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postmaster@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종부세로 은퇴자 가계 상당수, 빚더미 위기에 몰려
‘세금폭탄’ ‘세금이 아닌 벌금’이라는 불만이 당장 튀어나왔다. 종부세위헌청구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조세불복심판 및 위헌청구소송을 내기로 하고 내년 초까지 소송인단 모집에 들어갔다. 내년에는 세부담 상한을 더 높여 다시 3배까지 뛴 종부세가 나온다고 하니 납세자의 불만은 높아질 수밖에. 지난해 정부 직권으로 임대주택 등록이 말소된 영세 사업자들은 연간수입을 웃도는 종부세가 날아와 살아갈 길이 막막한 형편이다. 궁지에 몰린 다주택자들은 세입자에게 전가해 임대료를 올리겠다지만 이는 홧김에 나온 말이지 실제로 임대료 인상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대다수 1주택자의 종부세액은 중형 자동차세 수준”이라며 ‘세금폭탄’은 과장이라고 주장한다. 또 종부세 납세자는 주민등록인구의 2% 미만이고 가구수로 따져도 4.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종부세 인상을)예고했었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부세를 통해 마련한 세수는 취약한 지방에 우선 배분되는 구조라며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종부세 강화를 주장하는 여당 인사들은 은퇴자에 대한 세금이 너무 무거운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은퇴했으면 서울 시내 집을 팔고 외곽으로 나가 종부세 없는 집에 살면 된다”고 했다. 평생 일해 장만한 집을 세금 내기 위해 팔고 살던 곳을 떠나라는 요구다. 은퇴자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세금 고지서를 받은 대부분 납세자들은 세금폭탄 논란을 희석하려는 청와대와 여당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 “세금 뜯기고 바보 취급받는 모멸감이 들었다” “영세 사업자들 못살게 구는 게 정부 역할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실장은 ‘피할 길’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중과와 전세금 반환 부담 등 현실을 외면한 주장으로 들린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추가로 매입한 경우 이를 다시 매각하려면 중과세율이 적용돼 최고 65~75%(조정대상지역) 양도세에다 10% 지방세를 물어야 한다. 세금 내고 세입자 전세금까지 돌려주려면 매각대금으로 부족하기 십상이다. 매각이 어려우면 자녀에게 증여하는 길밖에 없는데 조건이 까다롭고 증여세율도 크게 올라 형편이 빠듯한 가계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실장이 설마 양도세를 피하기 위한 증여를 권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은 툭하면 ‘징벌적 과세’를 들먹이며 다주택자들을 압박했다. 고루 나눠 가져야 할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해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며 세금을 중과해 혼내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실장은 몰상식한 주장 대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고상한 용어로 세금폭탄을 포장했다. 다주택을 보유하는 부(富)와 영예를 누렸으니 세금 부담을 엘리트 계층의 고귀한 책무 정도로 여기라는 말이다. 다주택 보유를 비도덕적 행위로 공격하며 높은 세금을 때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문재인 정권이 징벌 대신 고귀한 책무로 말을 돌리는 것은 납세자를 달래기보다 차라리 조롱에 가까운,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린다. 부과 대상이 전 국민의 2%에 불과하다는 정부 설명은 종부세가 인별로 합산되지만 다주택 가구에 중과하는 방식이어서 사실상 가구별 과세에 가깝다는 실상에 어긋난다. 2%에게만 세금을 때리므로 98% 절대 다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거주 여건을 중심으로 국민을 갈라쳐 반발을 억누르고 납세자를 여론에서 따돌리려는 저급한 방편이다. 갈라치기 수법은 오히려 세금부과의 정당성을 흔들어 반감을 더할 뿐이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세금이 부과되면서 가계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임대수입에 의존해온 은퇴자와 고령 가구 상당수는 패닉상태에 빠져 생계가 막막한 형편이다. 그래도 정부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통 관심이 없다. 수입이 제한된 고령 가구와 영세 사업자들까지 다주택자로 몰아 가계를 파산위기로 몰아가면 정부가 앞장서 빈곤층을 양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종부세와 양도세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마땅하지만 현 정부는 전혀 의지가 없어 보인다. 세 부담 능력이 없는 가구들에 대한 임시대책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러나 납세자 반발을 외면하고 정부가 끝내 강경대책만 남발하고 있으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론이 더욱 힘을 받을 만하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