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유럽연합(EU) 의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한동안 원자력 발전에 반대했던 세계 주요국들이 다시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식 폐기하고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원전 부활을 선언했다.
 
그러나 EU 의회는 오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확보하는 경우와 2045년까지 건축허가를 받는 원전만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기로 했다. 엄격히 평가할 때, 원전은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어 내고 천연가스 발전은 온실가스인 메탄을 배출하기 때문에 두 개 모두 완벽한 친환경 에너지로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이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이들은 친환경 투자기준인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등으로 야기된 작금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도기적 역할을 할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시 말해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신재생 에너지만으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석탄 등 다른 연료에 비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원전과 전연가스 발전에 일정 기간 기대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들어 별다른 원전 사고가 없었던 것도 이같은 결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원전을 사양 산업으로 취급해 온 미국은 물론이고 후쿠시마 사고가 있었던 일본까지도 원전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향후 15년간 최소 150기의 원전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현재 녹색 분류에서 제외하고 있는 원전을 오는 8월까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물론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와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 유럽연합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조건을 내걸고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체코와 폴란드 등 다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려는 우리에게 큰 도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원전은 친환경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친환경으로 인정받으려면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완공해야 하나 아직 부지 선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리장 설치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부지 선정에서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 시설 확보까지 무려 수 십년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비록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더라도 신재생에너지 발전에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새로 도입한 발전설비 가운데 84%는 재생에너지였다. 이에 따라 10년 전 20%였던 전 세계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이 28%까지 늘어났다. 반면에 원전은 12%에서 10%로 줄어들었다. 재생에너지가 원전의 3배나 된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발전 가격이 원전이나 석탄발전보다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 국제사회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증은 지난해 기준 6.7%에 불과하다.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RE100에 동참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다. RE100이란 기업이 생산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 전부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애플과 구글을 비롯해서 전 세계 35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더구나 이들 기업은 이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과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RE100 동참이 점차 강요 아닌 강요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이 열악해 RE100 가입이 더딘 편이다. 삼성의 경우에도 해외사업장의 경우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가능하지만 국내사업장에서는 그렇치 못하다. 우리 대기업과 납품업체들이 RE100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2040년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의 수출이 최대 40%까지 급감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원전이 최우선으로 강조되면서 신재생에너지의 입지가 작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나 연구가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큰 그림으로 볼 때 친원전 정책으로의 전환을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는 처지다.
 
EU 회원국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30~40% 이상 달성한 나라들이 많다. 특히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을 80%까지 높이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 중일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의 비중을 적절히 배합하면서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하겠다. 그래야만 한국만 뒤처질 거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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