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노사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중립 위치에 있는 공익위원들의 표결로 결정될 것으로 예견된다. 극한 대립을 일삼는 노사가 협상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 심의제도가 형식적이고 낭비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올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지역·업종별 차등 적용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기간 중 최저임금과 관련 “경제 상황을 고려한 합리적 인상”을 약속하면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심의가 시작되자마자 이 문제로 노사가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은 생활 보장을 위한 최저 수준을 정하는 것인데 최저 수준에 업종별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 적용할 수 있다’는 최저임금법 제4조 1항 규정마저 없앨 것을 주장한다.
 
반면에 재계와 사용자 단체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최임위)가 업종별 구분 적용을 전향적으로 논의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제하고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등 등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강조하고 나섰다. 업종별로 생산성이나 경영 사정이 다른데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최임위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운용하고 있는 25개극은 대다수가 업종이나 지역별 차등은 물론이고 직종, 기업 규모, 연령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최저임금을 구분해서 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역별 차등 적용이 현행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지역별 차등은 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러나 업종별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법에 그 근거가 명시되어 있다. 과거에 한번 시행한 적도 있다.

최임위에서 결정된 최저임금은 강제사항이다. 이를 위반하는 고용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319만명이나 됐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15.6%나 되는 규모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1년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아무리 처벌이 무서워도 고용주가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또한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하지 않으면 임금이 낮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등지에서는 이러한 법정 제도가 없는데도 고용주가 높은 임금을 주고 있다. 지불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지나치게 빠르게 인상됐다. 2001~2021년까지 20년간 연평균 8.0%씩 인상돼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 2.2%의 3.6배에 달했다. 명목임금 인상률 4.5%보다도 1.8배나 높았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최근 5년(2017~2021년)동안은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이 무려 44.6%로 세계 주요선진국인 G7 국가들보다 약 1.7배에서 7.4배나 높았다.
 
최저임금법 제18조에는 '의견 청취' 조항이 있다. 최임위는 이 조항에 따라 매년 위원, 연구위원, 사무국 직원 등을 현장으로 보내 이해 당사자들의 생생한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방문'에 대한 위원들의 관심이 무척 저조하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최임위의 현장방문은 17개 사업장에 그쳤다. 그나마 방문 업종이 다양하지 않았고 전체 사업체 중 62%나 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위원들의 관심도 무척 낮아 지난해에 실시된 네 차례 현장방문 중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위원들이 적지 않았다.
 
현장을 방문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데도 현장방문은 위원들의 무관심 속에 이처럼 형식적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니 업종별 임금 실태조사와 같은 기초 자료가 부실한 건 당연하다 하겠다. 모처럼 지역·업종별 차등 적용을 논의하기 위한 장이 펼쳐졌지만 자료 부실 등으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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