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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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 대한 의미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저항 언론에 대한 찬사이자 격려이다. 둘째는 21세기 현재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언론자유가, 저널리즘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언론인이 처음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1935년.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이후 극비리에 재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독일 언론인 커를 폰 이시에츠키였다.
이시에츠키는 강제수용소에 감금됐다. 고문으로 이가 뽑히고 한쪽 눈이 통통 부어 올랐으며 다리를 질질 끄는 처참한 수용소 생활 모습이 국제적십자사에 의해 알려졌다.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 로맹 롤랑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나서서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자는 운동을 벌여 성사됐다.
그로부터 86년만인 올해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마리아 레사는 필리핀 저항 언론인의 상징 인물이다.
2016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전에서 두테르테가 SNS 가짜계정을 활용해 온갖 거짓 정보를 퍼뜨리며 지지자를 결집하고 반대자를 따돌리는 등의 불법 편법 행위를 파헤쳐 보도했다.
두테르테로부터 엄청난 박해와 협박 소송에 시달리면서도 저항 언론의 본분을 잃지 않고 불의에 맞서왔다.
공동 수상자인 러시아의 무라토프 기자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 노바야 가제타라는 신문을 창간, 푸틴 정권의 언론 탄압에 부단히 저항해 왔다.
러시아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1990년 미하일 고르바쵸프 이후 31년만이다.
당시 고르바쵸프는 상금 일부를 노바야 가제타 설립에 기증했다고 전해진다.
노벨상은 언론에 대한 찬사이자 격려
노벨 위원회의 선정 이유와 국제 언론단체들의 평가 찬사를 들으면서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의미를 새겨보고자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항구적 평화 전제조건이다. 올해 평화상은 이를 위해 투쟁해 온 언론인들을 대표하는 수상이다” (노벨 위원회)
“두 사람은 각각 러시아와 필리핀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용기 있는 싸움을 벌였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이상을 옹호하는 모든 기자들의 대표다”(베리트 라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 기자회견)
“그들은 저널리즘의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하는 한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언론인의 권리를 일관되게 옹호해 왔다” (노벨 위원회)
국경없는기자회와 언론인보호위원회 등 국제 언론단체와 유엔은 언론인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저널리즘에 대한 특별한 찬사인 동시에 위협받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긴급한 현실을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구촌 저널리즘의 위기
‘독재정권에 굴하지 않고 언론 본연의 사명이자 의무인 표현의 자유, 알 권리,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지구촌 전체의 언론인들에게 보낸 찬사이며 격려’라는 것이 일치된 의미 부여이자 평가로 요약된다.
현재도 국제사회에서는 언론탄압의 수위가 높아지는 추세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해 전 세계에서 감옥에 갇힌 기자는 274명으로 1992년 조사 개시 이래 최대다.
이 가운데 34명이 가짜뉴스 보도를 이유로 투옥됐다. 언론인 31명이 취재 도중 살해되었고 이중 21명은 보복살해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집권 이후 살해당한 언론인은 12명에 달한다. 러시아 무라토프의 노비야 가제타는 푸틴 정부의 언론탄업에 맞서 싸우다가 기자 6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언론 통제 적책에 신음하고 있다. 태국은 군부 쿠데타로 극심한 언론 통제 상황이다.
대명천지 21세기 지구촌 도처에서 언론인들은 구금과 살해를 포함한 폭력에 노출된 상태다.
안토니우 구테스흐 유엔 사무총장은 “미디어에 반대하는 수사와 미디어 종사자에 대한 공격이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가짜 뉴스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횡횡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가짜뉴스라고 미디어를 공격한다.
권력 비판을 봉쇄하려는 의지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는 이른바 언론징벌법을 제정하려다 멈칫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집권 여당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언론자유 없이는 국가 간 우애도, 군비축소도, 더 나은 세계 질서도 없다”는 노벨 위원회의 경고를 이 시대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층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언론인에게 수여한 노벨 평화상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