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 포함...'탈원전' 與의 입장 변화
李 "신한울 3·4호기, 국민 뜻 존중"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김성민 기자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원자력 발전을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면서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개발에 청신호가 켜졌다. EU는 지난 2일 특정 목표를 충족시킨다는 전제조건하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모두 지속 가능한 투자로 분류할 수 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우리나라 20대 대선후보들은 증(增)원전과 탈(脫)원전의 양극화를 이어가면서도 핵폐기물 처리와 같은 원전 역효과에 대한 분석 등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선후보 4명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원자력 발전 관련 공약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탈원전 정책으로는 탄소 중립이 불가능하다고 공약했으나, 이외에 구체적인 언급이 부족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역할에 걸맞게 중립적인 정책을 제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네 후보는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크고 작게 대립하고 있다.
 
◇ 원전 문제 놓고 네 후보 각축 벌여
 
탈탄소 에너지원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후보들 간의 에너지 정책 관련 공방이 본격화된 시점은 지난 3일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 4자 TV토론에서 비롯됐다.
 
토론에서 이 후보는 이날 윤 후보에게 “10년 이내에 원자력 발전단가보다 재생에너지가 더 싸진다고 보고 되고 있다”며 “원전 문제에 대해 과격하게 무조건 문재인 정부 반대로 안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신재생에너지만 갖고 2050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이 유지된다고 보나”라고 반박했다.
 
또 이날 토론에서 윤 후보는 이 후보로부터 받은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을 아느냐”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서 후보 자격 미달 논란까지 일었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라는 뜻이다. 영국에 국제 비영리 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시작한 자발적 캠페인의 일환이다. 각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다만, 늦어도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전기 사용 100%를 달성해야 이룰 수 있어 현실 가능성을 놓고 논쟁중이다.
 
이 후보는 “RE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라고 묻자 윤 후보는 “RE100이 뭔가”라고 되물었다. 이 후보가 “재생에너지 100%”라고 설명하자 윤 후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유수 기업들이 이미 RE100 채택해서 재생에너지 100%로 생산하지 않으면 (제품을) 공급 받지 않겠다고 한다”며 “이럴 때 재생에너지 포션(비중)을 늘리지 않으면,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했다가 유럽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발동되면 어떻게 대응하려고 하나”라고 물었다.
 
윤 후보는 “그건 석탄의 경우”라며 “꼭 재생에너지만이 아니고 원자력이나 다른 전기 에너지들인데,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전기 에너지를 쓴다는 뜻이다. 그게 어떻게 재생에너지만으로 되나”라고 반박했다.
 
이날까지만 해도 EU는 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을 포함시키지 않고, 검증 대상 정도로 평가했다. SMR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윤 후보는 EU 택소노미에 관해 무지함을 드러내면서 그의 탈원전 백지화 공약이 설득력을 잃어가는 분위기였다.
 
이 후보는 “EU 택소노미가 중요한 의제인데 원자력 관련 논란이 있다. (윤 후보가)원전 전문가에 가깝게 원전을 주장하시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갈 건가”라고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EU 뭐란 걸 들어본 적이 없으니 좀 가르쳐달라”고 답해 논란이 커졌다.
 
또 이 후보가 원전 입지 문제와 핵폐기물 처리 해법을 묻는 질문에도 탈원전 백지화를 공약했던 윤 후보는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후보는 “우리나라는 (원전을)어디에 지을 것이냐 핵폐기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중요 의제라서 이 두가지가 해결 안되면 녹색에너지로 분류가 안된다. 원전을 어디다 지을 생각인가”라고 물었다. 윤 후보는 “원전 입지 문제는 지금 여기서”라고 말을 아끼자 이 후보는 “이미 (핵)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를 어떻게 처리할 건가”라고 재차 물었다. 윤 후보는 “폐기물 처리 기술이 아마 신재생 에너지 고도화시키는 것 못지 않게 빨리 되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 공방 도중에 안 후보는 “EU 택소노미가 원전을 그린 에너지로 인정한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 후보는 “조건이 붙어있다”고 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논쟁이 과열됐다.
 
결국 1차 토론은 ‘윤 후보가 RE100과 EU 그린 택소노미에 대해 모르고 있다’라는 논란만 낳고 찝찝하게 끝났다.
 
▲ 뉴스케일 직원들이 SMR 실증 테스트 시설 외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케일
▲ 뉴스케일 직원들이 SMR 실증 테스트 시설 외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케일
◇ 한발 늦은 SMR...李 “국민 선택에 맡겨야"
 
에너지 관련 언급은 지난 11일 진행된 2차 TV토론에서도 재조명 됐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이 다음 달 SMR 기본설계를 위한 연구 용역을 시작으로 내년 11월까지 기반 설계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구상을 지난 9일 발표하면서 원전 논쟁이 가중화된 분위기다.
 
한수원 중앙연구원 SMR추진단은 ‘혁신형 SMR 혁신기술개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다음 달 7일까지 용역입찰서를 접수한 뒤 심사를 거쳐 다음 달 중순께 연구 용역 수행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용역 범위에는 SMR 가상원자로 통합 시뮬레이션과 주요 기자재 성능평가, 노심 설계, 사고 시 모의실험 등이 담겼다. 한수원은 SMR 기술 개발 특허분석 자문 용역 입찰도 이달 중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수원이 혁신형 SMR 개발사업을 본격화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이 앞다퉈 SMR 개발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는 2050년 전 세계 SMR이 최대 1000기가량 설치되면서 시장 규모가 4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SMR이 탄소 중립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밀려 SMR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에서야 정부는 58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SMR 개발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했다. 5년 간 탈원전을 내세운 정부 여당 내에서도 최근 SMR에 대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후보 캠프는 원전 전문가들을 영입하면서 SMR 등 원전 산업의 적극 발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차 토론에서도 이 후보는 감원전 입장을 내비치며 "윤 후보가 원전 4기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후보는 "추가 건설은 아직 말한 적이 없다"고 부정했다. 윤 후보가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을 공약했지만, 실제로 원전 추가 건설을 먼저 주장한 적은 없다.
 
윤 후보는 지난해 말 신한울 3·4호기 건설현장에 방문했을 당시 원전 추가 건설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고 "더 필요하다면 집권 후에 추가 검토해야 한다. (추가 건설한다면) 에너지 기본계획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심 후보는 토론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등 탈원전 정책이 국민합의를 통한 것이며 재생에너지 위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후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문재인 정부가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 과정에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한 일이 없다. 문 정부의 탈원전 행정행위는 2017년 10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발표한 ‘탈원전 로드맵’이 유일하다. 이 로드맵의 근거는 선거공약이었다는 점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가 원전비중 축소를 권고한 것에 불과하다. 

이 후보는 심 후보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해 질의하자 "그거는 전에 여러 차례 제가 의견을 밝혔는데 지금 현재로서는 중단돼 있지 않습니까? 설계 중에 중단돼 있는데 저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재판단을 해 볼텐데 이미 발전 단가가 역전될 가능성이 최근에 많아졌고 또 핵폐기처리장 확보 문제도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께서 결국은 충분히 정보를 가지면 그냥 하지 말자라는 결론을 낼 것 같은데 그래도 국민 뜻을 존중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후보의 감원전 공약은 사실상 중심을 잃은 듯 보인다. 이 후보가 그동안 "탈원전이 아닌 감(減)원전 정책을 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과 달리 국민의 뜻에 따라 원전 건설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입장 변화로 풀이된다.
 
또 심 후보는 윤 후보에게 “강남에 (원전) 짓는 것 동의하나"라고 질문하면서 원전 부지 문제를 제기했다.
 
심 후보는 "윤 후보 계획을 보니까 2030년도에 원전 비중이 34% 정도로 되어 있다. 그러면 신한울 3·4호기 포함해서 SMR 한다고 하니까 30개 더 짓는다는 거다"라며 "서울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이 강남이다. 강남에 (원전) 짓는 것 동의하나"라고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30개 더 짓는다고 안 했다. 신한울 3·4호기 마저 짓고 그러다 보면 30% 정도 넘어가지 않겠나, 그런 말"이라고 했다. 윤 후보는 강남에 SMR을 지을 수 있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강남에 짓는 게 이론상 가능하지만 님비 현상 등 주민 수용성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실제 미국 뉴스케일은 아이다호에 발전용량 60㎿급 SMR 12기로 이뤄진 총 720㎿ 규모의 원전발전단지 건설에 나섰다. 뉴스케일 SMR의 경우 12만8000㎡의 부지만 있으면 된다. 대형원전 부지의 17분의 1 수준이다.
 
테라파워를 설립한 빌 게이츠도 "원자력이 자동차나 화석연료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인다"며 10년 안에 미국 전역에 SMR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번 토론에서 원전 개발 문제를 놓고 후보들의 다양한 입장이 나왔지만, 이는 공약에 불과하며 결정은 국민들의 몫이라는 게 전 세계적 기류다. 앞서 탈원전 국가들은 전부 국회 토론과 입법화를 통했다. 2002년 독일의 사민·녹색당 연정이 밀어붙인 탈원전법은 2010년 기민·기사·자민당 연정에 의해 개정돼 원전 수명연장이 허용되기도 했다. 대만은 2025년까지 탈원전하겠다는 법조항을 국민투표로 삭제했다. 

한편,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난 5년간 한국전력의 부채 증가분 34조4000억원 가운데 10조2000억원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것이다. 원전 발전 비중을 2016년처럼 30%로 유지했다면 한전이 10조원 손실을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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