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올 여름 전력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력공급량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전력수요는 폭염과 산업생산 증가로 산업용과 냉방용 수요가 급증,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94.4GW에 달해 111년만의 폭염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8년의 92.5GW를 뛰어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대 고비는 약 보름 뒤인 7월 넷째 주가 될 전망이다. 산자부는 7월 넷째 주의 예비전력이 4.0GW까지 낮아져 전력예비율이 4.2%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예비전력이 2.8GW까지 떨어졌던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8월에는 7월보다 냉방용 수요가 더 많아져 최대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비중인 일부 발전소의 가동 재개로 공급량이 늘어나 전력예비율이 7월보다는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낮은 전력예비율로 인해 올 여름엔 8년 만에 전력수급 비상경보가 발령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 특히 돌발 사고로 대형 발전시설이 멈춰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 2011년의 ‘9·15 대정전’ 같은 심각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기온은 점차 올라가는 데 올여름 예비전력과 당시 예비 전력과의 차이가 고작 0.57GW밖에 안 돼 무척 불안하다.
 
예비전력이 5.5GW 밑으로 떨어지면 전력수급 비상조치가 발령된다. 예비전력에 따라 5.5GW 미만은 ‘준비’, 4.5GW 미만은 ‘관심’, 3.5GW 미만은 ‘주의’, 2.5GW 미만은 ‘경계, 1.5GW 미만은 ’심각‘ 단계가 각각 발령된다. 지금까지 전력수급 비상조치를 발령한 적은 2013년 8월 이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정부 예상대로 7월 하순에 예비전력이 4GW까지 떨어질 경우 2단계인 ‘관심’ 단계 발령이 내려진다. 2단계가 발령되면 정부가 기업들에 전기 사용을 자제하고 자체 보유한 발전기를 가동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발전시설이 돌발사고로 중단된다면 2011년 9월과 같은 대정전(블랙 아웃) 사태가 재연된다. 당시 정부는 예비 전력이 1.5GW 아래로 줄어들자 '심각' 경보를 발령하고 일부 지역을 강제로 단전(斷電)시키는 '순환 단전(부하 조정)'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순환정전은 여러 지역을 송전망에서 일시적으로 순환격리시켜 장기간 정전으로 인한 불편을 막고, 수요관리도 하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 방법이나 이 과정에서 서울을 비롯해 전국 753만가구의 전기가 한꺼번에 나가버리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620억 원 가량의 물적 피해가 났고 이 일로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임했다.
 
한국의 전력설비 예비율 평균은 20%대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탈원전 시책으로 인해 전력예비율은 낮은 상태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24기의 원전이 있다. 그러나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16기에 불과하고 나머지 8기는 정비 중이다. 신고리 4호기는 화재로 고장 수리 중이고 나머지 7기는 계획 예방 정비 중이다. 한빛 4호기는 2017년 5월부터 4년 넘게, 한빛 5호기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넘게 정비를 이유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특히 지난해 4월 국내 25번째 원전으로 준공된 경북 울진의 한울 1호기는 한수원 당초 계획대로라면 벌써 가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비행기 충돌 위험,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면서 운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 아직까지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이달 운영 허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연료 장전과 시운전 등을 거쳐 내년 3월에야 본격 가동할 수 있다.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과 풍력 등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미래지향적이고 꼭 필요한 시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막대한 기저(基底)부하를 감당하기엔 기술적·경제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전 등 다른 발전소들과 조화를 이루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이 긴요하다. 그런데도 이런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비싼 돈을 들여 한울 1호기를 완공해놓고도 운영허가를 내주지 않아 그대로 놀리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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