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postmaster@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름다운 10월, 매년 10월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올해도 중순경에 깜짝 영하로 내려가 (중부 이북)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지만 곧 다시 멋진 10월의 날씨로 돌아갔다. 그 잠깐의 놀라움이 있었기에 나머지 날들이 더욱 값지고 소중한 보물 같았다.
그런 10월이 간다. 남쪽 창가에 심은 붉은 장미들이 아직 10월을 예찬하고 있다. 겨울에 굵은 가지 위주로 전정해 준 장미는 5월이 되어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여름의 장마에 살아남으며 가을에 다시 큰 꽃을 피워 준다. 물론 이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서는 봄꽃이 지고 나서도 튼실하게끔 비료를 넉넉히 주어 가을에 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될 때까지도 몇 송이씩 꽃을 피워 주기는 하지만 절정은 가을이며 그것도 10월인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 때도 가을은 아름다웠다. 산 밑에 있는 아파트라 100미터만 걸으면 산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고 피톤치드를 자랑하는 소나무, 전나무 숲에 이어 가을 단풍을 맘껏 만끽할 수 있는 산이 현충원과 이어져 있어 산 속에서 만족스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가을은 서울의 가을과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고 서울 친구들은 가끔 묻는다. 내가 빙긋이 웃을라치면 자기들도 웃으면서 슬그머니 질문을 거둬들인다. 너무나 뻔한 대답이 나올 것 같은가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2-를 10월 초순 발표했다. 10여 년째 해오는 다음해의 트렌드 분석이다. 그곳에서 제시한 10가지 키워드 중에 –러스틱 라이프-라는 것이 있다. 네 번째로 중요시된 –러스틱 라이프-는 시골 생활을 말하고 있다. 이름 하여 ‘촌스러움’이 ‘힙’해지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다시 말해서 ‘촌스러움’이 인기 트렌드 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부부가 시골로 내려올 때, 농촌 관계 학자인 남편이 이제 ‘촌스러움’은 새로운 멋을 뜻할 때 쓰는 말이 될 거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설마 -’하고 말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정말 ‘촌스러움’이 멋진 말이 되려 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시골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경천동지할 일로 들리겠지만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물론 –트렌드 코리아 2022-란 책은 젊은이들 (20대부터 40대)을 주 대상으로 씌어 진 책이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많은 시사점을 준다. 책에서는 젊은이들이 5도2촌 (5일은 도시, 2일은 시골)이나 4도 3촌과 같은 생활 방식을 가지는 듀얼러 (도시와 시골, 두 가지 생활을 모두 즐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서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도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시골에서 힐링 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행지로서의 시골 생활을 맛볼 수 있어야 하고, 나중에는 거점 시골을 만들어 애착을 가지고 거주 –주말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도와줬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마침 고향세에 관한 법률도 통과 되었으니 도시인이 관심을 가지는 거점 지방이 있다면 도시와 지방 양측이 윈윈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시골생활에 대한 도시민들의 관심이 증폭되는 것이 시골에 사는 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쁠 리 없다. 그러면 그렇지,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데...
가끔씩 시골의 빈 집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동네 사람 모두가 관심을 갖는다. 그 집이 드디어 팔리나 보다. 하지만 결국 원매자가 초조하게 가격을 묻는 것만으로 해프닝은 끝나고 만다. 주인들은 나중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집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번 떠난 사람 중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5도 2촌으로 시골을 경험한 젊은이들 중, 부를 일구고 난 후, 시골에 집을 하나 장만하고 퇴직 후에 돌아오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으니 시골집은 앞으로 계속해서 인기몰이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이렇게 앞산의 단풍이 아름답고 공기가 투명하게 맑고 햇빛이 따사로울 때면 집 앞 툇마루에 나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5월이 그렇고 10월이 그렇다. 물론 두 계절의 느낌은 다르다. 10월의 햇빛은 위로하는 다정한 햇빛이다. 5월의 빛은 찬란한 빛이고... 그러므로 더욱 10월을 사랑하게 된다.
다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는다. 이제 그 노래는 10월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용 가수 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로도 영어로도 그 노래를 불렀지만 여전히 그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감성의 현을 살그머니 건드리는 그의 독보적인 창법을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10월을 다시 그리워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하게 해 준 이 분에게 감사한다. -잊혀진 계절-은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될 계절의 반어법이니까. 노년이 되어서도 그는 언제나 젊은 노래를 부르고 있겠지.
10월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지는 해의 낙조도 아름답다. 마지막 가려는 가을을 뒤돌아보게 하는 풍요함 때문이다. 사람도 그렇다. 일 년 중 10월은 사람으로 치면 60세에서 7-80세 정도가 아닐까? 가장 넉넉하고 아름다운 성취를 이끌어낸 나잇대다. 일생을 잘 산 풍요의 표시가 안색에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준- 모습이 부드러운 말소리에서 묻어난다.
10월의 장미를 보면서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생각한다. 우리들의 모든 노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준-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면서 뜰 안에 아름다운 장미나무를 키울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10월의 풍요로운 빨간 장미를 보면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기쁨을 공유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