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졸로 보는 厚顔無恥한 ‘표플리즘’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3월, ’검사와의 대화’ 당시 노무현 대통령(1946~2009)이 한 유명한 말이다.

당시 37세의 젊은 검사 김영종(사법연수원 23기)은 “대통령께서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왜 전화하셨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이 보인 반응이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 청탁자는 아니었습니다”라는 답이었다.

요즘 노 전 대통령의 18년 전 이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정부 여당의 막가파식 ‘표(票)플리즘‘ 행태와 관련해 문재인 정권에 상기시켜주고 되돌려주고 싶은 멘트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코로나 극복 등과 관련, “3·1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주주의, 포용과 혁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며 “연대와 협력으로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여러 치적과 장밋빛 청사진이 어딘가 공허하게 들리는 게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과 사흘 전 국회 본회의를 통해 이른바 ‘가덕도 특별법’을 졸속 강행 처리한 사실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5개 광역단체장 합의로 어렵사리 확정한 영남권 신공항 건설 대안으로 김해공항 확장계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느닷없이 지난 정권에서 백지화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여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주민들을 다시 반목하게 하는 ‘분열의 정치’를 가속화하는 저의(底意)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싸늘한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민 과반(過半)은 천문학적 공사비에도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면제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조차 마찬가지 반응이 나왔다.

1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YTN의 의뢰로 지난달 26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 '잘못됐다'는 53.6%에 달했다. '잘된 일'이라는 응답은 33.9%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는 12.6%였다.

주목할 대목은 부산·울산·경남에서조차 찬성 38.5%, 반대 54.0%로 반대가 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대목이다. 정부 여당이 이 법 통과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반응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지난 달 25일 부산 가덕도 방문을 계기로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이른바 '표퓰리즘' 행보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당정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4차 재난지원금' 지급 시기를 선거를 9일 앞둔 다음 달 29일로 잠정 합의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유권자의 표심을 겨냥한 노골적인 '매표행위'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탄핵 사유'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문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를 놓고 법적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예고했다.

정부 여당이 이날의 가덕도 방문은 부산·울산·경남을 잇는 동남권 메가시티 전략을 발표하는 '한국판 뉴딜 현장 행보'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의힘의 판단은 다르다. '가덕도 신공항'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최대 이슈인 만큼 대통령이 사전 선거 운동에 나선, 즉 '선거 개입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과거 여야가 바뀌었던 당시 선거를 앞두고 이뤄졌던 대통령의 현장 행보를 맹비난했던 민주당의 과거를 꺼내며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4월 18대 총선을 나흘 앞두고 서울 은평구 뉴타운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열세에 몰린 부산시장 선거를 어떻게든 만회하려 하지만 도도한 민심 앞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지금까지 이런 노골적 '선거 개입'은 없었다. 민주당의 끝 모를 적반하장"이라며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개입 혐의로 국회 탄핵까지 당한 이래 역대 대통령의 주요 선거 직전 지역 행보로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의 성추행 범죄로 치러진 재선거인데 반성은커녕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권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도 "이런 대통령이 있나. 보궐선거 한복판에 뛰어들어 부산에 가서 '매표 공항' 건설을 다그친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바다를 메워 위험천만한 공항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번 보궐선거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의 매표 이외에는 달리 이해할 길이 없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은 과연 문재인 정부에 성배(聖杯)일까, 독배(毒杯)일까.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이 논란 끝에 지난 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1월 26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한정애 당시 정책위의장)을 발의하고 드라이브를 건지 3개월 만이다.

이 법에 따라 가덕도 신공항은 비용 대비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예타)을 면제받고, 건설비(국토부 추산 28조 6000억원)를 전액 국비로 조달하고 각종 부담금도 면제받게 됐다.

당초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물론 기재부와 법무부가 예타 면제와 안전성, 위법성, 다른 국책사업과의 형평성을 지적하며 이 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지만, 막무가내였다.

가덕도 신공항이 안정성 외에도 시공성·운영성·환경성·경제성·접근성·항공수요 등이 떨어진다는 내용에도 귀를 닫았다.

한마디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구체적 입지나 건설 계획조차 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가덕도에 공항을 지으라고 명령하는 ‘닥치고식 막가파 법’이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법은 군사시설보호법·물환경보전법·하천법·하수도법·농지법·산림보호법·항만법 등 31개 법률에 따른 각종 인허가, 승인 절차도 모두 건너뛸 수 있도록 했다. 국민 안전과 복리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모든 절차를 면제해 준 ‘막장법’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정치권의 선거용 신공항 추진이 ‘전무후무한 괴물 법안’이라는 등 도(度)를 넘고 있다는 언론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어디에 어떻게 건설할지 계획도 없고, 공항이 안전한지조차 의문인데 '입 닥치고 무조건 하라'고 법으로 강제하는 격"이라며 "나라에 망조(亡兆)가 들었다"고 한 언론도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국가백년대계 사업을 선거철을 맞아 졸속 강행 처리하는 것을 두고 ‘법치(法治)를 무시한 정략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가덕도특별법을 "아무런 기준도 원칙도 없는 망국(亡國)법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김해 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이어 가덕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일부 시민단체와 법조계에선 “정부와 국회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무리한 탈원전(脫原電)으로 막대한 손실과 국론 분열을 초래한 ‘제2의 월성 원전’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관련 법률 31개를 ‘프리 패스’하게 만든 특별법의 위법 논란도 커지는 모양새다.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회장은 “김해 신공항의 일방적 폐기와 가덕도 특별법 제정은 탈원전 정책과 같은 심각한 적법 절차 위반”이라며 “여기에 가담한 관련자들을 배임 등 혐의로 고발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최근 김해 신공항 백지화의 위법 여부와 관련해 정식 감사 착수를 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오죽하면 가덕도 특별법을 검토한 국토교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이 같은 법 조항에 난색을 보였을까. "우리 동네 하천 정비할 때도 그렇게 안 한다"(민주당 조응천 의원), "아무리 급해도 어떻게 이런 졸속한 법이 나왔냐", "이렇게 기가 막힌 법안은 처음" 등의 발언이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에 담겨 있다.

가덕도 신공항은 경제성·환경성·안정성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다 기존 검증(2016년 프랑스 전문업체의 평가)과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의 합의(정부, 영남권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계획 발표)를 뒤엎고 추진된다는 점에서 지역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남이 다시 북과 남, 두 쪽으로 크게 갈라지게 생겼다. 평가 당시 가덕도 신공항은 사업성이 없고,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결론났다.

정부부처는 특별법의 적법성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인 25일 부산 가덕도 현장을 찾아 “2030년 이전에 완공시키려면 속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처럼안정 운항에 불리한 해상 공항은 유례가 없다’며 ‘가덕도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공무원으로서 직무유기’라는 법률 자문 내용을 제출하는 등 반대 입장을 보이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게 “가덕도 신공항에 국토부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공개 질타했다.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불법 따지지 말라’고 부추긴 셈이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당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때문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의 승리를 위해 이 특별법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불법 따지지 말고 시키는대로 하라는 것이다.

모든 관련 부처가 나중에 문책당할 것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차기 대권 주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회가 법을 만들면 정부는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딴소리 말라는 얘기다.

역시 대권 레이스에 가세할 정세균 총리도 오십보백보다.

앞서 국토부가 정치권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 경제성·안정성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출한 한 것과 관련, “이미 법이 된 것처럼 국토부가 그런 태도를 취해선 안 될 것“이라며 ”행정부는 입법이 이뤄지면 그 법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4.7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이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비위로 인해 치러진다. 두 보궐선거에 쓰이는 세금만 838억원에 이른다. 민주당 귀책(歸責)으로 치러지는 선거라 당헌(黨憲)에 따라 후보를 낼 수 없었지만,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무공천' 당헌을 폐기했다.

2015년 무공천 당헌을 만든 당대표가 바로 문 대통령이다. '공당(公黨)으로서 공천에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였다.

또 다른 코로나19 관련 재난지원금을 보자.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4차 재난지원금 약 20조 원을 편성한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달 28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은 국회에서 고위당정청협의회를 열어 4차 재난지원금 지급계획을 확정하고, 오늘(2일) 국무회의를 거쳐 4일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을 내기로 했다. 이번 추경은 약 15조 원으로, 소상공인 고용취약계층 긴급피해지원금과 긴급고용대책, 방역대책 크게 세 가지 틀로 짜였다.

그러나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 간의 당정(黨政)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보편과 선별지급을 병행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재정형편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가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공개 반박하자, 여당 내에서 홍 부총리 사퇴론까지 거론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홍 부총리가 “재정당국의 입장을 절제된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이라 말하는 과정에서 다소 울먹였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기도 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뒷짐을 지고 당이 행정부의 팔을 비틀어 울며 겨자먹기식 항복(?)을 받아내 뜻을 이뤘으니, 억지춘향이 따로 없다.

야당에선 공교롭게도 4차 재난지원금을 4.7 보궐선거 9일 전에 지급된다는 점을 들어 지난해 4.15총선에 맞춰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과 마찬가지로 선거용 '돈뿌리기’라고 의심하고 있다.

벌써 문 대통령은 전 국민 대상 5차 지원금을 거론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 달 "코로나 상황이 잦아들면 온 국민 사기 진작용 재난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정세균 총리는 그 시기를 올 상반기 중으로 예상했다.

모름지기 법의 정신은 정의(正義, 옳음)라고 했다. 그러므로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같다. 그래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은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정신을 가져야만 한다.

때문에 ‘머릿수가 정의’라는 주장은 반(反)헌법적이다. 헌법 1조에 따라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동시에 헌법 12조는 주권재민 실현방식방식으로 ‘적법절차(適法節次)’를 명하고 있다.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신체 생명 자유를 제약받지 않는다는 ‘듀 프로세스 오브 로(due process df law)’원칙으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1215년 영국에서 제정된 ‘대헌장·大憲章’) 이후 근대 문명국에서 확립된 지고한 가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을 처리한 21대 국회, 그리고 독려에 나선 대통령 모두 부끄러움을 모른다.

”본질적으로 자유당 시절의 막걸리·고무신 선거의 재판“이라며 "부산 시민들이 자존심을 걸고 이런 매표행위들을 심판해야 한다. '촛불 정부'를 자처했던 정권 아래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질타한 정치평론가도 있다.

이런 불의한 현상을 타개하는 해법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밖에 없다.

일찍이 맹자(孟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정의(正義)’라 했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의지단야(義之端也)’, ‘악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그것이 의를 바로잡는 시작’이라는 것이다.

맹자의 가르침은 이어진다. 이른바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이다. 부끄러움과 정의에 대한 담론이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무시비지심 비인야(無是非之心 非人也)’도 그 속에 포함됐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옳고 그름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정의감이 살아 있음을 말함이며,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1970년대 사회상을 배경으로 쓴 박완서(1931~2011) 작가의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다시 펼쳐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편과 친구 등 모든 주위 사람의 뻔뻔함에 몸서리를 치는데, 학원가를 지나가다가 온갖 종류의 교습소 간판을 보면서 ‘저 많은 학원 중에 왜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