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서울에서 친구가 영천까지 내려왔다. 방문하겠다고 전화해서 1박 하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을 때 내 마음은 설레었다. 남편이 있는 부인네의 입장에서 혼자 지방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해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우리네 나이 대에서는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잠에서 깨었을 때 친구는 문득 내가 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영천 망정 정류장에서 친구를 만나 차로 집으로 데려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친구는 안으로 들어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정원의 식물을 둘러보기 바쁘다. 바위틈에 피어 있는 꽃들이 자리가 없어 퍼져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단다. 몇 가지는 뚝 뚝 잘라서 다른 곳으로 옮겨 줘야 한다나. 지금은 서울 아파트에서 살지만 전에 단독 주택에서 식물을 가꾸고 산 경험이 친구에겐 지금도 소중한가 보다. 사실 우리 집 담장 역할을 하는 바위 틈새서 자라는 몇 가지 식물 중에 –아주가- 라는 놈은 그 친구가 자기 아파트 정원을 가꾸는 중에 조금 덜어다가 분양해 준 것이고 지금도 마치 시집보낸 딸네 집에 온 것처럼 그 식물을 찾아보는 것이다.

친구 덕분에 모종판에서 싹이 트고 자란 꽃들을 넓은 동림원 꽃밭으로 옮길 엄두도 내게 되었다. 때마침 뒷마당에서 모종판을 점검하던 친구가 –이것 좀 봐!- 하고 감탄하면서 나를 불렀다. 무엇 때문인가 보다가 나도 놀랬다. 모종판 중에서도 소형 모종판에 심겨져 있던 백일홍 모종에서 새끼손톱보다 작은 주황색 꽃이 핀 것이다. 옮겨 주지 않은 채 시간만 가다 보니 그저 거기서 꽃을 피울 수밖에 없었나 보다. 가슴이 찡했다. 동림원 꽃밭에 옮겨 갈 날을 기대하던 놈들이었는데 마침 마늘 수확시기와 겹쳐 제초해 줄 일꾼을 구할 수 없었다. 나 혼자 버거운 넓이의 풀을 뽑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친구와 함께 김을 매고 모종판 4개의 꽃모종을 전부 심었다.
 
남편은 먼데서 온 친구를 너무 부려먹는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친구야. 고마워.
 
저녁이 되어 김천에서 출발한 친구의 딸내미가 어머니를 모시러 이곳 영천으로 왔다. 그 아이를 보자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지금 네 얼굴 보면서 처음으로 얘기하네. 너 결혼식 할 때 우리 부부가 마침 친구들과 중국 장가계 관광 가는 날자하고 겹쳐서 고민하다가 거길 안 가고 네 결혼식에 가질 않았겠니? 그런 다음 다시 장가계 갈 기회가 안 생기더라.”

마침 친구가 하루 종일 밭일 도와준 치하를 하고 난 후였다. 친구 딸내미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답한다.

“엄마, 그거 갚으려면 앞으로도 아줌마네 와서 일 많이 해 주셔야겠네요.”

고마움을 즉시 표현하는 젊은이 덕분에 친구가 종일 밭에서 도와준 일은 이웃 간에 즐겨 하는 ‘품앗이’가 되었고 내가 다음에도 마음 편하게(?) 친구를 써먹을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
 
친구의 딸이 김천에 간 것은 김천고등학교에 갓 입학해서 기숙사 생활하는 외손자가 금요일에 서울 왔다가 일요일 저녁 학교로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아들을 차에 태워 학교 기숙사 앞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모시러 영천에 온 것이다.

“그래서? 시골 학교생활이 괜찮대?”

시골에 살고 내 자신 외손녀들을 영천의 ‘별빛중학교’ 기숙사에 보내 본 적이 있는 입장에서 그 아이의 경험에 동질감이 느껴져 반가웠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시골 김천에서 고등학교 다니기를 선택했다는 사실 부터가 대단한 것으로 느껴졌다.

“아주 재미있대요. 아주--”

친구 딸이 ‘아주’에 엑센트를 주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새로운 생활, 그 변화를 즐길 줄 안다는 거지.

서울과 김천, 서울과 영천, 이 아이는 대학에서는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변화를 맛보게 될 테지. 자기에게 닥쳐올 미래를 스스로 숙고하고 결정하고 나아가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젊은이가 점점 많아지면 좋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기 아들에게 대학 입시를 미루고 일 년간 세계 여행을 권한 젊은 부모를 만나본 적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계획이 달라졌다고 그 후배는 말했지만 신선한 그들의 사고에 감탄했었다.
 
친구가 딸과 함께 떠나고 난 후 동림원에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일한 꽃밭이 보고 싶어서다. 한 낮의 더운 햇볕에 땅은 벌써 말라있다. 물뿌리개로 조심조심 물을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꽃을 피운 모종에게도 부드러운 물을 뿌려주었다.
 
친구의 외손자가 김천이라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잘 내렸으면 좋겠다. 작은 모종판에서 싹을 틔운 어린 꽃모종이 꽃밭이라는 넓은 땅을 만나 넓게 넓게 뿌리를 뻗어 가는 것처럼 그 아이도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고 커 갔으면 좋겠다.

김천은 작은 도시이지만 그래도 인구 14만으로 인구 10만의 영천보다는 크다.

혁신 도시로 되어 앞으로의 발전도 기대되는 곳이다. 시 지구뿐만 아니라 면 지역 시골도 있어 자연과 함께 하기도 좋다. 친구들도 여러 지역에서 모여들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 때부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은 소년의 인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서울서 자라 서울에 있는 학교만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사는 친구들과 교류하고 평생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서울 밖에 모를 만큼 인식의 범위가 좁다. 여행은 많이 다닌 편으로 국내 여행 못지않게 외국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여행은 여행일 뿐, 어떤 곳을 알려면 한 달은 살아봐야 할 것 같다.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 중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살게 된 것은 축복이다.

내가 늦게나마 이곳 영천에 살게 된 것 또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곳에서 살아보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으니 이젠 내가 사는 이곳을 나의 천국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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