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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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천지(別天地)도 이런 별천지가 또 있을까. 말 할 것도 없이 선거용 포퓰리즘 돈풀기 경쟁이다.
작년 4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선거용 카드를 내밀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직전 돈 풀기를 지시, 총선 압승에 큰 덕을 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대선 유력 주자들이 앞장서서 돈 풀기 공약에 불을 붙였다.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 후보들이 가세한다. 여기에 뒤질세라 야당까지 이 판세에 뛰어드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풀겠다면서도 국가 지도자들이라는 사람 어느 누구도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뒷감당 생각 없이 선거에 이기고 보자는 생각에 몰입한 이들에게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를 맡겨도 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省察)이 필요한 때다.
포퓰리즘의 극치다
이른바 대선주자 후보군의 돈 풀리 약속이 불을 붙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익공유제, 정세균 국무총리의 코로나 재난지원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보편적 지원금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질세라 보궐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 서울 부산 시장 후보들의 현금 지급 공약이 낯 뜨겁다.
서울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는 소상공인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 박영선은 소상공인에게 최대 200만원의 임차료 대출 약속이다. 소요 예상 재원은 5000억 ~ 1조원이다.
부산의 김영춘은 소득하위 80%에 월 최대 40만원, 박인영은 민생재난지원금으로 3000만원 무이자대출, 변성완은 영유아 의료비 보조 등 등으로 제시된 공약 소요재원은 4조원이 넘는다.
야당도 뒤질세라다. 서울의 국민의 힘 오신환은 청년기초생계비 월 최대 54만원, 안철수는 손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최대 40만원, 오세훈은 8세이상 시민에게 스마트워치, 나경원은 청년 신혼부부 대출이자 1억1700만원 지급 등이다.
여기에 그치면 과열선거 공약이라고 치면 그만이다. 대통령까지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 지원 성격의 돈 풀기에 나서는 건 좀 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재난지원금을 3월중 지급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전 국민들 위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지원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선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위로받느냐’고 비야냥댄다.
더욱 가관은 이런 포퓰리즘 돈 풀기 경쟁 과정에서 여권(輿圈)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해프닝을 벌이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간의 주장에 서로 비난하고, 여당과 경제부총리간의 재정건전성 문제를 둘러싼 잦은 다툼은 볼상 사납다 못해 역겹다
‘누가 부담할 것인가’부터 밝혀야
.
나라 살림을 어떻게든 건전하게 유지해보겠다는 기획재정부 관리들을 향해 “이 나라가 기재부 것이냐” “곳간 지키랬더니 주인 행사하려든다” 등등 총리나 여당 지도부가 쏟아내는 막말을 보는 국민들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경제성이 한참 뒤진다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놓고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려는 시도는 훗날 두고두고 책임문제로 논란이 많을 것이다.
무분별하고 경제성이 약한 공공사업 추진을 막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시절에 도입한 예타(豫妥)제도를 무력화하는 이 정부의 강심장이 두렵다.
“재정건전성 지표라는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뭐나”는 문대통령의 힐책성 질문 이후 이나라 곳간 문은 활짝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힘들게 힘들게 유지해온 재정의 건전함으로 외환위기와 국제금융위기에 잘 버텨온 저력을 상실해가는 과정이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역병(코로나)으로 전 국민이 힘들어 한다. 정부 곳간 문을 열어 힘든 국민에게 숨통을 트여주는 일은 재정 몫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심사숙고해서 어려움이 큰 계층부터 배려하는 섬세하고 치밀한 대책이 필요하지, 퍼주기식 재정살포는 곤란하다.
확장 재정은 결국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돈 풀 궁리만 말고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이지 함께 얘기해야 한다.
세금을 더 내야할 사람이 있다면 설득하고, 다음 세대에 부담이 전가된다면 이것도 양해를 구해야 옳다.
‘돈은 받고 표는 제대로 찍자’
금품선거가 만연하던 시절 김대중이 한 말이다. 60,70년대엔 ‘고무신 선거’ ‘막걸리 당선’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금품선거 원조격이다.
선거법이 강화되면서 노골적인 금품선거는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이제 공공연한 현금지급이나 선거용 공약,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 제시등으로 자리를 바꾼 셈이다.
코로나 사태를 악용한 선거용 돈 풀기도 그것이다.
결국 깨어있는 국민의식에 기대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 정권 재창출에 목을 멘 정치권을 신뢰하고 기대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정신 차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김대중이 말한 “돈은 받고 표는 제대로 찍자”를 실행해야 한다.
필자는 한 가지 제안한다. 공사를 끝낸 건설 책임자들의 회사와 이름이 적힌 동판(銅版)의 교훈이다.
포퓰리즘 정치인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명함을 넣은 동판을 만들어 보관하자.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진, 관계부처 장차관, 여당 지도자의 이름을 낱낱이 적은 동판을 만들자.
10년 20년 아니 50년 100년 뒤 평가하자. 오늘날 그들이 취한 포퓰리즘 정책이 국가를 융성시킨 위대한 지도자였는지, 남미나 그리스처럼 국민을 피폐의 늪으로 내몬 ‘범죄자’일 것인지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놓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