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윤덕인 사업본부장
이런 급격한 유통환경 변화에도 꿋꿋이 30여 년 전의 거래 방식 그대로 유통하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정부가 건설한 공영도매시장이다. 가락시장을 선두로 전국에 33개 공영도매시장이 있는데 전국 농수산물 거래량의 50%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을 해왔으나 최근 그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
도매시장의 거래는 주로 도매시장법인의 경매 거래로 이루어지는데 경매는 다단계의 물류체계와 대기시간 등 장시간 소요로 신선도가 생명인 농수산물의 상품성을 하락시키고 그날그날의 상품 반입량에 따라 가격의 진폭이 커서 구매자들이 상품을 안정적으로 구입하기가 어렵다. 특히 급성장하는 온라인 유통채널에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가격과 물량, 신선도 유지가 필수인데 도매시장에서는 이러한 수요를 맞출 수가 없어 신성장 유통채널에 판매는 극히 미약하다.
또한 이런 온라인 유통채널에 판매하지 못하는 상당수의 출하자는 도매시장에 출하 할 수밖에 없는데 높은 비용을 유발하는 경매제 구조에서는 출하자의 이익도 감소될 수밖에 없다.
공영도매시장의 이런 비효율과 유통비용을 증가시키는 원인을 초래하는 주된 이유는 공영도매시장을 관리하는 법인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약칭 농안법)이 경직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보 통신 매체와 물류의 발달로 유통경로가 다원화되고 신속한 유통으로 경쟁이 심화돼 기존의 상류 중심의 시장에서 비용 절감의 물류 중심 시장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도매시장의 거래 제도는 출하자의 상품을 도매시장법인만이 위탁받아 파는 수탁 독점의 경매거래제를 고수하여 품질 저하, 물류비용 증가 등 경쟁력 약화로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농안법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혁하려는 시도가 지난 20여 년 동안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농수산물 가격 진폭에 따른 파동 등 유통 구조 개선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되면 그때마다 도매시장 유통개혁이 개선과제로 선정되나 개혁 취지와 방향은 사라지고 단지 이해관계자의 이익 싸움으로 변질돼 결국에는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매번 실패로 끝나고 있다.
또한 어렵게 개혁하여 국회를 거쳐 입법화 하였으나 행정입법인 시행규칙의 또 다른 장애로 인해 개혁 법안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 및 도매시장법인 독점체제 완화를 위해 시장도매인제를 2000년에 도입하였다. 이 법에 따라 개설자는 해당 도매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여 운영하면 된다. 그러나 2012년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시가 시장도매인제 도입하려는 도매시장조례개정안에 대해 중앙정부는 ‘이해관계자 합의’를 조건으로 현재까지 승인하지 않고 있다. 2019년 대전광역시의 도매시장법인의 공모제를 도입하는 조례개정안에 대하여도 거래의 안정성과 이해관계자의 반대 등을 이유로 불승인했다.
유통개혁의 목적과 취지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이해관계자 충돌 회피’를 전제로 하는 이상 유통 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2010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도매시장법인의 과도한 독점구조 개선을 위해 도매시장법인 지정제를 등록제로 전환해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려 했으나 거래 혼란 우려로 이 또한 도입되지 못했다.
어느 유통학자가 ‘유통 여수(流通如水)’라고 하며 ‘유통은 물과 같이 흘러야 한다’고 했다. 유통은 막힘없이 흘러야 하며 특히 공공재인 공영도매시장은 더욱 건전한 경쟁을 통해서 거래하는 곳이어야 한다.
최근 일본 도매시장법의 획기적인 개정(2018)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농안법은 일본의 도매시장법을 거의 차용한 법이다. 일본은 개혁에 매우 보수적임에도 도매시장법인 수탁 독점 폐지, 상물 일치 폐지, 제3자 판매 허용 등 도매시장 거래를 효율성, 시장 지향성으로 전면 개정했다. 이는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도매시장이 따라가지 못하자 늦게나마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우리나라 개혁의 시발은 일본보다 20년 앞서 2000년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등 먼저 출발했으나 기득권, 이해관계자의 반대, 여러 가지 시행상의 장애로 인해 아직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공영도매시장은 공영재로 농수산물 유통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더 이상 유통개혁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농안법을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출하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개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도매시장 유통업무에 25년 넘게 종사하여 반성도 많이 하면서 이 시대적 소명에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