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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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에는 역모를 꾸미거나 대역죄를 저지른 경우 사약(賜藥)이 내려졌다. “네가 네 죄를 알렸다”라며 공개적으로 내리는 사약은 곧 독배임을 안다.
지난 4.12 총선에서 여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여권은 그것이 독배인 줄을 몰랐다. 사약과 다른 점이다.
총선 당시 정부 여당은 잇단 정책실패로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심판이 있으리란 기대도 컸다.
그러나 결과는 여당 압승이었다. 코로나 덕이 컸다.
지구촌을 강타한 역병의 환난(患難) 극복을 위해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유권자들의 판단이었다. 투표 직전 현금살포까지 가세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독배를 샴페인으로 착각했다.
오늘의 보궐선거 참패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독선과 오만, 그리고 집권 세력의 무능까지 겹쳐 국민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협치(協治)와 상생은 실종됐다. 거대 여당은 무소부위로 입법부를 좌지우지했다. 국가 중대 기구는 그들의 정권 안보 도구로 전락시켰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독배를 샴페인으로 착각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4년이 지나도록 과거청산 편 가르기 내로남불로 허송했다.
초기엔 과거 정권 잘못을 들춰 처벌하는 이른바 적폐청산에 주력했다.
적폐청산 피로감이 쌓여갈 무렵부터는 개혁의 깃발이 올랐다.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대드는 검찰이 미우면 검찰개혁, 언론이 집권여당과 정부를 비판하면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법썩이다.
검찰개혁만 해도 정권 눈치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라는 개혁의 본뜻은 온데 간데 없고, 정권에 거슬리는 사람 쳐내기가 개혁의 본질처럼 변질됐다.
그 와중에서 조국 사태, 추미애 추태가 빚어져 민심 이반을 초래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언론 손본다며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징벌적손해배상을 언론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만 해도 수요공급이나 관행을 무시하고, ‘강남 부자 징벌’ 위주로 정책을 펴다 보니 집값 안정은 커녕 서민 내집 장만만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선거 패인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의 경우, 우선 20~30세대의 절망감과 주택 관련 세금의 급증은 조세저항 형태로 표심을 움직인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참 한심한 일 중 하나는 지도층의 내로남불이다. 개각 때마다 불거진 그들의 이중인격적 위선은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부동산 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와중에 대통령 입이라는 청와대 대변인(김의겸)의 투기는 양반이다.
온갖 대의명분 내세우며 깨끗하고 정의로운 척하던 정책실장(김상조)은 자신이 만든 제도를 스스로 깨는 전세금 인상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LH투기로 불난 집에 김상조는 휘발유 끼얹은 꼴이었다.
‘내로남불 정권’ 될라
그러니 내로남불이 세계어가 되어 나라 망신을 시킨다. 오죽하면 내로남불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고 선거관리위원회가 판단하겠는가.
‘더불어민주당 = 내로남불’이라고 선관위가 공인(公認)했다는 비야냥이 빈말 아니다.
자, 그럼 이쯤 해서 정부와 여당은 독배의 교훈을 살리고 있는가.
두고 볼 일이지만, 말로만 처절한 반성이지 아직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우선 대통령의 비서실 개편과 개각을 지켜볼 일이다.
회전문인사 말고, 정말 국민 뜻을 제대로 읽어 정책을 만들고 펼칠 인재를 널리 구해 남은 임기 1년을 채우기를 바란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라는 경고다. 정책의 변화 없이 말로만 반성해봤자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여당 초재선 의원들의 반성과 개혁 움직임을 주목한다. 이미 국민들은 집권 운동권 세력의 국가경영 능력에 낙제점을 줬다고 본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득 세력으로는 어렵다. 초재선들의 움직임에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다. 내부 혁신의 어려움이다.
과거 3김 시대에도 세대교체를 내세우며 ‘40대 기수론’이 힘을 얻어 분위기를 쇄신했다. 그 이후에도 젊은 기수들에 의한 정풍운동 등 정치권 개혁이 진행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있느냐도 주목할 대상이다.
결국 ‘독배의 교훈’을 이번엔 살리느냐 못살리느냐에 문재인 정부 남은 1년의 성패가 갈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