 이유(궤양성 대장염 재발)로 총리직 사임을 전격 선언했다. 그러나 후임 총리 역시 아베의 전철(前轍)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신냉전(New cold war) 시대’에는 미ㆍ중ㆍ러 갈등 외에도 변수가 많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현 세계를 냉전(Cold war)시대 보다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드론, 초음속 미사일, 인공지능(AI) 기술의 군사적 전용 등이 곳곳에서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의 스트롱맨 지도자들이 이런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대오각성(大悟覺醒),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세계 평화와 인류의 번영이 보장될 것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포퓰리즘(populism)’ 현상은 세계화 이후 세계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잇달아 확인시키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이동의 자유 제한 등 기본권 제한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트롱맨들의 운신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트롱맨 리더십은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외교적으로 흥미는 끌지만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세계정세가 불안해진다”고 평가했다.
그러기에 31년 전,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두 거두(巨頭)가 만나 “동서가 냉전 체제에서 새로운 협력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선언한 ‘몰타 회담’의 정신이 새삼 각별하게 다가온다. '평화와 화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오랜 ’냉전시대(cold war)’를 종식시키고 ’열전시대(hot war)’를 막아낸 이들 같은 진정한 거인(巨人)의 출현을 대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