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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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저는 청운동 소박한 한옥이다. 10여분 거리의 아파트에 출가한 딸이 산다. 유치원 다니는 손녀가 있어 영부인은 그를 돌봐야 한다. 딸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주말엔 구기터널을 넘어 싱싱하고 풍성한 물건 가득한 대조동 사장에 들러 채소며 과일 1주일치를 사온다. 시간이 날땐 대통령도 함께 간다.
오가며 시장 상인과도, 장보러 나온 주부들과도 이런 저런 얘기로 휴일 오전이 훌쩍 지난다. 그래서 대통령 부부는 우리네 서민 삶 구석구석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대통령은 경복궁역까지 내려가 부근 호프집에 자리 잡는다. 힘든 하루를 보낸 젊은 직장인들에게 대통령은 친구가 되고 때론 아버지가 된다.
아파트 전세 월세 이야기, 대출금 갚느라 힘든 이야기, 취직 못해 어려운 청년의 고통도 대통령은 듣는다. 함께 즐기고 고통도 함께한다.>
꿈같은 상상화를 그려본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가지는 지금으로부터 꼭 넉 달 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는다. 그 작업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16년간 재임하고 물러나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욕심인줄 알지만 우리도 이젠 제대로 된 대통령을 국가 리더로 보유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생각이다.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보고싶다
16년 집권을 마무리하고 최근 퇴임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퇴장은 아름답다.
그가 보여준 업적 리더십 인간성 모두가 독일인은 물론이고 유럽, 전세계인으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무티(엄마) 리더십’이 메르켈에게 붙여진 최대의 찬사이자 애칭이다.
소탈하고도 인간적인 면모가 아름답다. 그는 총리 관저가 아닌 작은 아파트에 산다. 남편과 직접 먹을 채소를 가꾼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메르켈을 당대 최고의 정치 지도자로 만든 것은 그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힘’이었다는 평이다. 그는 과묵하고 참을성 있게,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재임 기간 중 그의 업적은 화려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서 유로존의 위상을 유지했다.
난민 유입 문제와 영국의 EU 탈퇴, 미국과 유럽간의 갈등 등의 난제 해결에 메르켈의 리더십은 빛났다.
“비리나 부패 같은 스캔들이 전혀 없었던 깨끗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메르켈의 퇴장에 전 유럽인이 아쉬워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메르켈의 아름다운 퇴장에 쏟아지는 찬사 몇가지.
“멋진 말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멋진 행동을 보여주었다”(NYT)
“참모중에 아첨꾼은 없었다. 누구나 메르켈을 비판할 수 있었다”(메르켈 측근 참모)
“인기와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경청과 인내 설득으로 성과를 도출해냈다”(유럽 언론)
“독일인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살펴보는 사람을 원했다. 메르켈은 자신에게 초점이 집중되지 않는 정치 스타일을 완벽하게 만들었다”(독일 정치인)
말로가 불행한 대통령 없이지길
우리는 어떤가. 역대 대통령의 말로를 보자.
망명 피살 투옥, 좀 나은 경우라야 자식들의 감옥행 아니었던가.
지금도 전직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갇혀있다.
넉달 뒤 뽑힐 대통령은 메르켈의 반만 따라가길 염원해 본다.
사람 잘 골라 쓰고, 메르켈처럼 인내 설득 화합의 리더십이면 될 것이다.
진영 논리에 억매어 인사가 엉망이면 배는 산으로 간다. 국민 생활 곳곳의 가려운 곳, 아픈 곳을 살피고 보듬으면 된다.
그러려면 주말마다 재래시장에 가고, 호프집 삼겹살집에서 서민들 살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된다.
구중궁궐 청와대에 갇혀 간신배 아첨이나 듣고 나라 이끌면 국민만 고달프다. 제발 우리도 이제 메르켈 같은 멋진 지도자 모시고 살고싶다.
메르켈은 미리 정해놓은 자신의 묘비명에 ‘겸손(謙遜)과 품위(品位)’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