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기생충 등 ‘韓流’ 성공 뒤엔 흥 신명 해학 역동성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최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매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Billboard) 핫(HOT) 100 차트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해 K-팝(POP)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어 다이너마이트가 2위로 내려온 지 한 주 만에 보컬로 참여한 또 다른 곡인 리믹스 버전 '새비지 러브(Savage Love)'가 다시 1위에 오르면서 1-2위를 동시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차트에서 한국 가수가 1위에 등극하기는 처음이다. 싸이(PSY)가 2012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한 '강남스타일'로 7주 연속 2위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1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21세기 최초로 빌보드 차트 핫 100에서 1위를 한 아시아 아티스트이자, 비영어권 가수 최초 및 전 세계 5번째로 Hot 100, Artist 100, Billboard 200차트 모두 1위를 석권한 아티스트가 되는 등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 핫100 1-2위를 동시 석권한 기록을 세운 건 역대 그룹 중 비틀스, 비지스, 아웃캐스트, 블랙 아이드 피스의 4개밖에 없었다고 한다.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도 최근 발매한 첫 정규 음반으로 미국 빌보드 음반 차트 2위에 오른 데 이어, 지난 14일 팝스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100’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2위는 BTS.

가히 K팝 남녀 그룹 BTS와 블랙핑크가 현재 세계 대중음악계를 호령하고 있는 모양새다. K팝의 산업적 가치에 주목하는 보도도 잇따랐다.

AFP통신은 "K팝은 K드라마와 함께 한국의 가장 성공적인 문화 수출품 중 하나"라며 "지난 20여년간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쓴 ‘한류(韓流·Hallyu, Korean Wave)’의 핵심요소인 K팝 산업의 가치는 50억달러(5조9천300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이 지난해 5월 칸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올해 2월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등 4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외국 필름이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90년이 넘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이다.

K-컬처(Korean Culture·한국문화)가 국제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음악과 영화 분야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 정상급 수준에 올라섰음을 보여준 찬란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이들 ‘거인(巨人)’의 활약상은 지난 1월부터 본격 시작된 코로나19사태로 심신이 지쳐있는 우울한 국민들에게 많은 위안과 함께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낭보(朗報)였다.

22년전인 1998년 7월,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US여자오픈에서 연장 18번홀 경기 도중 물에 빠진 공을 살리기 위해 양말을 벗고 들어가 샷을 날린 끝에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박세리 선수의 ‘맨발투혼(鬪魂)’이 당시 IMF사태로 힘든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 쾌거를 상기시켰다.

어디 대중음악만 세계적 클래스인가.

클래식 또한 세계적 실력과 명성을 뽐내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클래식 음악 강국이다.

초창기 선구자 격인 피아니스트 한동일부터 한국 음악가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정트리오’의 정경화(바이올린), 정명화(첼로), 정명훈(피아노, 나중에 지휘), 백건우(피아노), 강동석(바이올린) 등 1세대 음악인들이 있다.

또 한국이 배출한 ‘3대 소프라노’ 조수미, 홍혜경, 신영옥과 차이코프스키와 베르디 콩쿠르 우승자인 최현수와 김동규, 김남두, 백혜선, 양성식, 양성원, 고성현, 신동(神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장영주(사라장·바이올린), 장한나(첼로, 지휘) 등 2세대도 화려하다.

임선혜(소프라노, 국제슈베르트콩쿠르 2등), 임동혁(피아노, 2007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 4위), 김선욱(리즈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조성진(2015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손열음(2011 차이코프스키콩쿠르 준우승), 클라라 주미 강(강주미, 2010 인디애나폴리스국제바이올린콩쿠르 우승), 임지영(바이올린, 2015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콩쿠르에서 한국인 첫 기악부문 우승), 문지영(2015 부조니(BUSONI)국제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 피아노부문 우승),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미 UCLA교수), 성민재(더블 베이스), 허 트리오 등의 3세대 음악가도 맹활약 중이며, 김봄소리(2016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국제바이올린콩쿠르 2위), 김다미(2014 인디애내폴리스국제바이올린콩쿠르 입상), 에스더 유(바이올린, 2012 퀸엘리자베스국제콩쿠르 4위), 노부스 콰르텟(NOVUS Quartet) 등의 신세대 또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전원 한예종 출신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의 현악사중주로 구성된 노부스 콰르텟은 2014 국제모차르트콩쿠르에서 한국인 첫 현악사중주부문 1위를 차지한 국제적인 실력파.

성악분야에서도 2011차이코프키 콩쿠르 남녀 성악부문 우승자인 박종민과 서선영을 비롯해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 등 여러 명이 유럽 각국 오페라 극장 주역으로 활약 중일 정도로 많은 음악가가 한국을 빛내고 있다.

발레는 프랑스가 기원이다. 그런데도 한국 무용수들은 짧은 기간에 세계 정상급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 발레는 K-POP과 함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우뚝 섰음에도 정작 한국 발레가 쌓아올린 성과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대 파리와 뉴욕 공연에서 ‘세계적인 동양의 무희(舞姬)’로 명성을 떨쳤던 대스타 최승희의 맥(脈)이 1985년 로잔발레콩쿠르에서 강수진(국립발레단 감독)의 우승으로 실로 오랜만에 세계적으로 다시 용트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국인 최초로 해외 메이저발레단(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입단, 주연으로 성장했다. 그 뒤를 이은 김주원은 200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춤의 영예)’를 수상했고, 2016년 남자무용수로는 최초로 김기민(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이, 2018년엔 박세은(파리 국립오페라발레단)이 역시 이 상을 받았다.

한국인 무용수들은 이제 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세계 4대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 파리 국립오페라발레단, 런던 로열발레단, 뉴욕 ABT(American Ballet Theater) 뿐만 아니라 헝가리 핀란드 네덜란드 스페인 국립발레단을 비롯한 전세계 유명 발레단에서 우리 남녀 무용수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스페인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세연과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겸 안무가 강효형은 안무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K팝과 함께 한국대중문화 수출의 쌍두마차인 K드라마의 활약상도 눈부시다.

‘드라마한류’의 물꼬를 튼 것은 ‘가을동화(2000)’와 ‘겨울연가(2002)’. 특히 ‘겨울연가’의 남자 주연 배용준은 한국연예인 최초로 대만교과서와 일본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화제에 올랐고, ‘욘사마’라는 극존칭 별명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가을동화’는 10년도 더 지난 2011년 중국에서 리메이크 방영된 것만 봐도 한국 로맨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는 중국에선 영화로, 일본에선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

그런가 하면 ‘굿 닥터(시즌1, 2013)’는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첫 한국드라마. 이 드라마는 2017년 ABC방송에서 시즌1 방영 당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어 현재 시즌4 제작을 확정한 상태. 미 ABC방송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4)’도 리메이크 제작을 결정했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자택 격리로 넷플릭스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어, 뛰어난 컨텐츠로 무장한 여러 개의 한국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김수현이 주연을 맡은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서 선보여지고 있는데, 홍콩,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7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는 2∼3위를, 브라질과 페루 등 남미 전역에서도 10위권에 올랐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종합 순위에선 6위까지 올랐다.

특히 '킹덤' 시즌2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인도의 '오늘의 Top 10'에 안착했고,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다른 한국 드라마도 4월부터 9월 이후까지 쭉 일본 넷플릭스 상위권을 차지하며 모테기 일본 외무상도 시청했다고 언급하는 등 "일본내 4차 한류"라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

미국의 주간 옵저버는 지난 3월 30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인들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TV프로그램과 영화 TOP10’(3.21~27)에 3편의 한국컨텐츠가 올랐다고 보도했다. ‘부산행’이 영화 10위에, ‘사랑의 불시착’과 ‘킹덤’이 드라마에서 각각 6위와 9위를 기록했다.

2013년 8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한국인 감독과 배우가 만든 영화가 할리우드에 진출한 기념비적인 사례. 국내 93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해외 354개 영화관에서 상영, 53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230만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에 3배 가까이 늘어난 액수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거듭하며 세계 3대 영화제인 프랑스 칸,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베를린영화제를 석권한 데 이어 마침내 미국의 아카데미상(오스카상)까지 거머쥠으로써 명실공히 세계 정상급으로 발돋움한 것.

이같은 한국 영화와 K팝의 세계 진출은 불과 20~30년 전 홍콩영화와 J팝(일본 대중음악)을 선망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하는 ‘위대한 반전(反轉)’이다.

‘한류’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메리카를 비롯한 비아시아권 지역에도 상당한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서구권과 일본처럼 근대 때부터 문화적 영향력을 끼친 것도, 중국처럼 압도적인 내수(內需)시장이 있는 것도 아닌 한국이 이처럼 세계에 ‘문화 강국’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른바 ‘한류열풍(韓流烈風)‘은 비단 음악 영화·드라마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게임 웹툰(webtoon) 비보이(B-boy)를 비롯해 화장품 음식 애니메이션 예능프로그램 웹소설 캐릭터 한국어(한글) 관광 패션 무술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관련, 독보적인 진단검사 방법인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와 한국형 진단키트 등 K방역과 함께 한국식 커피간식 ’달고나커피(dalgonacoffee)’까지 해외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한류는 그 범위를 넓히면서 세계 속에서 그 영향력을 점점 더 키우고 있으며, 이런 범위 확장은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 산업의 활성화까지 수반하게 된다는 데 의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CNN은 한류를 중심으로 성장한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다룬 기사에서 “소셜미디어 등의 발흥에 힘입어 이러한 대중화가 다가오는 10년 동안에도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죽하면 일본의 후지뉴스네트워크(FNN)에서 ‘일본이 문화대국 한국을 못 따라가는 이유’라는 타이틀로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 유명 극작가이자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씨 등의 인터뷰 등을 통해 호들갑을 떨었겠는가.

과연 아시아 변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다종다양한 K컬처(한국문화)가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배경과 비결은 대체 뭘까.

역사적으로 우리 한민족의 유전인자(DNA)에 특별한 문화적 자질(資質)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한(恨)과 흥(興), 신명(神明) 해학(諧謔), 역동성(力動性)으로 대표되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유전자(DNA)에다 국력 신장으로 인한 열정과 겁 없는 도전정신이 어우러지면서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를 낳은 것은 아닐는지.

우리 민족은 예부터 술 잘 마시고 노래하고 춤 잘 추는 민족으로 정평이 난 지 오래다. 3세기 경에 쓰인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의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 동이족(東夷族)들은 추수 때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가 그 증좌(證左)다.

고구려나 부여에서는 길을 가면서도 노래를 하고 일이 끝나면 저녁에 모여 노래를 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신라에서는 ‘처용가(處容歌)’처럼 귀신을 쫓을 때에도 노래를 했고, 왜적을 물리칠 때에도 향가(鄕歌)를 지어 불렀다.

농악(農樂), 탈춤, 판소리, 아리랑(Arirang), 남사당(南寺黨), 지게목발(젓가락) 장단, 사물놀이, 난타(亂打), 노래방 등은 어떤가.

이와 관련, 최준식 교수(이화여대 한국학과)는 “주체할 수 없는 끼를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 흥을 타고 태어났다”며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배경에 특유의 신기(神氣)가 있다”는 설명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이 주창했던 ‘문화강국론(文化强國論)’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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