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온 나라가 이른바 ‘추-윤(법-검) 갈등사태’로 연일 시끌벅적하고 혼란스러운지 오래다.

청년취업이 1년새 28만명이나 감소하는 등 나라 경제가 암울하고, 국민들은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역병(疫病)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호(號)’는 난파선(難破船) 마냥 표류하는 모양새다.

국민의 삶이 곤궁한데 민생(民生)은 실종되고 정치라도 시원해야 할 터인데 정작 정치가 더 부아를 돋우니 국민들의 피로감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계 걱정에다 정치와 나라 걱정까지 하게 됐으니 그 참담한 심정이야 말해 무엇하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징계 조치로 촉발된 검사들의 집단 반발사태는 들불처럼 전국을 돌아 마침내 30일엔 추 장관이 임명한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의 ‘개혁의 대의를 위해 장관님, 한발만 물러나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검찰 내부망 호소 글에 이어 법무부 과장들까지 항의서한을 전달하며 추 장관에 반기(反旗)를 드는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으로 번졌다.

서울대·경희대 등 최근 대학가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풍자하는 글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한 보수 성향 단체는 대학 출입문에 현 정권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주요 비판 대상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추 장관의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등을 둘러싼 적법성 논란, 이 사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관과 침묵 등이다.

정치권에서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이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의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의 결단(決斷)을 여러 차례 촉구한 가운데, 여권 내부에서도 추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경질을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는 등 사태 수습을 주문하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배제와 징계청구를 한 이후 정국이 요동치고 있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것과 관련, 야권은 연일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겨냥해 "나라 꼴이 우스운 상황"이라며 ‘책임론’을 거론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5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역할이 과연 어떤 역할인가에 대해 묻고 싶다"고 입장 발표를 촉구했다.

여론도 좋지 않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5일 전국 18세 이상 500명에게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직무정지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은 결과 ‘잘못한 일’이란 응답이 56.3%로 집계됐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추 장관의 결정에 부정적이란 얘기다. ‘잘한 일’이란 응답은 38.8%에 불과했다.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협과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은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인 검찰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청구에 대해 앞다퉈 성명서를 냈다.

특히 평소 문 대통령과 여권에 우호적인 시민단체 참여연대 마저 지난 25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정치화되어 수많은 절박한 민생현안들을 잠식하고 있다" 면서 "행정부 내의 충돌과 갈등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대통령이 뒷짐지고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최종 인사권자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호’의 선장(船長)인 국가 최고지도자 대통령은 뒷짐을 진 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방관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마디로 리더십 부재 또는 부족에서 기인된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유일하게 나온 것이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진통이 따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개혁과 혁신으로 낡은 것과 과감히 결별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등 두루뭉술하게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 등을 포함한 '법검(法檢) 갈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에둘러 비판함으로써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검찰 개혁의 완수를 위한 마지막 진통으로 보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이 뜨뜻미지근한 문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와 여권의 오만(傲慢)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문 정권의 급속한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엄중한 경고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과 관련,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대표적 진보 법조인 신평 변호사(64)의 최근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평 변호사는 2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에 대해 화살을 문재인 대통령으로 돌려 "추 장관의 꼴불견을 보며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이라며 "과연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로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도저히 해답을 찾지 못하겠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 최중철이 여기에 해답을 제시하려고 한다"며 최 원장의 성격 분류론(공격적인 장·腸 중심형, 은둔적인 머리 중심형, 의존적인 마음 중심형)을 거론한 뒤 문 대통령을 '의존적인 마음 중심형'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그의 성격은 자신을 조종하는 윗사람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을 심리적으로 조종하는데 능숙한 조국 교수 같은 이에게 충직함을 다하는 것"이라며 "그리고 자신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선한 의도를 갖고 대하나, 반대쪽의 이들에게는 무관심하다.

이 성격 자체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편에만 충성스럽게 대하는 것이고, 내 편에만 의지하여, 그리고 내 편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성격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 원장의 설명은, 지금 추미애 장관을 둘러싼 현상에서는 물론이고 과거 조국 사태 때 보여줬던 문 대통령이 했던 이해불가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도움을 준다"며 "결론적으로 최 원장의 견해에 의하면, 추 장관이 지금 저지르는 ‘미치광이’식 행동에 문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로써 어떤 특이한 형태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김학용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3선)이 지난해 12월 18일 “갈등과 분열로 나라를 총체적 위기에 빠뜨리는 게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비판한 대목이 새삼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국민 분열을 수습하지 않고 이분법적 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은 “어떤 경우라도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한 분 한 분도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대통령의) 취임사는 휴짓조각이 된 지 오래”라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경청(傾聽)과 소통(疏通)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언론인과 사회운동가의 지적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최승호 뉴스타파PD(전 MBC사장)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회운동가 홍세화 씨의 칼럼을 공유하며 “명색이 언론인이라면서 이 정도인 줄 몰랐다는 게 부끄럽다. 우선은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청와대 홍보라인이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워지도록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홍 씨는 지난 19일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이란 제목의 한겨레 칼럼에서 “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다”라며 기자협회보 통계를 인용한 뒤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칼럼에서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앞서 석진환 한겨레 부국장 또한 지난 8월 칼럼에서 “문 대통령의 소통 성적은 너무 초라하다. 핵심 현안에 관해서는 직접 브리핑하고 질문도 받아야 한다. 부동산 문제가 바로 그런 핵심 현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오늘 국가의 총체적 난국(難局)을 어떻게 대처하고 돌파했을까.

과거 노 전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그의 직설적이고 솔직, 과단성 있는 성격에 비춰볼 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이미 추미애 장관 방식의 검찰 개혁을 정면 비판한 데 이어 29일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겨냥해 "지금 벌어지는 모든 혼란은 대통령이 명확한 말을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해서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 '검사와의 대화'에서 한 발언을 인용해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보인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의 반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직언하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리더십 키워드는 통합(統合)과 실용(實用) 정신이다.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동서(영호남) 화합, 즉 국민통합을 줄기차게 시도했다. 대통령 재임시절 제안했던 ‘대연정(大聯政)’ 구상도 극심한 진영(陣營) 갈등을 넘어서려고 당시 한나라당에 권력을 나눠주고 협치(協治)를 하자는 취지였다.

증오와 저주의 막말이 국민을 갈라놓고 있는 2020년 12월의 대한민국에 ‘통합(統合)’이야 말로 가장 절실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에게서 두 번째로 조명해야 할 가치는 ‘실용(實用)’이다. 그는 진보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은 분명히 했지만 국정(國政) 분야에서 만큼은 달랐다. 특히 경제와 외교문제에선 이념(理念)보다 국익(國益)을 우선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공동으로 추진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와 이라크 파병 등은 지지층이라고 할 노조와 진보시민단체가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국익을 보고 정면 돌파한 대표적 사례다.

이라크 파병 국회 통과에 즈음하여 노 전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개인 노무현의 소신을 버렸다. 나에겐 오로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신 밖에 없다”고 한 말을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도 지지층의 반대 속에 과감히 결단했다. 실로 용기와 결단의 리더십이었다.

그의 현실주의·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대일(對日)외교다. 대일외교 하면 대부분 독도(獨島)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취했던 그의 연설을 떠올리곤 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실리(實利)외교’ 였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와 ‘셔틀외교’를 성사시켜, 한번은 자신이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현의 이부스키시까지 날아가 북핵문제를 논의했다. 또 한번은 고이즈미 전 총리가 제주를 찾아와 현안(懸案)을 다뤘다. 수면(水面) 위에서나 수면 아래에서나 꽉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과는 달랐다.

물론 지지층의 반발을 뚫고 나가면서 치른 정치적 비용도 컸다.

내내 보수·진보 양쪽에서 협공을 받다 보니 언젠가는 자신을 가리켜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자조(自嘲)적으로 표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좌파 신자유주의자’란 말이 이제는 자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지층·이념의 벽을 정면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가장 새겨두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노무현 리더십이 날이 갈수록 융통성있게 진화(進化)했다는 점이다. 취임 초 노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냉랭한 관계속에 북핵 6자회담 등 사사건건 충돌했다. ‘악(惡)의 축(軸)’과 ‘대북포용정책’이 엇박자를 낸 것.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반미(反美)면 어떠냐?” “내가 꼭 미국에 가야 하나?”다. 전통적인 ‘한미공조(韓美共助)’를 파기할 태세였다.

그러다 2003년 5월 미국을 첫 방문, 부시 대통령을 만나고 난 후부터 180도 변화, 급선회를 한다. 국익차원에서 한미공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이후 1946년생 동갑내기 두 정상은 8차례 더 만나면서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지난해 5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 추도식 때 봉하마을을 찾은 부시 대통령은 손수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용기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들과 정치분석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조언(助言)만 듣고 정작 실행(實行)은 자신의 고집대로만 밀어붙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귀를 닫고 오직 본인만 옳다는 얘기다.

경제계 원로들과 전윤철 전 감사원장 등 전직 고위관료들은 그동안 문 대통령에게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는 시장의 수용성을 감안해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수 차례 주문했으나 별무효과였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

한마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실론적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보인 반면, 문 대통령은 당위(當爲)론적 이상주의자라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중평(衆評)이다. 탈원전(脫原電) 정책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신율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정치는 현실과 이상의 타협의 산물인데, 현실을 자신들의 이상에 끼워 맞춰 해석하면 탁상공론(卓上空論)이 되기 십상”이라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뭣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최근 열린 '21대 국회, 새로운 대한민국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한국 민주주의 복합위기:진보의 퇴영(退嬰), 보수의 무능' 이란 주제로 발제를 맡아 “민주주의는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절차와 과정의 문제”라며 “일방주의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입법이나 정책적 측면에서 연합 정부나 연립 내각을 통해 통합국가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안된다”며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진영대결, 진영논리, 남남내전(南南內戰)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총과 칼만 안 들었을 뿐이다. 일단 상대방 제안을 듣지 않고 우리 제안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기간도 1년 5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부디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지난 날을 반추(反芻)해보고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을 버리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대망(待望)한다.

‘늦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영어 속담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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