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법 더 조이면 파탄 각오해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등 임대차 3법을 시행한 지 1년 만에 재개정 카드를 만지작거린다고 한다. 대단한 업적이라고 자평했던 임대차 3법이 집세 폭등과 전세 물량 급감으로 세입자와 임대인 모두로부터 실패작으로 낙인찍히자 임대인을 더 조여 존재감을 확실히 해두겠다는 욕심으로 보인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지난 7월 하순 임대차법 1년을 평가하면서 기존 임대차 계약 뿐 아니라 신규 계약에 대해서도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개정을 시사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임대차법과 관련한 대국민담화에서 임대차계약 갱신율이 법시행 전 연간 평균 57.2%에서 77.7%까지 올랐다며 “임대차 시장에서 30년 만의 가장 큰 제도변화”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계약 갱신율 상승은 법규상 강제조항에 따른 결과에 불과할 뿐 임대차 시장은 전세 물량 부족과 급격한 전월세 상승으로 아직도 대란을 치르는 중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지난 1년간 18%와 17% 급등하고 세종시는 27%나 올랐다. 게다가 2년간 계약갱신으로 5% 인상제한에 묶인 물건과 제한이 없는 신규 계약 사이에 가격이 크게 벌어져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전셋값이 몇 억원씩 차이가 나는 형편이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은 11배 가까이 늘었다.
 
수년간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던 전세시장이 지난해 임대차법 시행을 전후로 치열한 눈치보기와 분쟁, 널뛰는 전셋값이 뒤엉킨 난장판으로 돌변했다. 전셋값이 오르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차제에 집을 장만해야 난장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절박한 심리가 작용해 다시 매매가를 끌어 올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입법을 주도한 민주당에 대해서는 거대 여당의 의석수만 믿고 입법 횡포를 저질러 시장을 망쳤다는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나름대로 득실을 따져 세입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도입했다는 내부 평가와 달리 비판이 줄을 잇자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할 데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손을 보겠다는 오기가 치민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에 맞서 ‘우리 편’ 세입자를 끝까지 안고 간다는 이념적 편향도 작용했음 직하다. 임대차법을 재개정해 신규 전·월세 계약에 대해서도 5% 이상을 못 올리도록 규제하자는 반 시장의 발상에 기가 찰 따름이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되려 신규 계약을 규제하기 위한 재개정에 대해 시장과 학계 전문가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반발과 우려가 크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은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임대인 탓으로 돌리려는 파렴치한 행위라며 전세 품귀와 전셋값 급등으로 제2, 제3의 대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 내에서도 무모한 재개정 움직임에 반대하는 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최병천 부원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신규 계약에 상한제를 적용하면 전세 공급자가 시장에서 철수해 전세가격 폭등과 함께 암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임대차 3법 도입과 함께 계약갱신청권 대상이 된 기존 전셋집에 대해서는 임대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의무조항에 따라 본인 거주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전세 계약을 2년 연장하고 5% 인상 상한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법개정을 통해 신규 계약까지 이를 강제할 경우 임대인은 전세 매물을 철회하거나 유보하면서 다른 방안을 강구할 여지가 크다. 전세 매물이 급격히 감소하면 다급해진 세입자들은 이중계약이나 이면계약 등 편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게 된다.
 
경제개발 초기, 당국이 고시하는 형식적인 환율과는 달리 암달러 거래가 성행했다. 정부가 아무리 단속을 강화해도 시장가치를 반영한 암달러가 거래의 중심을 이뤘다. 기업과 일반인들도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암시장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았다. 신규 전세 계약에 상한선을 강제할 경우 당장 집주인의 회피로 전세 매물이 격감하는 것은 물론 그나마 남은 전세 물량은 암거래를 통한 이중가격이 형성될 우려가 높다. 당국이 단속을 강화한다 해도 절박한 수요가 있고 공급이 제한된 시장에서는 단속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신규 계약에 상한선을 두는 규제는 개인 간 계약의 자유 원칙을 과도하게 제한해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등 위헌의 소지가 크다. 전세 암거래가 잠재적인 범법자들을 양산한다 해도 위헌논란은 심리적인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임대차 3법의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개정을 감행할 경우 거여의 위세를 국민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한다면 하는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집을 구하지 못한 난민들의 아우성 속에 암거래와 편법이 판을 치는 주거혼란이 시장을 붕괴 직전으로 몰아갈 우려가 크다. 승자의 독주가 지나치면 끝내 독배로 돌아와 파국을 잉태한다는 심각한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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