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 협상과 타협 통해 與小野大를 정치복원의 기회로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3,9 제 20대 대통령 선거로 대한민국의 정치지형(政治地形)이 새롭게 크게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청와대와 행정부)과 국회,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 포함 절대 우위) 등 모든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하던 모양새에서 대통령 권력을 제1야당이던 국민의힘에 내준 것이다.

정부 권력에 관한 한 여야가 공수교대(攻守交代)를 하고, 의회권력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아무도 투표자의 50% 지지를 얻지 못한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0.73%포인트(24만 7000여 표)차로 신승(辛勝)한 대목은 무슨 조화(造化)이며 함의(含意)인가.

이런 상황은 실로 당장의 현실정치와 한국정치사에 시사하는 바가 큰 동시에 한편으로 최고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정치인과 국민들에게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힘을 앞세운 밀어붙이기식 완력정치, 닥치고식 막가파 독식정치, 내로남불의 오만과 패거리정치에 조종(弔鐘)을 울렸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각종 무리한 정책과 제도의 입법과 시행은 물론,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獨食), 비리와 추문 감싸기 등 문 정권 민주당 정부 5년의 반성 없는 폭주(暴走)가 부른 민심이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제 정부 권력을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에 넘김으로써 그간의 민주당 권력 집중화 현상을 조정, 견제와 균형을 맞춰나가라는 국민들의 주문(注文)으로 해석된다.

여야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사생결단식 이익추구 관행을 탈피, 상호 인정·존중에 바탕한 협상과 타협을 통한 양보와 협치(協治)의 정치를 해달라는 시대적 사명(使命)이자 역사적 소명(召命)인 셈이다.

’한 손으로는 박수를 칠 수 없다(孤掌難鳴·고장난명)‘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언제 어디서도 통하는 변함없는 진리다.

이는 서로의 위치와 한계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상대에게 진정으로 가슴을 열고 한발짝 다가설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과연 윤 당선인과 소수여당인 국민의힘, 그리고 거야(巨野) 민주당은 대오각성과 환골탈태를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우선 다행스러운 것은 윤 당선인이 지난 10일, 당선 일성으로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며 “모두 힘을 합쳐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천명한 점이다. 국민통합을 위해 협치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날 자 아침신문이 윤석열 당선인에게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국민통합‘과 ’협치‘를 강조하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기 돌파 무기는 국민통합인 만큼 정치권은 편가르기 끝내라”라며 각계 원로들이 ’통합의 길‘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는 절절한 목소리를 여야 모두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사실 국민이 분열되고 위기를 극복한 나라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사태,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패권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전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비상한 시국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념, 지역, 세대, 남녀, 계층 간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뤄야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선거 과정과 결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고 치유, 통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을 맞게 됐지만 그 균형 속에서 통합과 협력의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 국민의 욕구이고 시대정신이 아니겠는가.

이와 관련, 민주당의 ’미스터 쓴소리‘ 이상민 의원(64, 대전 유성을, 5선)은 대선 패배 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신승해 청와대와 행정부 권력을 쥔 윤 당선인이나 172석 막강한 의회 권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 역시 “과다 대표된 상황”이라며 “각자 현재 딛고 있는 상황, 자기 신세를 직시하면 협치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기 신세와 형편, 확보하고 있는 지분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되겠네‘라는 생각이 퍼뜩 들 것이다. 현실적으로 딛고 있는 기반을 생각하면 각자 절반도 안되는 것 아닌가. 겸허하게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고 내 것도 관철시키고, ’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아니면 법안 통과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을 게 아니라, 적극 협조할 테니 가지고 와봐라’하고 ‘포지티브(positive)하게 지금까지의 야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같은 온건파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는 이번 민주당 후보의 패배를 두고 “원리주의 강경파에 끌려가다 망했다”는 민주당 원로들의 반성문과 궤(軌)를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친문 강경 세력들은 여전히 강공(强攻)과 딴지걸이를 벼르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수세적으로 방어전만 치를 수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며 윤석열 정권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는 절대 다수의석이 민주당에 있다"며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정치개혁, 민생법안, 언론개혁, 검찰개혁 등을 신속하게 밀고나가 권력의 절반인 국회 주도권을 틀어쥐어야 한다. 대장동 특검도 신속하게 처리하고"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것이 윤석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비단 정 의원뿐 아니라 최강욱 의원 등 민주당 강경파들이 같은 입장이어서 통합과 협치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상존한다.

여기에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 또한 변수다.

5월 10일 닻을 올리는 윤석열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지방권력 지형 반전(反轉)을 노리는 국민의힘과 계속해서 우위를 유지하려는 민주당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

민주당 입장에선 정국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인수위가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총리, 장관 인선과 여가부 폐지 등을 가지고 맹렬히 공격할 것이란 것이 소수여당 국민의힘의 우려섞인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에서 보듯 국민들은 현실 정치인보다 현명하고 냉철하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지 다수의 힘으로 보란 듯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거나 딴지걸이를 하다가는 민심의 호된 역풍(逆風)을 맞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자신들의 처지와 분수를 모르고 여당입네하고 마이웨이를 불사하다가는 청와대와 행정부 권력을 차지한 소수여당 국민의힘도 예외가 아니다.

’君子舟也(군자주야) 庶民者水也(서민자수야) 水則載舟(수즉재주) 水則覆舟(수즉복주)‘-’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순자(荀子) 왕제편(王制篇)에 나오는 이 말은 여전히 이른바 ’민심의 바다‘를 웅변하고 있다.

한편 ’정치신인’ 윤석열 당선인과 여당 국민의힘의 국민통합과 협치의 첫 시험대이자 구체적인 바로미터는 조각(組閣) 등 인사(人事)다.

진영(陣營)과 친소(親疏)관계를 벗어나 실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널리 구하고 면밀히 검증해 발탁하는 것이 요체다.

마음의 빚을 넘어 친구에게 거리를 두는 비정한 냉혹, 미움의 벽을 넘어 원수도 중용하는 게 공정함이다.

내 오른팔이라도 목을 베는 ‘읍참마속(泣斬馬謖)’과 원수라도 포용하는 ’옹치봉후(雍齒封候)‘는 공정한 인사의 필수요건이다.

’옹치를 제후에 봉하다.‘ 가장 미워하는 사람에게 요직을 맡겨 여러 사람들의 불만을 무마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의 일이다. 내 공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불만, 이대로 팽(烹)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어우러져 조정은 어수선했다.

이때 해결책은 '배신의 아이콘' 옹치(雍齒)를 십방후(什方侯)에 봉하고 봉읍을 후하게 내린 일이었다.

옹치는 유방과 같은 고향 패현(沛縣) 출신의 장수로 그를 멸시하고, 전공은 있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배신해 화병까지 나게 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옹치를 후(侯)에 봉하고서야 조정은 안정됐다.

'철천지원수도 중용하는데 기준을 어떻게 의심하겠는가'하며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치적을 쌓은 황제들은 협치의 달인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려 죽이고자 한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은 제환공(齊桓公), 왕자의 난 때 황태자 편을 들어 이세민(李世民, 당태종)의 독살 음모를 내기까지 한 위징(魏徵)을 중용한 당태종이 대표적 예다.

미국의 대통령리더십 연구가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은 저서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Leadership In Tubulent Times)'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 등 4명의 대통령 리더십을 분석했다.

혼란을 헤쳐나간 이들의 공통점은 포용의 리더십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리더의 힘은 국민의 결속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식, 갈가리 찢겨진 국론(國論)을 통합하고자 했다. 내 편으로만 자리를 채워 줄을 세우고, 세를 불리는 것은 통합(統合)이 아니라 야합(野合)이다.

링컨은 대통령 당선 후 보수파와 급진파를 각각 대표하는 윌리엄 헨리 슈어드와 새먼 P 체이스를 입각시켜 위기를 이겨내고, 공식적 조언자로 삼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백악관 속 야당으로 톡톡히 반대자 역할을 했다. 그의 비서인 루이스 하우는 쓴소리를 일삼아 '미스터 노맨(Noman)'으로 불렸다.

존슨은 "원수는 텐트 밖에 두는 것보다 안에 두는 게 더 낫다"는 농담을 즐겨했다.
아무튼 14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새정부 총리에 김부겸 유임 검토’ 카드는 그 발상의 참신성과 실효성 등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만하다. (당사자인 김 총리와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선긋기에 나섰지만.)

김 총리가 유임되면 국회 인사청문회나 임명 등의 표결이 필요없어 총리 국회 인준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여야 갈등을 피할 수 있고, 야당과의 협치 의미를 동시에 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창의성과 상상력이 새정부 인사에 투영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야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신(新) 중도주의 노선’에 얽힌 일화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좌파 속의 우파'를 외치며 새로운 중도노선으로 16년 넘게 장기 집권하던 헬무트 콜 총리를 꺾고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제7대 독일연방 총리를 지낸 인물.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으로 녹색당과의 연립정권을 이끌면서 우파와 좌파를 절충하며 이른바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신 중도주의'를 지향하면서 유럽 중도노선의 지도자로 각광받았다.

신중도주의 노선의 골자는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한편 사회 복지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지만 분배보다는 생산에 역점을 두어서 기업 경제에 유리한 투자 조건을 조성하는 것.

한 마디로 경제 성장이 없으면 일자리도 사회 복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반면 국가의 힘이 줄어드는 추세에 맞추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취하자는 취지.

사실 슈뢰더 총리가 집권할 당시 독일은 덩치만 큰 약골에 지나지 않았다.

통일에 수반된 엄청난 비용으로 국가부채가 1조 1000억 유로로 2배 이상 늘어났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의료, 연금, 실업보험 등이 한계를 드러냈고 성장이 둔화되고 국가경쟁력은 바닥을 쳐야 했다.

통일 이후에 필요한 경제 통합과 사회 통합의 구조개혁도 소홀해지면서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정치적 리더십이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지층의 요구에 반하는 행동도 할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슈뢰더 총리가 정치적 리더십에 관한 소신을 말한 명언이다.

'아젠다 2010 구조개혁 프로그램'은 사민당 출신 슈뢰더 총리가 지지층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실시한 강력한 구조개혁 정책이었다. 기업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채택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연장하자 실업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되었으며 국가 재정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히 우파 정책이라 할 수밖에 없는 '아젠다 2010 구조 개혁'은 당내 반대와 심각한 국민들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슈뢰더 총리는 총선에 실패하고 메르켈에게 총리직을 내어주어야 했다.

"정치인이 인기를 얻으려고만 하면 꼭 필요한 일을 할 수가 없다."

정치인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나라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악역(惡役)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슈뢰더 총리의 신조(信條)이다.

인종갈등을 화해와 통일로 승화시킨 진정한 지도자, 넬슨 만델라(1918~2013) 남아공 대통령 리더십은 어떤가.

그는 반란죄로 27년간의 긴 옥중생활을 포함해 대부분의 인생을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투사로서 투쟁했다. 석방된 후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으로, 나아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모든 민족의 화합을 위해 힘을 쏟았다. 이것이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있게 한 근간이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18년 쿠누 지역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해 일체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불굴의 투사였으며, 무장투쟁 활동까지도 전개하며 싸웠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변하게 되고 1990년에 만델라는 드디어 석방된다. 그리고 그는 백인 집권당인 국민당과 협상하여 1991년 아파르트 헤이트 관련법을 폐지시켰고, 그 후에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선거를 실시하여 신헌법 제정으로의 길을 열었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에 국민당 소속인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오랜 세월동안 인종과 민족간의 갈등과 항쟁으로 고통받아 온 남아프리카에서 억압과 원한의 고리를 끊는 일은 모든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었으나, 이를 실현시키는데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만델라는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며 마침내 모든 민족의 화합을 위한 만민의 지도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피억압층의 상징으로 투쟁해 온 만델라 자신이 남아프리카의 모든 인종과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어 온 국민을 이끈 점을 가장 큰 위대함으로 꼽는다.

만델라는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상 최초로 모든 인종들이 참가하여 실시한 최초의 평등선거에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인종과 종교, 성별, 가해자와 적(敵)까지도 모두 하나로 만드는 평화와 상생의 위대한 승리를 본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