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後藥方文 아닌 先制的 행정을 펼치는 것이 급선무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일어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집단 감염사태는 한마디로 미증유의 재앙이며, 충격 그 자체다. 4일 현재 누적 확진자는 1,091명을 기록했고, 전체 재소자의 43% 이상이 감염됐다.

국가관리시설에서 수용자의 절반 가까운 숫자가 감염된 이번 사태는 지난 해 1월 국내에서 코로나 확산이 시작된 이후 단일 시설 내 최다 규모 감염이다.

이번 사태는 좁게 보면, 법무부와 교정당국의 허술한 관리·안일한 대응 등 무능과 비밀주의가 빚어낸 재앙으로, 초동대처와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무난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 안이한 방역활동, 유관 기관과 정보 공유 및 협조 엇박자, 기강 해이 등이 겹쳐져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로 번진 것이다. 기본을 소홀히 한 이런 자충수(自充手) 속에 조기에 사태 확산을 차단할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는 우(愚)를 범한 것이다.

그러기에 국민들의 이 인재(人災)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은 쉬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일반 국민들은 코로나 역병에 감염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전파될까봐 여리박빙(如履薄氷)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조심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국가기관이 관리하는 교정시설에서 무지막지한 감염사례가 터져 나온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빚어졌다는 데서 세계를 향해 K방역의 성공을 소리높이 자랑하던 정부의 위신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늑장 검사와 뒤섞기 수용처럼 방역수칙을 어긴 엉터리 초동대응, 조용한 전파자, 3밀(密) 구조.

수용자와 구치소 의료진 및 외부 전문가들이 진단한 서울 동부구치소 코로나19 대재앙의 3대 요인이다.

방역 전문가들은 한 달 새 확진자 1000명을 돌파한 ‘동부구치소 코로나 재앙’과 관련, “다 퍼지고 나서야 전수(全數) 검사, 황당 대책이 부른 참사”라며 첫 감염 21일 이후 늑장검사, 확진자 접촉자 및 일반 수용자 뒤섞기 수용과 같은 방역 제1원칙을 어긴 엉터리 대응이 동부구치소의 코로나19 재앙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이 중 지난해 11월 27일 첫 직원 확진자가 발생한 지 3주 뒤인 12월 18일에야 전체 수용자 전수검사를 실시한 게 초유의 집단감염 사태를 낳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조기 검사로 확진자와 접촉자를 신속하게 격리한다는 방역 제1원칙을 망각한 부실 대응이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의심환자와 접촉자, 일반 수용자를 뒤섞어 수용해 대량 감염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한편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상황이 심각한데도 법무부가 관련 정보 공개에 늑장을 부리거나 은폐하면서 비롯된 ‘깜깜이 방역’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점을 집중 비판하고 있다.

감염병 대처에는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생명이자 관건이기 때문이다.

동부구치소 집단 감염은 지난해 11월 27일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비롯됐지만, 법무부는 지난 달 15일 언론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19일간 확진자 발생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법무부는 첫 확진자 이후 3주 뒤인 지난 달 18일에야 1차 전수검사를 실시했다. 지난 달 27일엔 동부구치소 수용자 중 첫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법무부는 이틀 뒤인 29일 언론보도가 나오자 뒤늦게 관련 사실을 밝혔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법무부의 페쇄적인 행정처리에다 방역 당국도 주도적으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해 결국 방역에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의료계에선 “국민들을 상대로 ‘QR코드’ 등 IT까지 활용해 (動線)을 파악하고 이를 숨길 경우 처벌까지 하는 정부가 국가시설의 감염 및 대응상황을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른바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참사’는 안전불감증과 초동대처 미흡 등 여러 측면에서 5년 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재판(再版)을 보는 듯하다.

자신의 소임을 잊고 기본을 소홀히 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 지를 똒똑히 보여준 이번 사태는 오늘 우리에게 다시 소통(疏通)과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번 ‘동부구치소 참사’의 경우,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 수용자들에게 예산문제를 들며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았고,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선 이미 오래 전 교도소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속출했는데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 법무부와 교정당국의 무신경이 놀라울 따름이다.

교정시설은 이미 코로나 초기 때부터 요양시설과 함께 밀집·취약시설로 지목돼 경고등이 켜졌는데, 겉으로는 인권과 국민안전을 수없이 외치면서, 뒤로는 확진 사실을 쉬쉬하면서 확진자 정보공개를 가족들에게조차 숨겼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방역수칙의 기본과 안전불감증, 초동대처 미흡 등 위기관리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할 법무부 관리 기관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더 하다.

법무부 수장인 추미애 장관은 문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도록 현장을 찾지 않았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다가 여론과 정치권의 비판과 질책을 받고서 총리가 먼저 사과한 사흘 뒤인 지난 1일에야 사과하는 등 뒤늦은 면피성 행보를 보여 공복(公僕)의 자질을 의심케 했다. 뒤끝 남기는 사과나, 뒷북 현장 방문이 아닌 신속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교정당국은 서울시와 송파구 등의 미온적 대응 때문이라며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행정부를 통할하는 정세균 국무총리는 해를 넘겨 지난 2일 뒤늦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함꼐 서울 동부구치소를 찾아 "신속히 상황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동부구치소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정 총리의 지시에 따라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3일에야 긴급현장대응팀을 동부구치소에 파견했다.

그러나 국가의 원수로서 행정부의 수반인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아직껏 이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사과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소통과 위기관리에 관한 한 문 대통령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 백신 확보와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만 보더라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백신확보 문제와 관련, 선진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들이 선제적으로 앞다퉈 백신을 대량 확보하는데도 느긋하게(?) 임하다 여론의 질타가 빗발치자 뒤늦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 최근에야 부랴부랴 미국의 모더나사와 2000만명 분의 백신을 우역곡절 끝에(?) 확보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거나 접종이 늦어질 것이라는 등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여러 달 전부터 범정부 지원체계를 가동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백신 확보에 만전을 기해왔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그동안 여러 차례 관계 부처와 당국자에게 백신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얘기다.

또 동부구치소 사태와 관련해서도 ‘특별점검’을 하고 '동부구치소 사태를 확실히 해결하라'는 등의 주문을 청와대 회의에서 여러 차례 참모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34.1%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의 부정평가는 61.7%였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소통’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많은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3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직접적인 소통 횟수는 6번에 불과하다.

이중 다수의 청와대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한 ‘전통적인’ 형식의 기자회견은 4차례였고, 현역 언론인과 일 대 일로 나눈 대담 한 번, 일반인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눈 ‘국민과의 대화’ 한 번이었다. 재임 중 각 150번씩 기자회견을 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미디어오늘 참조)

야당과의 만남은 사실상 멈춤 상태다. 2018년 이후 야당 대표와 대통령의 영수회담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상당수는 ‘말씀자료’나 ‘지시사항’으로서 전달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책, 코로나19 방역에 관한 사항 모두 각 부처·당국에 만전을 기하라고 독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익숙하다.

문제는 대통령의 의중을 최소한의 다듬어진 메시지로 발표하는 일이 굳어질수록,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왜곡되어 활용되기 쉬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대통령이 뒤늦게 ‘백신 확보를 하라고 질책했다’는 보도 역시 한 사례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백신이 정쟁화되는 국면인 만큼,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언론의 의문에 답했다면 불필요한 시시비비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위기관리 전문가에 의하면 위기 발생 시 위기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직한 평가(Assess), 위기확산을 신속하게 통제(Control), 대응책개발(Review)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동부구치소 사태’의 실제상황과 대비하여 풀어본다면 코로나19 실체에 대한 정확한 분석, 초기 확산방지 대책수립, 진료실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초기 단계에서 객관적이고 정직한 평가”에 실패했다.

무릇 정부와 기업이든 어떤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구성원 상호간, 또는 이해관계자 사이에 격의없는 교감(交感), 즉 소통(疏通)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통은 인간의 신체로 말하자면, 혈맥(血脈)으로 기(氣)가 통(通)함을 의미한다.

유교이념에서 가장 중추(中樞)를 이루는 ‘인’(仁)을 해치는 ‘불인’(不仁), 즉 ‘인(仁)이 아닌 것’을 주자(朱子)의 근사록(近思錄)에서는 혈(血)의 흐름을 막음으로써 신체의 사지(四肢)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한의학에서는 ‘몸의 어느 부분이 마비되어 움직이기 거북한 상태’ 또는 ‘피부감각이 둔한 상태’를 ‘불인’(不仁)이라 한다.

사회가 제대로 평형을 이루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들의 유기적인 소통이 요청된다. 인간의 몸이 안정적이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관(器管)들이 각각의 정상적인 기능을 통해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할 때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사회 역시 다양한 하부체계들이 서로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을 때, 안정되고 발전이 가능하다. 소통이 바로 유기적 통합의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역사적 인물 중 조선조의 성군(聖君) 세종대왕과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명재상(名宰相) 류성룡(柳成龍)은 소통의 달인이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1430년 ‘공법’(貢法)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법(稅法) 시안(試案)을 마련한 후, 무려 17만여명의 백성들을 대상으로 5개월 동안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한글 창제에 반대한 최만리 등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신하들에게도 인내심을 갖고 경청(傾聽)과 설득(說得)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런 백성의 뜻을 중시하고, 백성의 이익을 우선하는 애민(愛民)정신이 있었기에 세종시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서애(西厓) 류성룡 또한 반대세력조차도 정책수행의 동반자로 인식, 소통과 포용(包容)을 통해 이들을 국정(國政)의 협조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미증유의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공감(共感)과 관계(關係)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통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이 서로 다른 의견의 개진을 통해 합의(合意)에 이르는 과정이다. 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져야만 국가든 사회든 제대로된 협업(協業· Collaboration)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공자(孔子)가 자공(子貢)의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 경구(警句)는 지금도 유효하다.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만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신뢰야 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란 가르침이다.

그 신뢰는 바로 진정한 소통에서 비롯되고, 특히 위기(危機)일수록 더욱 소통과 공중관계(公衆關係·PR, Public Relations)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정부나 기업은 이미 발생한 위기상황을 컨트롤하고 관리하는 ‘위기관리’ 능력 여부에 따라 자국민 뿐 아니라 세계인들로부터 천양지차(天壤之差)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쌓은 좋은 이미지와 명성(名聲)이 순식간에 급전직하(急轉直下)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

‘숨기는 것 없이 곧바로 인정하고 대처하는 것’이 ‘홍보의 정석(定石)’이듯, 위기시 이런 ‘직통화법(直通話法)‘이 정부 입장에서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은‘ 올바른 대처법이다.

적극적인 문제 인정 및 신속한 대처는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론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완충재(緩衝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뭣보다 일이 잘못됐을 때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성있는 사과와 함께 전문가와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위기를 벗어나는 현명한 방책이다.

‘위기대응 매뉴얼’보다 중요한 것이 각기 다른 분야를 관장하고 있는 유관(有關) 부서간 신속하고 체계적인 협력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평소 관계자들이 이를 얼마나 숙지하고 막상 일이 터졌을 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반복된 교육과 학습을 통해 거의 조건반사(條件反射) 수준으로 몸에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번 ‘동부구치소 사태’가 우리 정부와 정치 지도자, 공직자, 각급 기관 단체 관계자는 물론 국민들에게 소통과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보건 방역체계를 비롯한 우리의 국가재난 안전 시스템을 손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또다시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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