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서 추후 재논의키로 했으나 추진력 상실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의료 정책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불거진 의사 파업이 4일 당정과 대한의사협회(의협) 간의 밤샘 협상에서 어렵게 타결돼 수습국면에 들어섰다. 자고 나면 코로나가 무더기로 확산되는 엄중한 시기에 의료시스템을 뒤흔드는 의사들의 파업 소식은 환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위기를 느끼게 했다. 지방의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나왔다. 총파업으로 번지기 직전 협상타결로 흐름을 잡아 그나마 안도의 숨을 돌리게 한다.
 
이번 의정 갈등은 코로나와의 싸움이 한창인 와중에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등 4대 의료 정책을 제시하면서 불거졌다. 그동안 대선이나 총선 등 주요 선거를 앞두고 의료계가 요구해온 의료수가 현실화와 건강보험 개편방안 등이 여러 차례 부각됐으나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 끝나 의사들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였다. 지난 7월 정부가 4대 정책을 추진해 의료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의학계는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등에 칼을 꽂는 배신’으로 규정하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기에 파업이 시작되자 불안을 느낀 초기 여론은 환자를 떠난 의사들을 비난하는 쪽으로 크게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정부의 어설픈 대응과 해명이 자충수로 작용, 허점을 드러내고 의대생에 이어 전공의(인턴·레지던트)와 전임의(전문의 펠로), 교수진까지 의료 정책 부당성을 지적하는 파업과 항의 대열에 동참하면서 일방적인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부와 여당은 의사들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막상 정책이 제시되고 방침이 확고해지면 코로나 위기에 파업까지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혹 파업을 선언해도 국민 여론에 밀려 곧 돌아오리라고 예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심은 코로나를 상대로 사투해온 의료진의 헌신을 기억하며 정부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구태여 4대 정책을 불쑥 내밀어 의료진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선별진료소에서 애쓰는)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는 글을 올려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의료계 내부갈등을 조장한 게 아니냐는 의사들의 강한 반발이 따랐다.
 
공공의대 학생 선발을 둘러싼 시·도지사 추천과 시민단체 거론 등 보건복지부의 어설픈 해명은 여론을 오히려 자극했다. 정부가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영이 악화된 한국전력을 내세워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 설립하는 계획을 강행한 것처럼 공공의대 설립 구상에 무언가 다른 배경이 있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의료수가의 현실적인 조정을 외면한 채 건강보험 개편과 의사 수급의 정상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인식도 공감을 더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부동산 정책과 세금 등 민생에 직결된 주요 정책이나 법안을 처리하면서 보여준 독주가 여론의 경각심를 키웠다. 지금처럼 일사천리(一瀉千里) 독주를 방치하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다.
 
이번 의정 갈등은 의대생들이 거부한 의사 국가고시가 1주 연기되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 “이번 사태로 단 한 명의 의료진도 처벌받는 일을 원치 않는다”는 화해 메시지를 낸 뒤 접점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큰 흐름이 바뀌었다. 의협이 3일 단일 협상안을 마련, 당정과의 협상에 나서기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타결의 물꼬를 텄다. 정부와 여당은 일단 갈등을 봉합, 코로나 위기가 진정된 뒤 다음 기회에 다시 논의를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여당의 계산일 뿐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 핵심 정책은 물 건너간 일로 여겨진다. 의사들은 이번 대결을 통해 거대 여당의 독주가 가져올 폐해를 절감하고 다시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다졌다. 다시 논의를 시작한들 쉽게 물러설 여지는 없어 보인다. 협상타결 후에도 젊은 의사들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을 계속했다. 민심도 섣부른 정책이 가져올 폐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들 주장에 상당 부분 동조하는 분위기다. 의정 갈등과 관련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민심은 이제 정권에 등을 돌리는 전문가와 엘리트 집단을 보며 그 추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집권 초기부터 탈원전 정책에 원자력 산업계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대부분 등을 돌렸고 시장을 외면한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에 경제학자들도 반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보여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와 독주에 검사들과 법조계 인사들의 비난도 커지고 있다. 다수당 힘까지 더한 정권의 독주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국민은 지금 예의 주시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 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 한국신문협회 이사
△전) 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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