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풍압 발전 등 국내기업 신기술 외면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가파도는 제주도 본섬에서 5㎞ 남짓 떨어진 작은 섬이지만 청보리축제가 열리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정부와 제주도는 한국전력을 앞세워 가파도를 ‘탄소 없는 섬’으로 만들겠다며 10년 전부터 140여억원을 들여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패널을 설치, 재생에너지 이용의 대표적인 섬마을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적은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의 주력인 풍력 발전기 2대는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가면서 모두 고장나 다시 디젤 발전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2013년 이후 3년간 가파도 풍력 발전기 가동시간은 603시간(25일)에 불과했다. 풍속과 풍향 변동이 매우 잦은 가파도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업을 추진한데다 인도산 발전터빈이 생산중단 기종이라서 한번 고장나면 부품교체가 어려웠던 탓이다. 가파도의 재생에너지 자급률은 20%대에 그친다. 정부는 그래도 그린 뉴딜의 일환으로 섬지역 에너지전환사업을 다시 벌이기로 하고 지난 9월 가파도와 전북 부안군 상왕등도 등 4곳을 선정했다. 가파도에는 다시 65억원을 들여 기반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인데 이번 사업 역시 산업통상자원부 시행으로 한전이 주관한다.
 
한전은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사업에서 주요 역할을 맡아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데 여전히 소극적인 대처에 그치고 있다. 한전과 관련 자회사 경영진은 문 정부 초기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충하고 원전 가동을 줄인다는 탈원전 정책에 앞장섰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면 배임 등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커지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탈원전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식이다. 반면 풍력과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해서는 신기술 개발과 도입을 외면하고 실효성 없는 기존 시스템을 답습할 뿐이다.
 
기존 풍력 발전 방식은 강풍과 난류가 심한 국내 섬 지역 여건에 맞지 않아 고장이 잦고 발전효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내려진 지 오래다. 또 바다에 대규모 풍력 단지를 설치할 경우 해상오염을 유발하고 어민의 생업을 위협한다는 반발도 적지 않다. 국내 에너지벤처기업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돌아가는 기존 방식 대신 풍차(블레이드) 각도를 조정하거나 풍속에 따라 발전부 위치를 가변하는 등 기류의 물리적 변화를 활용하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왔다.
 
-효율 4배 높인 탑형 첨단모델, 성능평가 마쳐-
 
블레이드를 눕혀 하늘을 보도록 개량해 낮은 풍속에서도 가동, 일정 출력을 확보하는 수직형 풍력 발전기도 민간에 보급되고 있다. 한 국내 에너지 벤처기업은 탑형의 구조물 내부에 블레이드를 넣은 수직형 발전기를 복층으로 설치함으로써 바람의 압력차(풍압)를 이용해 효율을 4배 이상 높이고 소음을 줄이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업은 풍압 기술을 이용한 ‘오딘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제주도 모슬포에 실증 타워를 건설, 4년간 내부계통에 전기를 공급했다. KOLAS(한국인정기구) 등의 성능평가를 통한 검증을 완료하고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기업들과의 기술협약, 합작사업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국내사업을 주관하는 한전은 풍압 발전이 아직 KS 인증을 받지 않은 기술이라며 도입을 꺼리는 입장이다. 기존 기술이 아닌 미인증 기술을 도입했다가 실패하면 예산 낭비 가져올 뿐이라고 반대한다. 신기술이라 해서 무턱대고 뛰어들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돌지 않는 풍차’를 다시 돌리겠다며 KS 인증을 고집하는 한전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존 방식의 틀에 갇혀 과거 기술에 의존하려는 발상이야말로 예산 낭비를 초래하는 지름길이다. 민간기업과 함께 과감히 기술개발에 나서 원가를 절감하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전과 계열 자회사들은 지난 수십년간 몸에 배인 영업사원 체질을 청산하지 못한 채 기존 설비로 만든 전력을 공급하고 때맞춰 수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를 이용한 LNG와 화력발전을 줄이되 안전성과 효율을 높인 원전 기술 확보가 반드시 요구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동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앞장서 공무원을 능가하는 관료주의 폐해를 보여주었다.
 
같은 공기업이지만 포스코가 이룩한 신기술 개발의 성과와 경영혁신을 한전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미 고로 공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한 포스코는 1992년부터 4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용융환원제철법의 하나인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 원가 절감과 탄소화합물 등 환경오염물질 배출 절감에 나섰다. 2007년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에 성공, 국내외 특허출원을 마친 상태다. 포스코가 상용화까지 들어간 1조원 이상의 엄청난 비용 때문에 기존 고로 공법에 안주했더라면 환경오염을 억제해야 하는 경쟁체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100조원이 넘는 누적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이 대규모 설비에 의존한 장치산업 수준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다. 적자가 쌓이는 사업 분야는 과감하게 정비하고 민간기업과의 합작이나 독자 개발을 통해 신기술을 도입해야 살길이 열린다. 탄소제로 프로젝트에 호응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안전성 확보와 기술개발을 통해 주전력을 확보하고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지 실정에 맞게 늘려가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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