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코로나19의 팬데믹 와중에서도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국에서는 명절을 전후해서 대규모의 확산이 있을까 염려하여 귀향을 말리고, 대면 모임 취소를 권장하면서 조심하고 있다. 국민 스스로도 질병의 확산에 자신이 연루될까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큰 문제없이 고비를 넘길 듯싶다.
 
추석날, 서울에 있었다. 보름달을 보길 기대했지만 천둥과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비를 뿌리는 통에 단념하고 말았다. 부산에 사는 친척분이 보름달을 찍어 카톡으로 선물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가 아닌 모양이다. 덕분에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추석 다음날 영천으로 내려왔다. 버스 도착 시간이 저녁 7시 경이었는데 아니, 벌써 캄캄해져 있지 않은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앞에 쟁반보다 큰 황금색 달님이 나타났다. 가로등인가? 잠시 헷갈렸지만 이렇게 큰 가로등이 있을 리 없고, 바로 달님이었다. 달님, 달님. 소원 들어주세요. 가실 때, 코로나도 데려가 주세요. 아름다운 달빛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모두 소멸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퉁이를 돌 때까지 가슴에 손을 모았다.

다음날 아침 텃밭이랑 집 주변을 돌고, 내쳐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지난해라면 감나무마다 붉은 감이 잔뜩 열려 보기 좋았을 텐데.... 집마다 거의 빠짐없이 있는 감나무들의 몰골이 너무나 추레하다. 감나무 단풍 또한 얼마나 예쁜데.... 감이 없으면 감나무 잎새라도 붉게 물들었어야 하는데.... 감나무뿐만 아니다. 대추나무도 추레하다. 기나긴 장마가 모든 나무들을 병충해에 고통 받게 한 것 같다. 우리 집 주변, 90그루에 가까운 무궁화들도 시달린 기색이 보인다. 몇 번 더 약을 쳐 주었어야 했나. 하지만 약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토로하는 경우를 보았으니 전체적으로 수세가 약해져서 벌레가 더욱 기승을 부린 것 같다.

그래도 계절은 10월로 접어들었다.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도 불지만 아직 낮에는 뜨거운 햇빛이 남아있다. 만생종 사과 농사를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텃밭에는 아직 채소들이 자란다. 8월 하순에 심어둔 배추와 무도 무럭무럭 자랐다. 튼실해진 배추를 보니 지난번 태풍 때 그 연약한 모종이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마침내 뿌리 위로 끊어진 안타까운 모습이 생각난다. 막아보려고 종이컵도 씌어 보았는데 그마저도 날아가 버렸었다. 결국 몇 개의 모종을 보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배추 모종을 다시 살 때, 양배추와 케일이며 신선초, 쑥갓과 부추 씨앗도 사서 뿌렸는데 케일 빼 놓고는 전부 다 싹이 터서 잘 자라고 있다. 홍당무 씨앗도 시금치 씨앗도 뿌렸다. 모두가 내 샐러드 요리의 재료이다. 형님이 지나가다가 보고 무를 솎아 줘야 한다고 하면서 먼저 텃밭으로 간다. 그러니 나도 쫓아갈 밖에. 솎는 작업을 하는 김에 시금치도 솎았다. 솎은 연한 놈은 버리지 않고 반찬으로 해 먹을 터이다.
 
외국이 원산인 채소들, 예를 들어 고수라든가 비트, 콜라비도 우리 텃밭에서 잘 자라고 있다. 형님은 곧 추워져서 채소가 모두 얼어버릴 텐데, 마치 봄인 양 채소들 씨를 뿌리는 내가 이상한가 보다. 하지만 나는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와 메인 두 곳에서 농사를 짓고 텃밭에 짚을 두텁게 덮어 주어 겨울에도 채소를 먹는다는 글을 읽었으므로 한번 따라 해 볼 작정인 것이다. 그분들은 나중에 유리로 온실을 만들기도 했지만... 혹시 나도 유리 온실을 만들겠다고 하게 되지 않을까? 아마도 분명 남편은 ‘당신은 귀농주부 아니라니까요. 귀촌주부의 본분을 지키세요.’ 하고 말릴 것이다.
 
2020 역병의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나훈아’의 공연 첫 부분의 주제가 ‘고향’이었다. 서울 등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지방에 고향을 가지고 있다. 가지는 못해도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물론 나에게는 반대의 현상이지만, 도시에서 낳고 자라서 환갑 넘어서까지 도시에 살던 나 같은 사람까지도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시골’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 이곳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더 없이 좋은 피난처가 된다. 도시 사람에게 5도 2촌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쉴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처를 시골에 마련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퇴직한 후엔 아예 살러 올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럴 때, 농사의 기본을 가르쳐 주는 학교가 시골 여기저기에 있으면 좋겠다. 시골의 비어있는 폐교에 사람들이 모여서 꽃이나 과일, 채소 등을 재배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농산촌의 폐교 활용하는 방법은 많다고 들었다. 어른 학생을 위한 곳은 아직 없지만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로서의 농촌 학교도 이미 여러 곳에 설립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충북 지역에서 ‘아이들 교육, 어른들 교육’을 캐치프레이즈로 내 걸고 약초학교, 식품가공학교, 치유학교 등이 생길 예정이란다. 22년 1월 개교 목표로 치유형의 ‘은여울’ 고등학교, 충전형의 ‘목도’ 전환학교, 미래형의 ‘단재’ 고등학교 등이 설립된다는 계획에 내 가슴도 설렌다. 충북 행복지구의 비전은 ‘마을은 아이를 품고 아이가 자라면 마을을 돕는다.’란다. 멋지지 않는가? 요사이 많이 회자되는 ‘고향세’가 이런 곳에 쓰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좀 더 실질적인 교육기관이 농촌에 설립되어서 농촌 기업가를 많이 만들어 내었으면 좋겠다. 억대의 수입을 창출하는 부자 농부들이 간 길을 많은 젊은이들이 따라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둥근 추석 달님을 가슴 가득히 품어 안는다. 황금색 달빛이 ‘무엇이든 해 보세요. 가능할거에요.’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그래요. ‘가능성이 가장 큰 희망입니다.’ 노인도 젊은이도 함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농촌---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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