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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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大選)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언론 규제 입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재집권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기도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어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 박탈)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며 야당과 학계 언론계의 반발이 거세다.
독재정권이나 인기 없는 정권, 실패한 정권, 정통성이 취약한 통치자일수록 언론과의 불화는 심하다. 따라서 그런 정권은 언론 규제 유혹이 심하다.
언론자유와 국민이 안중에 없는 거여(巨與)가 강공하는 언론 규제 입법의 주요 내용은 (1)징벌적 손해배상제 (2) 정정보도 강화 (3)언론바우처 제도 등이다.
가짜뉴스 등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를 보상토록 한다는 징벌적 배상, 가짜뉴스나 오보의 경우 신문은 1면에 방송은 첫 화면에 인터넷은 초기 화면에 정정보도, 국민이 참여하는 언론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언론을 평가하여 정부 등 공공광고 배정에 활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여당과 일부 찬성론자들은 그간 심각해진 가짜뉴스의 폐해와 언론의 자정(自淨)기능 취약, 그리고 기존 제도의 미비 등을 이유로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여(巨與) 추진 언론 규제법안 문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내용의 입법을 거대 여당이 일방통행으로 강행하는 것은 횡포다. 21세기 민주 대한민국에서 있어선 안될 수준의 입법 프로세스다.
제대로 된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 없이 밀어붙이는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독재국가나 후진국 공산국가에서 있을 법한 과정과 내용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의 경우 가짜 뉴스를 누가 판별할 것인가, 그리고 가짜 뉴스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없다. 소송이 있을 경우 입증 책임을 언론에 지우고, 배상 최저한도를 정하는 등의 내용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여당은 반응이 없다.
엄청난 배상을 무기로 언론을 제소하는 사태가 이어질 것이고. 이에 따른 언론 보도의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 비판 기사에 대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다. 비판 언론에 재갈이다.
당초 징벌적 배상은 가짜뉴스가 많고 스스로의 자제기능이 미비한 인터넷신문 SNS 1인미디어 등을 대상으로 하는 듯 하더니, 슬그머니 이들 미디어는 빼고 주요 언론으로 규제 대상을 좁혔다. 결국 비판 언론 징벌 수단화한 것이다.
모든 정정보도를 신문은 1면에, 인터넷신문은 초기 화면에, 방송은 첫화면에 싣게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을 위축시키는 위헌적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미디어 바우처법) 도입도 추진중이다. 국민들이 투표권 행사 형식으로 언론사 기사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정부 광고비 집행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2000여개에 달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광고비는 연간 1조원에 달한다. 국민 세금인 이 광고비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해 언론에 영향을 주겠다는 취지다.
국민이 참여해 언론을 평가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관변 시민단체를 내세워 운용할 것이 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강화 등으로 비판적인 언론의 활동을 억제하고, 언론바우처 제도로는 재정적 차별과 손실을 주겠다는 의도라고 언론계와 학계는 반발한다.
‘사회적 흉기’가 되어 언론을 장악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화한 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입법을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언론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선진 민주사회일수록 다소의 문제가 있더라도 언론 쪽 손을 들어줘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한다.
언론 규제는 후진성이다
언론은 적어도 사익(私益)추구 집단은 아니다. 이윤 추구가 주 목표인 기업이나, 정권 유지가 목적인 정치 집단과는 다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연결해 볼 때 언론이 아니면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고 넘어갈 비리 비위가 얼마나 많았던가. 자격 없는 장관 차관의 흠결을 추적 보도해 중책을 맡지 못하게 한 것도 언론이다.
형편 없는 정부 정책을 끈질기에 비판하는 것도 야당 못지않게 언론이 수행한다.
물론 모든 언론 매체가 건전한 건 아니다. 관변 언론도 적지 않다. 언론인이라며 정도에서 벗어난 편파 행위를 하는 사람도 많다.
언론의 자율규제를 강화할 필요는 인정한다. 그러나 정부를 통한 규제나 간여는 최소화해야 한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고,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은 알 권리를 존중 받아 마땅하다. 다음의 경구(警句)들을 상기해보자.
‘주장의 옳고 그름은 자유로운 공개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언론은 산소가 고갈되는 잠수함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다. 카나리아가 질식하면 사람도 사회도 숨막혀 살 수없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그 사회의 에어포켓 같은 존재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민주와 자유는 숨 막히기 시작한다. 독재의 첫 걸음은 표현의자유 제약에서 출발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언론에 문제가 있다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제도 보완을 추진해야 옳다.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활발한 공론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국민의 신뢰가 그리 깊지 않으면서도, 거대 의석을 갖고 있는 여당은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