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지난 주 칼럼에 쓴 두더지 얘기로 많은 분들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결국 두더지는 퇴치됐느냐? 죽었거나 살았거나 두더지라는 놈을 보기는 했느냐?

답은 ‘아닙니다.’ 약을 넣은 곳을 전부 파서 확인하지 못한 채로 그저 두더지의 활동이 둔화되었다고 느끼는 정도에서 단념했다. 신품종이라고 해서 설레면서 심었던 자두와 살구의 교잡종인 ‘심포니’와 ‘티파니’ 두 종류의 플럼코트 16그루 중 13그루가 고사했고 3그루가 겨우 살아남았다. 나무가 내 손힘만으로 쉽게 뽑히는 것을 미루어 보니 이미 두더지가 뿌리를 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죽은 놈들을 빨리 정리해야 했다. ‘동림원’을 돌보며 5년 동안 배운 것 중 하나는 죽은 나무는 새로운 나무와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도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다행히 가뭄은 현충일 전날부터 해갈로 들어섰다. 이틀간 연이어 보슬비가 내린 덕분에 한 달간 마른 땅이 촉촉해졌다. 일주일 후에 다시 비가 내렸다. 잎 끝이 마르던 배롱나무와 단풍나무들이 생생해졌다. 조경수로 동림원 주위에 심은 나무다.

비가 그친 날, 서울서 대학 친구 둘이 내려왔다. ‘동림원’에 들러서는 주위가 놀랍게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안내판의 디자인이 멋지다고 했다. 고맙게도 ‘동림원’ 주 안내판 글귀의 내용은 그 친구들이 도와준 것이다.

한창 열매가 무르익은 앵두나무 앞으로 안내했다. 과일나무 중 열매가 가장 빨리 익는 나무다. 빨갛게 달린 앵두를 보고는 한 친구가 말했다.
“정말 죽신하게 많이 달렸네.”

의아했다. ‘죽신하게’? 무슨 뜻이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친구가 도리어 놀랐다. 그런 말 모른단 말이야? 휴대폰의 검색 엔진으로 뜻을 찾아봤다.

-죽신하다-... 마음에 만족스럽거나 흐뭇할 정도로 많다.
예로 –죽신한 묘향산- 이라고 묘사한 시의 한 구절도 있다.
(제목 백두산 천지, 백기완 작)

어느 검색엔진에는 북한말이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 그 친구의 시부모님 고향이 북한이니 아마 자연스레 그 말을 썼나 보다. 죽신한 앵두나무.... 죽신한 묘향산... 신기했다. 묘향산엔 나무가 많은가 보다.

친구들은 텃밭이며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즐거워했다. 우리 셋은 다시 젊은이로 돌아간 듯 했다. 옥수수가 잘 자라고 있는 텃밭 한 구석을 보던 친구가 갑자기 서러움을 토로했다. 지난 가을, 어떤 모임에서 한 여자가 생 옥수수가 가득 담긴 박스를 선물 받았다고 자랑했는데, 그 박스는 자기도 그전에 매년 같이 받았던 물건이었단다. 그런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자신이 그 선물 받는 대상에서 제외 당했다는 것임을 그제야 알았단다. 남편을 잃어서 마음 아픈 자신을 동정하기는커녕 일부러 자기 앞에서 자랑을 하는 그 여자를 보니 너무 기가 막혔다고.... 속이 상해서 며칠을 잠 못 잤다고....

우리 모두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떤 해결책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먼저 ‘죽신하다’ 라는 표현을 썼던 친구가 한 마디 뱉어냈다.

‘참, 그 인간 데데하다.’

데데하다고? 내가 아는 표현이었고 더 이상 이 표현이 들어맞는 경우가 없을 것 같았다. 자랑했다던 여자가 정말로 데데하게 느껴졌다. 데데한 인간.....

그렇게 말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언어란 인간의 첫 번째 표현 도구이다. 언어가 없었다면 인간사회는 흐느낌과 포효로 가득 찼을 것 같다. 한 마디 단어가 주는 카타르시스! 그 위대한 힘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조상에게서, 그리고 더 먼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언어의 힘이 느껴졌다. 데데한 ‘사람’도 아닌 ‘인간’이란 표현도 기가 막힌다. 홍익인간.... 같은 경우, 고매한 ‘인간’을 가리키는데 ‘데데한’이란 부정적인 표현에 어떻게 또 ‘인간’이 등장하는 것일까?
 
다음날 우리 부부와 친구까지 네 사람은 우리가 작년 말에 구입한 전기차를 타고 익산까지 먼 자동차 여행길에 올랐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우리로서는 모험이었다. 70대 중반에 자동차를 손수 운전해서 300킬로를 달린다?... 과연 가능할까? 피곤해서 다음 날 여정을 망치진 않을까?

익산이 어떻게 선정되었냐고? 서울 올라가는 KTX 차 칸에서 익산을 소개하는 책자를 보자마자 가보고 싶어졌다. 백제의 흔적 중에서 부여와 공주는 몇 차례 가보았지만 익산은 생소했다. 그 곳에 천도하려다 만 왕궁 터가 있다는 것, 동아시아 최대의 탑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두 기의 석조여래 입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었다. 흔히 고도리 석불 입상이라고 부른다는데 4미터 높이의 헌칠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쌍의 화강암 축조물이다.
 
각각 남과 여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일 년에 한 번, 섣달그믐 자정에 견우직녀처럼 만나 사랑을 하고 돌아간다는 극히 인간적인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니 더욱 흥미로웠다.
 
익산 여행은 행복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날은 익산 국립박물관과 근처에 있는 두개의 탑을 보았다. 다음 날은 백제 무왕 부부의 무덤으로 알려진 쌍릉을 들러 5층 석탑이 남아 있는 왕궁리로 향했다. 가는 도중 고도리 두 개의 석불을 만난 것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다.

잠깐, 여기서 맛집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은 보는 것 못지않게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익산은 더구나 맛의 고장 전라도에 있는데...

친구 둘은 저마다 익산에서 제일 맛있는 곳에서 제일 비싼 음식을 우리 부부에게 대접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한식집 하나를 골랐다.

이천에서도, 일산에서도, 들르던 식당과 이름이 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던 날 저녁 식사를 자신만만하게(?) 제일 비싼 코스로 예약을 한 것이 실수였을까? 아님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 요리부터 부실했다. 호박전은 식어 있었고 버섯전은 두개만 올라와 있었다. 다음부터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예약을 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점심 식사 때는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가 차를 댄 곳의 주차 요원 아저씨가 익산 최고의 청요리 집을 소개해 줬다. 거기서 우리는 정말 맛있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친구가 외쳤다. “정말 죽신하다. 얘! 어쩜 이렇게 양도 많고 맛있니?”

친구들을 바래다주려고 서울행 고속 터미널로 가면서 어제 저녁 식사 턱을 낸 친구에게 내가 소곤거렸다.

“미안하다. 어제 그 집은 정말 데데했어.” 그 말을 하니 저희들끼리 이미 그렇게 말했었단다. 도리어 내가 미안해 할까봐 말을 못했다고...

하지만 어떤 일에도 ‘옥에 티’가 없을 수 있으랴.

그렇게 익산 여행은 추억의 한 장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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