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전라도에 꽃구경을 갔던 며칠 전, 아침 호텔 조식 뷔페식당에서의 일이다. 손님 모두 마스크를 했고 손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어 코로나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음식을 덜어 먹는 집게를 여러 사람들이 만지는 데 따른 대책이지만 조금 불편하긴 했다. 음식을 가지러 몇 번 식당을 가로지르다 보니 왼팔에 기브스를 한 나이든 신사가 음식 접시를 장갑 낀 오른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홀 안에는 여러 명의 깨끗한 복장을 한 남자 종업원들이 보였지만 그 노인에게 특화된 서비스는 없었다.

-쨍그렁!-

결국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다. 종업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즉시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종업원들이 그 남자를 도와줄까? 하지만 그들은 바쁜 듯이 딴 일만 했다.

-초보 장애인이라 더 힘들 거야.-

그쪽을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난 그 분이 왜 뷔페식당으로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심코, 자신이 두 손을 다 쓸 때처럼 생각하고 왔을 것이다. 아니면 장애인이니 종업원이 자신의 접시를 들고서 쫓아다니면서 음식을 덜어 줄 특별대우를 기대했을까? 그러나 그들의 서비스 매뉴얼에는 그런 조항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날따라 저녁 뉴스에서는 장애인들이 합당한 이동권을 주장하는 시위를 하는 장면이 잇달아 방영되었다. 정당의 대표가 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나.

일시적인 장애인도 힘든데 평생을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된다. 노인이 되면 사고가 아니더라도 몸의 여러 부분이 고장 나게 되니 장애인의 처지를 공감하게 될 때가 많다. 나이를 먹으면서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하는 사람도 초보 장애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눈이 나빠지는 사람도 초보 장애인이다. 그 밖에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사람 역시 장애인이 아니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노인 분들이 화를 낼지 모르지만 노인들은 잠재적인 장애인이다. 내가 이 말을 했더니 남편 왈 “그럼, 사고의 위험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장애인이 되는 거네.”라고 말한다. 덕분에 나의 논리는 전 인류적으로 확대되었다.
 
장애인들이 시위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차별에 분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알게 모르게 차별이 무수히 많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차별만이 아니다. 유리 천장에 분노하는 여성과 남성 간의 차별이 있다. 사실 성차별은 오래된 차별이며 서구에서는 엄청난 투쟁 끝에 여성참정권을 이끌어낸 바 있지만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그 덕분에 운 좋게 기본권으로 참정권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참정권만으로 그 차별이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많은 여성 시위가 있곤 한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식사 자리에서 가까운 찻집으로 전원이 이동하게 되었다. 3년 선배 한 분이 근래에 무릎 수술을 받아 불편해 보였으므로 내가 그 분을 부축해서 찻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는 거짓말 안 보태고 한 블록 거리를 30분 정도의 시간을 걸려서 가야만 했다. 찻집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다른 일행들은 차를 주문해서 벌써 마시고 있었다.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했지만 이런 경험을 가지게 된 것을 감사했다. 초보 장애인으로 한참 동안을 살아가야 할 그 분의 고충을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시골에는 이제는 벌써 초보가 아닌 중견 장애인들이 많다.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 시골 할머니들이 그들이다. 그 분들은 유모차에 의지해서 길을 걷다가 힘들면 쉬고 쉬엄쉬엄 운동 겸 이동을 한다. 한 블록 걷는데 삼십분이 아니라 한 시간은 조이 걸릴 것이다. 평생을 집안일 농사일 등 온갖 일을 하면서 인생의 파고를 헤쳐 온 분들이다. 몸이 아파도 내색하지 못하고 버텨왔다. 미리 적당한 운동을 할 만한 의학적 지식이나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병원에 갈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라때는 말이야’라는 유행어가 있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로 시작하는 앞 세대 어른들의 경험에 진저리치는 세태를 말한다. 사람들이 차별을 논할 때는 당대만 생각한다.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말하면 싫어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럽에서, 또 동남아에서의 여성 인권은 100년 전만 해도 참혹할 정도였다. 결혼 당일 폭력으로 초야를 경험하는 여자들도 많았고 집안을 위해서 돈에 팔려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금처럼 여성 지위가 올라간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옛날부터 당연히 그래왔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앞 세대들의 경험도 역사에 속하므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몇 번의 팬데믹을 겪어왔다. 중세의 페스트 때는 끔찍했다. 스페인 독감 때는 더 끔찍했다. 교통기관이 발전되어 있지도 않은 때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환자가 나왔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의 후유증이든 코로나 감염의 후유증이든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질병과 사고가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노화도 한 몫 한다.
초보 장애인에서 중견 장애인으로 다시 평생 장애인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분들이 주위에 많은데 장애인에 대한 차별까지 견디라는 것은 이중의 고통이다. 나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런 모든 편견을 치유하는 근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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