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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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규의 –슬픈 계절에 만나요-를 들었다. 유 튜브의 바다를 헤매다가 우연히.
오래된 노래지만 슬픈 가사를 처연하게 소화해내는 그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바람결에 보일 것 같아 그대 모습 기다렸지만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네.’
2020년 팬데믹의 시절 늦은 가을 현재, 어찌 슬픈 계절이라고 아니 말할 수 있을까?
어제, 남편을 요양원에 맡겨 두고 10개월이 다 되도록 맘 놓고 보지도 못 하는 친구와 보이스톡으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남편은 치매 말기로 지금은 다만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는 형편에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까지만 해도 친구는 일주일에 세 번 음식을 장만해서 남편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남편의 말이 어눌해서 대화가 잘 되진 않았지만 기뻐하는 그의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
코로나가 일상이 된 지금, 감염을 우려해서 요양원 측에서 방문객을 일체 사절한 이후로는 전화로 요양원의 남편 담당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딱 한 번, 남편에게 열이 있어 요양 병원으로 옮기느라 남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말도 못 하는 남편의 얼굴에 번지는 원망의 기색에 당황했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남편은 왜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 서운함과 원망이 쌓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감염병이기 때문에 방문이 허용이 안 되어서 오지 못했다고 손짓발짓하며 설명했다고 한다.
남편은 알아듣지 못한 표정으로 그냥 그녀만 쳐다보더란다. 우리도 이 사태가 이해 안 되는데 병중의 환자가 이해하길 바라다니....
그녀가 남편을 다시 요양원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는 그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한 간호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입을 벌리라고 해도 두려워하며 거부했고, 억지로 벌리려 하자 몸부림을 쳐서 결국은 건장한 남자가 여러 명 그를 붙잡아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어렵게 요양원에 재입소할 수 있었다.
친구의 남편은 현재도 몸 상태가 나쁘지만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요양병원 입원은 생각할 수도 없어서 그대로 요양원에서 지낸단다.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식사량이 하루 종일 미음 한 그릇도 못 된다는 데도 어쩔 방도가 없다고 친구는 울었다.
바깥에선 한창이던 단풍의 계절도 끝나고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뿐이다. 그녀는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며 남편의 모습을 회상하지만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바람결에 보일 것 같아 그대 모습 기다렸지만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네.’
바람결에 보일 것 같은 내 사랑의 모습, 찾아갈 수도 없는 내 남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해 주는 것이 진정 바람에 휘날리는 마른 낙엽뿐이라면? 누군들 울어버리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코로나19 팬데믹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넷플릭스에서 기쁨을 찾았다고 했는데 나는 이제야 그 프로그램에 가입하고 시청하게 되었다.
처음 보게 된 작품이 ‘바이킹스’란 광대한 시리즈물이었다. 편당 4-50분 정도 씩 해서 총 80편 가까운 대작인데 볼수록 작품에 빠져 들어갔다.
미국 MGM에서 기획해서 꾸린 시리즈물인데 서양인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된 작품이라 할 수 있어서 우리 동양인들이 그들을 이해하는데 깊은 통찰을 준다.
즉, 스칸디나비아에 사는 바이킹들이 영국과 프랑스를 침략해서 성공하고 혹 실패하며 서로 싸우며 동화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개요를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에 관한 것으로, 지금도 세계를 분열시키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다루는 지가 흥미로웠다.
여러 신들을 모시는 스칸디나비안 바이킹들이 풍요의 땅을 위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왕국을 침략하고 전쟁을 벌이는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 중에도 바이킹의 다신 문화에 흥미를 가지는 지배층들도 생겨나며 반대로 바이킹 중에서 그리스도교의 일신 사상에 경도하는 왕들도 생겨난다.
바이킹들은 전쟁의 신 오딘과 토르 등을 경배하며 그들이 죽음에 임할 때, 신들의 식탁에 초대받을 수 있는 영광을 함께 하는 ‘발할라’에 가기를 원한다.
그들보다 먼저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죽음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익히 보아온 대로 (어린아이들도 처형, 또는 인신 공양 장소에서 죽음을 참관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신공양의 제물들이 기꺼이 자신을 신에 바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삶과 동일하게 간주한다.
아니 그런 의식에 젖어 있다. 그러므로 바이킹들이 무서운 전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발할라’에 갈 수 있는 영광, 그것이 신들의 뜻에 달려있다는 믿음으로.
이렇게 삶과 죽음을 등가에 놓고 살았던 고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가끔씩 만이라도 돌아볼 수 있다면 죽음이 불러오는 ‘슬픔’이라는 정서에 일방적으로 함몰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원칙적으로 헤어짐도 ‘죽음’의 한 종류이다. 이별하면 다시 볼 수 없으므로 죽음과도 같다. 그러므로 가슴이 에이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슬픈 계절, 코로나 시절의 만추는 슬픈 계절이다. 노래 부르는 이는 엔딩에서 ‘슬픈 계절에 다시 만나요. 해맑은 모습으로.’ 라고 말한다. 죽음을 사색하게 하는 이 계절, 특히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이 슬픈 계절이 가더라도 사계의 순환에 의해 내년에 어쩔 수 없이 이 계절은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죽음과 삶을 뛰어넘은 사람들만이 앞으로 다시 오는 ‘슬픈 계절’에 상봉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새로 태어난 해맑은 얼굴들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