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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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4차 추경안에 포함된 ‘통신비 지원안’이 복병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증가한 점을 들어 통신비 지원으로 국민들의 가계에 도움을 주자는 설명을 내놨으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특히 국민의힘을 비롯한 6개 야당이 모두 반대 의사를 밝히며 통신비 지원안은 사실상 고립된 상태다. 정책 추진의 타당성과 합리성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검토해야 할 정책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 통신비를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이 장기화될 경우 당초 목표로 설정한 추석 전 4차 추경안 통과가 무산될 수도 있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는 22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4차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4차 추경안은 지난 11일 국회 제출을 시작으로 14일부터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간 상태다.
여야 합의에 따라 오는 1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제안설명과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어 19~20일 자료를 검토하고 21일 오전 추경심사소위원회를 가동, 22일 본회의에서 4차 추경을 처리하겠다는 게 여야의 합의 내용이다.
이 일정대로 4차 추경이 처리될 경우 일부 사업에 대해서는 추석 전 집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추석 전 집행사업은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4차 추경안 규모만 총 7조8000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네 차례에 걸쳐 총 66조8000억 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우리나라가 한 해 네 차례 추경을 편성한 건 1961년 이후 59년 만이다.
4차 추경 중 절반에 가까운 3조8000억 원은 이번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377만명에게 현금지원 방식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또 고용안정을 위해서 1조4000억 원, 저소득층 긴급 생계지원을 위해 4000억 원이 각각 투입된다.
논란을 부른 건 긴급돌봄 지원 패키지(2조2000억 원)에 포함된 ‘이동통신요금 지원’이다. 만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통산비 2만 원을 일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추산한 수혜 국민만 4640만명으로 소요 예산은 9280억 원이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경제·사회활동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한 만 13세 이상 전 국민 통신비 부담 경감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통신비 지원안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액수가 크지는 않더라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통신비를 지원해 드리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건의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4차 추경을 통해서 지급될 2차 재난지원금이 맞춤형 선별 지원으로 결정된만큼 전 국민 통신비를 통해 보편적 지급 성격을 가미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통신비 지원안이 이번 4차 추경 최대 뇌관으로 부상했다. 통신비 지원이 불러올 국민들의 가계 부담 감소 등 경제적 효과를 어필하고 있는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 시대전환, 기본소득당, 열린민주당 등 6개 야당 모두가 통신비 지급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민 다수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국민의힘부터 열린민주당까지 모든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며 “민주당만 아집을 부리고 있다”고 일갈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 최장욱 대표 역시 “통신비 일괄 지급은 취약계층에 두텁게 지원하자는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실질적 효과도 의심스럽다”며 통신비 지원안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9300억 원에 가까운 재정이 배정된 통신비 지원안을 바로잡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4차 추경 재원은 전액 국채로 마련됐는데, 기껏 빚을 내 확보한 돈을 정부·여당의 생색내기용으로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차라리 전 국민 대상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실시하자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통신비 지원안은 이동통신사가 먼저 통신비 중 2만 원을 감면해주고, 정부가 이를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국민 혈세로 통신사들의 배만 불려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신회사에서 돈이 2만원 들어가면, 그 돈을 가지고 통신회사는 그냥 원래 들어오는 돈을 쓸 뿐이다”라며 “이 돈을 가지고 오히려 소상공인들을 지원해 주면 그 돈이 2차, 3차 승수 효과를 낸다”고 밝혔다.
야당의 맹공에도 정부·여당은 통신비 지원안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민주당이 4차 추경 심사에서 야당의 반대 입장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22일 본회의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높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가 22일 4차 추경을 확정하기로 협의됐다고 하는 바, 이는 추석 전 추경 자금 집행 개시를 위한 사실상 데드라인”이라며 “국회가 이때까지 4차 추경안을 확정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