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민 기자
▲ 김성민 기자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 검증 작업이 진행되면서 크고 작은 부정선거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고, 후보들의 정당성을 스스로 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다.
 
선관위가 특정 후보에 대한 신고접수를 묵살하려한다면 유권자들은 후보의 도덕성을 검증할 기회를 잃고, 공정한 투표조차 이뤄질리 만무하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다. 시민들은 후보의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할 능력이 부족하다. 대부분 언론의 검증을 통해 후보의 전과 이력이나, 선거 활동의 투명성 등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자의 아내가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내부고발이 언론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용돼 피신고자의 반대세력에겐 방아쇠로 작용될지언정, 우린 겁 없이 당당하게 공익 신고할 의무가 있고, 불이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투사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 당장 내 이웃보다 좋은 환경에 살기 위해 부정부패를 묵인하는데.
 
최근 우리나라 일부 언론사의 ‘정론직필’ 정신은 퇴직자의 제복과 다름없는 먼지 쌓인 과거의 명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중들로부터 언론이 지탄받는 이유는 선거기간 동안 정당의 나팔수나 공격수 역할로 배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후보 검증도 선택적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자녀는 경찰 폭행, 학위 세탁도 문제없다는 주의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 연맹국인 벨라루스의 언론인협회(BAJ)는 1994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2020년 부정선거로 정권을 연장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BAJ 소속 언론인들은 집권 세력의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고,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예상대로 BAJ 소속 상당수는 정권의 탄압으로 체포되거나 조국을 떠나 외국으로 대피해야 했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벨라루스 언론인들은 표현 자유의 상징이 됐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밀착한 28년산 독재자인 루카셴코 대통령에 비하면 우린 무엇이 두려우랴, 최근 경기남부지역에 사는 한 제보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3선에 도전하는 시장 후보의 자서전을 무상으로 배포했다며 지역선관위에 신고했다.
 
제보자는 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후보의 선거 출사표를 암시하는 자서전 300권 이상을 한 중소기업에서 대량 구매한 것도 모자라 다수 직원들에게 무료로 배포한 것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문제는 신고 전화를 받은 선관위의 반응이다.
 
제보자의 물음에 선관위 관계자는 "혐의가 인정되면 조사과정에서 신고자의 실명이 거론될 수도 있는데, 괜찮은가"라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실명이 거론되면 불이익이 뻔한데, 누가 신고하겠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제보자는 부담을 느껴 선관위 확인조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 신고에 생존권을 걸어야한다면, 후보검증은 물 건너간 셈이 아닌가.
 
당시 신고전화를 받은 지역선관위 관계자는 “메뉴얼 대로 했을 뿐, 압력은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은 달랐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부정선거 신고자는 이유불문, 그 어떤 수사기관에서도 실명이 거론될 수 없다”라며 “거기가 도대체 어디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답했다. 검경을 비롯한 모든 수사기관에 확인해도 똑같은 대답뿐이었다.
 
후보의 부정함을 주장한 제보자와 일부 시민들은 “그가 어차피 시장이 될게 뻔하다”며 한숨을 내쉴 뿐이다. 이런 경우 반부패 총괄기관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는 신고자의 편이 되어줄지 궁금해졌다. 돌아온 대답은 차마 제보자에게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허탈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위반 신고는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데 어떻게 보호를 해요?”라고 되묻는 것이다. 그걸 왜 나한테 질문하는지 되묻고 싶지만 삼켜냈다.

답답한 마음에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령을 찾아보니 제3조의2(내부 공익신고자의 범위)에 ‘피신고자인 공공기관, 기업, 법인, 단체 등의 지도 또는 관리ㆍ감독을 받는 자로서 공익신고로 인하여 피신고자인 공공기관, 기업, 법인, 단체 등으로부터 불이익조치를 받을 수 있는 자’라고  명시돼 있다.

아무래도 권익위 관계자는 해당 업무에 능숙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부정선거 신고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지도, 익명을 보장 받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독재국가보다 후보자 검증에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된 건지 자괴감마저 들었다.
 
언론을 통해 논란이 커지자 시장 후보 캠프는 극구 부인하기에 나서면서 ‘사실무근, 악의적 보도’라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다수의 언론사에 뿌려댔다.
 
시장 후보 대변인으로부터 ‘기사를 내리라’는 분노의 통화가 끊어진지 몇 시간 만에 5개가 넘는 해명 보도가 이어졌다. '선거장사'에 나선 언론사들은 추가 취재 없이 시장 후보 캠프로부터 받은 보도자료를 복사, 붙여넣기에 바빴다. 일부 내용은 토시하나 틀린 점없이 그대로 게재됐다. 씁쓸하면서도, 수놓은 듯 나열되는 기사들을 보며 경이롭다 느꼈다.
 
논란이 커지자 선관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자서전을 무상으로 배포한 자는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됐다.

지금도 그 후보는 “정당하게 돈을 받고 자서전을 판매한 것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버젓이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치열하게 3선에 도전하는 그에게 이토록 염원하는 시장이 되길 꿈꾼다면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시민과 미래를 그리는 진정한 일꾼’이 되어달라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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