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postmaster@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동림원 개원이 연기된 이유는 당연히 온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때문이다. 이 질병만 아니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동림원을 개원했을 것이니까.
하지만 그 경우를 생각하면 등에 한 줄기 시린 기운이 흐른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준비를 마치려고 무리한 일들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봄에, 작년에 시작했지만 결과가 어긋났던 일들을 수정 보완할 수 있었다. 중요한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첫째, 작년 봄에 식재했던 묘목들 중 죽은 나무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 작년 한 해를 지내는 동안, 동해와 수해를 입어 예상 밖으로 피해가 심했다. 20가지의 과일 나무들을 챙기기 위해서는 올해 한 해의 봄이 꼭 필요했다. 동림원은 과일나무 정원이다. 수많은 종류의 과일나무를 보여주는 공원은 어디에도 본 적이 없다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실일 것이다. 어느 지방보다 영천이 비가 적어 과일의 당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조건이 이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주요한 이유였다.
둘째, 작년에 미비했던 배수 시설을 다시 손보았다. 부직포로 싼 유공관을 몇 곳에 더 묻었다. 한국 잔디로 조성한 아이들 쉼터와 오솔길을 제외한 전 부지에 퇴비 10 차를 깔고 양 잔디 (켄터키 블루 그라스)를 다시 뿌렸다. 처음부터 과수원 바닥을 양 잔디로 깔겠다고 주장한 사람은 나였으므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작년 가을 1차로 양 잔디를 뿌렸는데 봄에 잔디가 올라와 기분 좋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비를 다시 가져와 지력을 다지고 양 잔디를 또 뿌린다? 결국 일을 겹쳐서 여러 번 하는 것이었다. 급수 문제만 해도 그랬다. 과일 정원에 1 미터 높이의 스프링클러를 장착했다가 다시 바닥에 까는 급수관과 점적 호스로 바꾸어야 했다. 사이사이 수동으로 물을 주는 호스도 필요했다.
처음, 어린이를 데리고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그네나 미끄럼틀 등, 가벼운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놀이 기구 시설에 관한 법이 강화되어 기구마다 보험을 들고 난 후 지자체에서 승인받아야 한다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그 대신 2인용 흔들 그네를 여러 개 만들어 벤치와 함께 정원에 배치했다.
이렇게 처음 계획한 바를 수정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개장 시간 1년을 유예 받은 데서 보상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계획을 바꾼 중에는 동림 아카데미 건물을 신축하려던 계획도 있다.
동림원 옆의 땅에 50평 정도의 건물을 지어 동림원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고, 강의실을 만들어 여러 가지 강좌를 마련하려던 계획 말이다.
그 대신 동림원에서 300미터 거리의 침수정 정자를 남편의 강의실 및 집필실로 새롭게 단장했다. 고색이 창연한 정자 건물의 문을 모두 트게 되면 열 명도 열 다섯 명도 앉아서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코로나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겠지만.....
신축하려던 곳은 땅을 고르고 단단하게 해서 동림원의 주차장으로 손색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15면 정도의 주차장 대용 부지를 장만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새 건물을 지으면서 멋진 화장실을 설치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사라진 일이다.
어떡하나? 기계실 안에 있는 기존 화장실을 좀 더 근사하게 만들려고 머리를 써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오늘 120명의 후원회원들에게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동림원 진행 백서-를 문자로 보냈다. 진행 사항과 더불어 앞으로 해 나갈 일들도 밝혔다. 여기 그 내용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 달 중에 더 할 일-
이 달 중에 더 할 일은 연못 주변 조경공사와 주차장 설비 공사, 관수 시설 마무리와 자동 급수시설 시운전 및 가동, 조경수와 과수 묘목 관리 (약치기, 제초 관리), 소설가와 시인의 꽃밭 관리, 수박 참외 호박 옥수수를 심는 원두막 관리 등입니다. 아울러서 기계실 벽에 벽화 그리기, 안내판 준비, 회원님들이 희망하신 과일나무에 이름표 달기도 준비할 예정입니다. 과일나무 숫자는 충분합니다.-- (이상, 남편이 보낸 글 중에서.)
하하, 여기에 ‘소설가의 꽃밭’과 ‘시인의 꽃밭’이 있다. 책 두 권을 낸 정도로 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내세우기 그렇지만 그래도 꽃밭의 이름은 엄연히 ‘소설가의 꽃밭’이다. 지난 주 갖가지 종류의 허브 씨를 심었다. 차이브, 세이지, 로즈마리, 카모마일, 라벤더, 페퍼민트 등이다. 이름만 듣고 씨앗을 샀지 솔직히 어떤 모습으로 커 갈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앞으로 시집을 낼 예정인 남편은 시인으로 자처한다. 그래서 ‘시인의 꽃밭’을 관리한다. 주로 한국의 고전적인 꽃으로 모란, 수선화, 백합, 작약 등인데 꽃핀 모종을 사다가 조성했기 때문에 눈길이 그쪽으로만 간다. 정말 예쁘다.
오늘 동림원에서 그네를 타면서 연두가 피어오르는 앞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묘목은 어리고 과일 꽃은 한 나무에 서너 개씩 피었을 뿐이다. 꽃밭의 꽃씨는 아직 눈을 트지 않고 땅 속에서 자고 있다. 이 모든 생명들이 어느 순간 일제히 개화해서 쑥쑥 자라 동림원을 초록빛으로 바꾸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관람객이 많을 것이라는 상상 또한 해 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날, 백 이십 명 후원회원들의 사랑으로 행복해진 모든 이들이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가 열리는 광경이 눈앞에 보인다.
진정 그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남편의 글 중 마지막 말로 이 글의 마무리를 할까 한다.
--긴 보고를 끝내면서--
긴 보고를 끝내면서 이 어려운 시절을 함께 버티어나가실 동림원 후원회원님들의 건승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거듭 거듭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