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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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종종 시골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총체적으로 비난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주로 귀촌, 귀농한 사람들에게서다.
며칠 전 장날에 장에 나가는데 예쁜 꽃집이 눈에 띄었다. 통유리로 된 전면 창에 갖가지 식물들이 즐비하고 날씨가 찬데도 건물 앞에 온통 꽃 핀 화분 천지다.
흥미가 생겨 들어갔더니 웬걸 커피숍이다. 안팎의 꽃들에 대해 치하한 후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오전이라 다른 손님도 없어 자연스레 후덕해 보이는 여주인과 대화를 트게 되었다.
영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대학교에 가기 위해 영천을 떠났고 몇 십 년 외지에서 지내다 지난 해 돌아와 가게를 오픈했단다.
‘어때요?’ 묻는 말에 그녀는 첫마디가 ‘시골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 많아요. 정말 인색해요.’였다.
아니, 일반적인 물음에 그렇게 답할 정도라니.
주인으로 보자면 영천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귀촌, 귀농이 아니라 귀향이라고 봐야 마땅한데, 고향의 어떤 점이 그녀를 실망시켰을까 궁금했다.
옛날 여고 때 친구들이든 가게를 내기 위해 거래를 하게 된 부동산 업자든 모든 비용은 당연히 그녀가 내는 것으로 치부하더란다.
더욱이 조금도 고마운 내색은 없고, 가끔은 적대적인 감정까지 표현하는 바람에 내가 과연 오기를 잘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나야 뭐라고 말할 형편은 아니니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장단이나 맞춰주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가 얘기를 끝낼 즈음에 단호하게 ‘전부 그렇지는 않아요. 시골 사람들 조금만 이해하면 정말 좋은 분들도 많아요.’ 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나의 이 말을 의례적인 것으로 들었던지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금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특히 내가 무의식적으로 말한 대답, ‘시골 사람들 조금만 이해하면..’ 이란 대목에 이르러서 뭔가 깨우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제 시골 온 지 거의 5년이 되어가는 나도 처음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그러니 아무런 연고 없이 시골 와서 농사를 지으려는 청년들이나, 이런 저런 연고가 있어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나 시골은 분명 서운한 점이 많은 곳임에 틀림없다. 왜?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일까? 왜?
어제 이웃집 텃밭을 지나가는데 그 내외분이 내가 왜 그 길을 지나는지 물어왔다. 마을 초입에서 들어오려면 지나쳐야 할 곳이 아니고, 그 반대쪽 길로부터 내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네, 뭐 일이 있어서요.’ 라고만 말하고 내 갈 길을 종종걸음으로 갔겠지만 지금의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곤조곤 설명을 한다. ‘이 옆, 이웃집에서 제가 청계란을 한 판 샀는데 그 땐 돈이 없어서 못 드렸어요. 그래서 지금 돈을 갖다 드리고 오는 길이에요.’
그 분들은 만족한 얼굴로 끄덕끄덕한다. 이웃끼리의 대등한 대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나 보다. 옛날처럼 내가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 내 갈 길을 갔더라면 그 분들은 아마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 서운한 심정이 마음 한 쪽에 또아리 틀고 있다가 어떤 경우에 튀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도시와 농촌의 이웃이 다른 점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시골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하기 쉽다. 왜 그들은 무시당하는 것에 민감한 것일까? 왜?
우선 시골에서 죽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시골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곳이 아니다. 자녀를 비롯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자신만 남았다는 생각도 드니 도시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안 가질 수 없다.
정부는 시골 사람들을 정책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부분’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많은 혜택을 베푸는 것 같아 보인다. 정부의 혜택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가끔 선심성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그 혜택을 잘 모른 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를 유발시킨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정부의 정책에 민감하다. 하지만 정부가 시골 사람들에게 선심성 도움을 베풀기 전에 전적으로 그들의 복리 후생을 먼저 염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아직도 시골 주택에 많은 푸세식 화장실을 수세식 화장실로 바꿔주는 문제부터 기본적인 주택 수리에 드는 돈을 도와주는 식의 정책 말이다.
무엇보다도 시골 땅의 규제를 풀어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있다면 농촌의 형편은 좀 더 나아지고 도시를 부러워하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농촌에 사는 분들에게 모두가 빚지고 있는 부분, 식량 안보를 위해서 그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도시인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 억울함이 있기에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오는 귀향, 귀촌, 귀농인들이 애꿎은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닐까?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GDP 3만 불 이상 달성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 혹자는 선진국이라고 하고, 또는 아직 진입하지 못했다고도 하지만 (투자가치 부분에서만 아직 선진국 인정을 받지 못했어도 유엔 무역개발회의는 2021년 7월, 이전까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던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추가됐다고 발표), 이제 우리자신도 선진국 국민이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이런 마당에 농촌이 더 이상 소외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농촌에 살며 일하는 농촌 거주민들의 바람을 잘 헤아려 주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뿐인 선진국이 아닌 진정으로 어려운 처지의, 희생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노력하는 정부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여유로워진다면 누군들 따뜻한 마음으로 귀향, 귀촌, 귀농인들을 환영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