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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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가까워 오니 아침 해는 더욱 늑장을 부리며 떠오른다. 마당의 잔디는 아직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툇마루에는 이른 아침식사를 마친 꼬맹이 고양이가 내게 감사의 눈길을 보낸다. 밥을 주기 전엔 밥 달라고 야옹거리지만 양껏 먹고 나면 조용하다. “고맙냐?” 나의 수고에 대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놈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 19의 비대면 시대라도 인간의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한 해를 돌아보니 내가 힘든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와중에서 서로가 다독이며 보낸 시간 중에 감사를 표할 일이 많았다. 올해는 특히 내가 첫 소설집 ‘메리고라운드’를 상재해서 많은 분들에게 보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애써주신 분들, 내용에 대해서 좋은 평을 해 주신 분들, 밤새 읽어서 이틀 만에 다 보았다는 친구들...... 미국과 프랑스에도 보냈다. 영천의 도서관들에도 기증했다. 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힘든 코로나19 시대를 잠시라도 잊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일까? 책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남편에게 올해의 특별한 일을 말해 보라면 당연히 동림원 후원회가 결성된 사실을 들 것이다. 그렇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동림원을 처음 구상했던 때가 떠오른다. 고향에 귀향해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지난 번 칼럼에서 쓴 대로, 누구나 퇴직한 후에 먹고 살 만 하다면 돈과 관계없는 일을 하라고 권한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진정으로 돈과 관계없이, 아니 생활비를 뺀 우리의 여유 되는 돈을 써서라도 누구에게나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자녀들이 우리 생각에 기꺼이 찬성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이 그렇게까지 될까? 마음속으로 어렴풋하게 회의가 들기도 했다.
1) 남편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3천 평 땅에 20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어 주변 도시 -대구, 영천, 경주, 포항, 울산, 부산- 의 아이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조성한다. 하지만 당연히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
2) 놀이터와 휴식처, 주차장도 마련한다.
3) 기본시설 비용은 우리가 제공하고 매달 관리비용은 후원회를 조성해서
충당한다.
4) 동림원은 우리 부부가 사망한 후엔 자식들에게 상속되지 않고 공공기관에 넘긴다.
5) 동림원은 입장료를 받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우리의 생각을 후원회 사람들이 믿어 주어야 했다. 한 달에 얼마씩 자동 이체로 비용을 보내 주어야 지속가능한 정원이 될 수 있질 않겠는가? 먼저 많은 친척 친구들에게 이런 우리의 의향을 밝히고 동참을 호소했다. 그이가 카톡으로, 이 메일로 편지를 보냈다. 나 또한 똑 같이 했다. 반응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땅을 파서 배수, 관수 시설을 하고 나무들을 주문해서 심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동참을 밝히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당연히 함께 해줄 줄 알았던 친지들에게서는 연락이 없는 반면, 기대하지 않았던 분들 중, 과분한 후원금을 일시금으로 또는 매월 자동이체로 보내주는 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 자신의 친구나 친척 중에서 동참을 밝힌 사람들은 남편의 경우에 비해 턱없이 적다. 언감생심! 그러니 아무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살아오면서 여러 종류의 후원금을 내 본 경험이 있다. 자동이체로 보내던 곳도 있었다. 10년 이상 자동이체로 후원금을 냈던 장애재단의 경영자가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내 생각에!) 모욕해서 후원을 그만 둔 아픈 경험도 있다. 그 분은 내가 고맙지도 않았던 것일까? 신기하다. 나는 후원자님들께 자꾸만 절하고 싶은 마음인데........
이번 여름과 가을에 걸쳐 동림원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복숭아와 샤인머스켓 포도를 보냈다. 영천이 과일의 고장인지라 그분들께 보낼 최상품의 과일은 언제나 쉽게 고를 수 있다.
이렇게 되돌아보니 2020년 한 해는 믿을 수 없이 놀라운 한 해였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질병의 고통을 도시 사람들보다 덜 느끼는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두 가지 행운을 한 해에 가질 수 있었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한 해를 보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누구든지 가장 힘들었던 해가 최고의 해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런 자각은 이 해가 지나간 후에 느낄 수도 있다. 먼 훗날 2020년을 돌아볼 때, 자신의 일생에서 너무나 큰 족적을 남긴 시기로 기억하는 분들도 생길 것이다.
지금 2020년을 보내는 마음은 착잡하다. 제야의 종 타종도 취소되었다. 새로운 환자가 1000명을 넘는 날도 있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이 환난의 시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다만 감사만을 생각하자! 이 한 해 동안, 역설적으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은 사람이 많길 바란다. 내가 뜻하지 않았던 후원자에 놀라 감사한 것처럼 어려운 시기에 진정한 우정이 빛나길, 그리하여 감사할 일이 많기를 빈다. 아디오스! 202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