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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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판에는 공사의 개요, 즉 왜 이 공사를 하게 됐으며 돈은 얼마나 들었고, 그 효용은 어떠하며, 공사 기간은 몇 년 몇 개월이었는지 등이 기록돼있다.
물론 이 공사를 시작한 주체가 누구였는지, 시공사와 하청 업체는 어느 회사인지, 그리고 그회사 사장은 누구고 공사 현장 책임자는 누구인지까지 명시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훗날에라도 공사가 잘된 것인지, 잘못 결정한 일인지를 가리고 혹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지우기 위함이다.
그 책임이 반드시 형사적 책임만은 아니다. 도덕적 윤리적 책임이 따를 것이고, 관계자들과 회사의 명예와도 직결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5년 임기 중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주요 경제정책에 대한 시시비비도 많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롯,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기본소득 등의 정책에 관해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난 것도 있고 논란이 진행 중인 것도 있다.
지난 4월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정부 여당은 ‘반짝 반성’하는 듯 했다.
죽비를 맞았다(문대통령 표현)고 한 부동산 정책은 실패를 자인하고 대대적인 궤도수정이 있을줄 알았으나 흐지부지하는 인상이다.
그 이외의 정책 혼선(또는 실패)에 관한 사과나 수정 의지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는 의지인 듯하다. 아직도 실패라고 인정하기 싫다는 표징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정부는 절대 자신들의 과오를 진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동판 마련을 제안한다. 역사의 심판에 맡겨 잘못했음이 드러나면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준엄한 교훈의 시스템을 마련해 두어어야 한다.
죽비보다 더 절절한 현장의 절규
그러나, 그러나 먼 훗날로 미뤄 놓기엔 우리네 당장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동판에 미루기엔 한가하다. 그래서 죽비보다 더한 현장의 절규가 잇따른다.
먼저 현장 자영업자의 피눈물 나는 호소부터 들어보자.
군산의 횟집 사장 함운경씨. “소득주도성장 말한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다. 가게 매출이 늘어야 직원 월급도 올라가지, 월급 올라간 다음에 매출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 국가가 나서서 월급 많이 주라고 하면 소득이 늘어나나. 오히려 고용만 줄이지”
함씨의 질타는 이어진다. “이 정부는 최저임금을 최저생계비로 착각하고 있다. 생계보장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닌 사회복지 문제로 풀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으로 대처해야 할 것을 최저임금으로 대처하니 결국 기업과 고용주 부담으로 돌아와 일자리가 줄어든다”
함씨는 이른바 운동권이다. 이 정부 사람들과 결이 같아야 하는데 정반대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으로 57세.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주도로 투옥되기도 한 586의 상징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또 다른 자영업자의 ‘분통 터지는’ 비판. 광주와 담양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배운천씨.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만민토론회에서 배씨는 “소득주도성장은 무식 무능 무데뽀(무모)”라고 혹평했다.
“최저임금 생각만 하면 분통 터진다. 진짜 서민의 삶을 1도 모른는 패션 좌파들이 ‘시급 1만원도 못줄거면 장사 접어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합니다 ... 커피를 볶으며 나름의 긍지와 보람을 갖고 지냈던 나의 소중한 일상이 순식간에 청산해야 할 적폐가 됐다”고 분개한다.
그는 전남대 86학번으로 87년 6월 항쟁에 나선 운동권이다. 김대중 노무현을 지지했다.
그의 발언이 보도된 뒤 조국이 그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전국의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의 공갈 협박 악성 댓글이 잇달았다.
그러자 곳곳에서 배씨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먼 곳에서 가게까지 찾아와 격려하는 일이 빚어졌다. 그는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에서 배워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을 상기시켰다.
김대중으로부터 배울 것도 없다. 자영업을 해오면서 시장 밑바닥을 꿰뚫는 두 자영업자의 항변과 비판에 답이 나와 있다.
그동안 원로 중견 경제학자들이나 경제관료들의 비판과 충고는 수없이 나왔다. 그들의 충언을 이 정부가 외면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정책에 깊이 개입했던 김광두교수는 일찌감치 소주성 학자들과 결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정부와 상당 부분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는 경실련도 이미 비판적 대열에 들어선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중추 역할을 하는 인물들과 맥을 같이 하는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인 이른바 학현학파 학자들 까지 소주성을 비롯한 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성이 없으면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반성을 않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이상한 통계, 그것도 모자라면 통계를 입맛에 맞게 손질해 정책의 실패나 시행착오를 호도해온 것이 수차 지적됐다.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국민들의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에 잘못이 있어도 어물쩍 넘어간다면 역사에 맡겨 책임 지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판이다. 학자적 양심, 관료의 자존심, 정치인의 책임을 걸고 이 정부 경제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릴 장치를 마련해 두자.
그것이 바로 동판(銅版)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온 면면들을 상세히 기록해두자.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부총리와 경제장관 여당의 지도부 등등의 명함을 일일이 동판에 새겨두자.
바라건데, 훗날 이 정부의 정책이 옳았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반대라면 역사가 그들을 소환해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죽비를 맞고도 반성과 수정이 없다면 역사의 심판에 맡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물론 동판의 가장 윗자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록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