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장들 국민 사과성명 발표, 당사자는 침묵
국민정서 싸늘, 국시 둘러싼 공정성 논란 재응시 부정적

▲ 대학병원장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 관련 사과성명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 대학병원장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 관련 사과성명을 발표하기 앞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코리아=정창규 기자 | 득롱망촉(得隴望蜀)은 농(隴)서 지방을 얻고 나니 촉(觸)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삼국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의 유비가 한참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는 촉나라 북쪽에 연결되는 섬서성 남쪽 농 땅까지 쳐들어가 그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부하 사마의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를 뺏을 수 있겠습니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조조는 “인간이 만족하기란 쉽지 않아. 이미 농 땅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다”하고 말을 돌렸다. 조조 역시 그것이 너무 무리한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온 나라가 코로나19로 지쳐있던 8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총파업을 결정했다. 의대 정원 증원 등 정책 이슈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힘싸움이 본격화한 시점이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젊은 의사들의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실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전공의 6100명(인턴 1560명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4.8%인 5849명이 의협의 단체행동에 참여 의사를 밝힐 정도였다.

1차 집단행동 때는 일부 필수 인력들이 현장에 남았고, 교수와 임상강사들이 대체 인력으로 투입돼 진료 공백은 없었다. 하지만 14일 총파업 때 의사들의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의 국내 의사수, 취약지 공공의료 부족과 과목·지역 간 불균형 등 의사수급 불균형 현상, 감염병 등 국가 의료재난상황에서 대응인력 부족이 확인된 상황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로 볼 수 없다"고 그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 의사들이 지난 8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의료 4대악 정책추진 반대 전국 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 의사들이 지난 8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의료 4대악 정책추진 반대 전국 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그리고 정부와 협상이 정점을 찍던 9월. 정부·여당과 의료계가의대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의과대학생들을 대표하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의협과 당정의 졸속 합의를 주장, 의사국가시험(국시)도 포기하면서 까지 동맹휴학 투쟁을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리며 명분(?)없는 싸움을 이어갔다.

현재는 의료계 집단행동의 마지막 주체였던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을 중단했지만, 이들의 의사 국가고시(국시) 실기시험 재응시 문제를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애당초 이들은 단체행동을 사실상 중단하고 나서도 의대생들은 정부에 국시 재접수 기회를 요청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두달이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4인의 대학병원장(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의대생들의 의사국가시험(국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의대생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병원장 4인은 사과성명을 통해 대한의사협회 파업사태로 형성된 부정적 여론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시를 치르지 못한 의대생들에 대한 면죄부를 요청했다.

김영훈 고려대 의료원장은 “(내년에) 당장 27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은 심각한 의료공백”이라며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인으로서, 또 선배로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도 “이번 파업사태로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질책은 선배에게 하고 6년 이상 학업에 전념한 후배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줄 것을 국민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병원장들까지 나서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당사자인 의대생 커뮤니티에서는 “우리가 뭘 잘못했냐”며 병원장 사과를 비판하는 반응이 나왔다.

이들은 “정부가 알아서 해결할 일을 노친네들이 나서서 사과를 하냐. 어이가 없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병원장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심지어 국민을 ‘개돼지’ ‘냄비 근성’이라고 비하하고, 파업 여파가 잠잠해질 때쯤 국시가 허용될 것이라는 억측도 남무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형평성과 공정성의 이유로 “추가적인 국시 기회를 부여할 상황이 아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2차례나 시험 일정을 연기한 상황에서 의대생들에게만 추가 시험 응시 기회를 주는 건 다른 응시생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한 의사 파업과 국시 거부 의대생의 재응시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뜨거워 질수록 국민 정서는 반대로 냉랭하기만 하다.
▲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을 반대하며 집단휴진(총파업)에 나선 전공, 전임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8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로비 앞에서 한 전임의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을 반대하며 집단휴진(총파업)에 나선 전공, 전임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8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로비 앞에서 한 전임의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의대생이 사과글을 올렸지만 냉소적인 반응만 보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반성 없는 의대생들 여전히 형식적이다’이라며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커뮤니티 글에는 "집단의 목소리는 명분이 선의적이어야 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누군가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면서 "그들이 부린 욕심이 과연 자기들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는지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출석 자리에서 “의대생 몇 명의 사과만으로 국민의 반감을 돌리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현희 권익위 위원장도 “사회적 갈등 해결의 중추 기관으로서 국시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으나, 이번 문제는 절대적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국민 사과성명이 부정적 여론을 잠재울 진 미지수다.

정부는 다른 국가시험 응시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 재응시 기회를 주기 힘들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 중이다.

의대생들을 대표하는 대한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사과 의사를 내비치지 않고 있는 한 말이다.

온 나라가 코로나19로 지쳐있던 8월과 9월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멈추지 않으며 정부 정책을 무력화한 의대생들은 이번엔 의사국가시험(국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며 선배들을 앞세워 침묵(무언 無言)의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조조는 욕심을 추스르고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주인공 ‘이카루스’의 욕심이 빚은 형벌은 추락으로서 끝을 봤다.

의대생들은 동맹휴학과 국시 거부에 나섰던 것이 단지 밥그릇 투쟁이였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자문할 때다. 그 진정성은 국민들이 지켜보며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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