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연 기자
▲ 박수연 기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상 기후 현상과 밀 수출 세계 1위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국제 곡물가격이 상승하면서 세계 식량 수급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특히 밀과 옥수수 같은 곡물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로 이미 가격이 20% 이상 오른 바 있다.
 
이에 곡물자급률이 20.2%에 불과한 국내 곡물시장도 비상이다. 계속해서 상승하는 서민 밥상 물가는 “국내 식량자급률을 상향해 식량주권을 확보해야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양 국가 간 전쟁 장기화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더 큰 압력을 줄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밀 수출 세계 1위 국가이며 우크라이나도 밀 수출 세계 5위, 옥수수 4위 국가이다.
 
지난 8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 등에 따르면 밀 선물가격(t당)은 2월 평균 296달러에서 지난 7일 524달러로 77% 급등했다. 옥수수는 256달러에서 295달러로 올랐다. 밀과 옥수수뿐만이 아니다. 적도 지역에서 일어나는 저 수온 현상인 라니냐의 영향으로 남미지역에는 2년 연속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두와 소맥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렇듯, 현재 국제 곡물 가격은 오를 이유 밖에 남지 않았다. 문제는 오를 가격 밖에 남지 않은 밀과 옥수수, 대두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곡물 시장이다.
 
한국은 매년 1700만t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는 세계 7대 곡물 수입국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곡물 수급안정 사업 정책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한국의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밀 0.5%, 콩 6.6%, 옥수수 0.7%이다.
 
특히 수입 곡물 중 67.7%가 사료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 곡물가격 급등과 원활하지 않은 곡물 수급은 축산농가에도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2009년 56.2%였던 자급률은 2019년 45.8%를 찍으며 10.4%p 하락했다. 지난 2020년, 환경부는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발간하고 “2100년 쌀 생산량은 지금보다 2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계속되는 식량자급률 하락은 농산물 수입 의존도를 더욱 높이게 하고 이는 식량안보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즉 식량주권 포기는 식량안보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현재 34개국이 식량부족 사태를 겪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1%에 이르는 9억 명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다고 추정했다. 현재의 인구증가 추세가 유지된다면 2040년 세계인구가 100억 명을 넘어서면서 식량은 자원이자 무기가 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국내 식량자급률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농산물의 초석인 ‘종자’의 주권은 빼앗겼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영향력 있는 종자회사들은 다국적기업에 매각됐고, 현재 국내 종자시장 규모는 세계 시장의 1.1% 수준인 4억5000만 달러에 머물고 있다.
 
쌀과 보리 등 식량종자는 국가가 직접 관리하지만 채소와 과수종자는 민간 자율에 맡기면서 이들 품목의 종자 자급률도 크게 떨어진 상태다. 오랜 기간 부담스러운 연구비를 투자해 어렵사리 종자개발에 성공한다 한들 경쟁력이 높은 해외시장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 선거 이전 대선후보들은 저마다 식량자급률 목표치 상향과 관련한 농정 공약들을 펼쳤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식량자급률 목표치 상향·달성을 위해 “쌀, 밀, 보리, 콩과 같은 기초 식량의 비축량을 늘리고 식량 자급의 목표치를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농업계는 한 목소리로 윤석열 당선인에게 차기 대통령으로서 식량안보를 지켜줄 것을 주문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10일 “차기 정부는 식량위기 극복을 위해 농업, 농촌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새 대통령의 공약인 공익직불금 확대와 함께 식량안보직불 신설과 쌀 소비 감소를 막기 위한 쌀 의무자조금 도입 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농업부문 탄소중립 실현, 식량자급률 목표치 상향·달성 등과 관련해 재원조달을 비롯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농업 어업 축산 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농촌 고령화와 글로벌 곡물 공급 차질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농산물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식량자급률 목표 계획을 세워 국내 식량안보를 탄탄히 해야 할 것이다.
 
“농업이 명실상부한 미래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가 앞으로의 농업 정책에 꼭 반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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