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생일날 쌀밥에 쇠고깃국’ ‘밥이 보약’ ‘밥심으로 산다’ ‘초근목피(草根木皮)’ ‘보릿고개’ ‘절량농가(絶糧農家)’
 
“왠 생뚱맞은 소리냐?”는 소리 들을 셈 치고 쌀 얘기를 하고자 한다. 20,30,40대야 쌀 얘기에 별 관심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1950~60년대를 살아온 중년 이상의 세대에 쌀은 절실한 말로 다가온다.

생일이나 되어야 쌀밥에 소고깃국 먹을 수 있는 국민이 태반이었다. 밥이 보약이고 힘의 원천인 시대가 있었다.
 
봄이 되면 벌써 쌀독이 바닥났다. 보릿고개다. 농가에서 마저 쌀(식량)이 떨어져 절량농가가 속출했다. 그래서 풀 뿌리 나무 껍질을 벗겨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초근목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논 밭으로 일하러 나갔다.
 
초근목피 시대가 있었다
 
8월 18일은 ‘쌀의 날’이다. 농협과 농림식품수산부가 만든지 8번째 쌀의 날이다.
이른 햅쌀이 선보이기 시작하는 즈음이다.

쌀 미(米) 한자를 풀어놓으면 8(八)자 두 개에, 10(十)가 있어 8월 18일이다.
 
이 밖에도 쌀 미(米) 자를 분해하면 (八 十 八)이어서, 모를 심고 수확하기까지 88번의 정성 담긴 농부 손길이 필요하다는 뜻도 담겨있다.

쌀 한 톨을 만들어 내려면 일곱 근의 농부 땀이 필요하다는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옛말도 있다. 우리에게 쌀은 그토록 소중했다.
 
쌀은 우리에겐 주곡(主穀)이었다. 삶의 원천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는 쌀 부족이 심각했다. 해마다 50만~70만톤의 외국 쌀을 도입했다. 흉작이 들어 심할 땐 90만톤도 수입했다.

당시 우리 생산량은 연간 350만톤 정도. 식량 대외의존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준다.
 
피 땀 어린 주곡자립
 
정부와 농민이 혼신의 힘을 다해 쌀 자급(自給)을 달성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12년이었다. 농촌진흥청이 다수확 신품종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65년, 쌀 자급자족으로 주곡자립을 달성한 해는 1977년이다. 신화창조였다
 
우리 연구진은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와 협력하여 신품종인 IR667을 1967년에개발한 데 이어 획기적인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병충해에 약하고 밥맛이 떨어졌다.
 
그 후 연구진의 피나는 노력으로 맛도 좋고 병충해와 냉해에 강한 다수확 품종 노풍 유신 밀양 수원 등이 잇달아 개발된다.
 
필리핀은 기후 여건상 쌀 4모작이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4년이 소요될 품종개량 육종연구를 그곳에선 한해에 가능, 새 볍씨 개발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IRRI가 필리핀에 소재한다.

‘기적의 볍씨’ 개발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드디어 녹색혁명을 달성한다. 반만년 만에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한국은 세계 최고의 쌀 다수확 기록을 세운다. <注: 코리안 미러클 3 – 숨은 기적들. 농촌근대화 프로젝트, 새마을운동...나남출판사>

이로서 농촌 농민의 소득증대 자립시대가 열린다.
 
그후 80년대에 들어 미국의 쌀 시장 개방압력으로 쌀 산업은 위기를 맞지만 그럭저럭 넘긴다. 복병은 따로 있다. 급격한 쌀 소비감소와 재고과잉, 이에 따른 생산지 쌀값 하락의 문제가 발생한다.
 
계속되는 쌀 산업 위기


2021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6.9kg으로 1991년 116.3kg에 비하면 30년 만에 절반에도 못미치게 낮아졌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는 155.8g으로 즉석밥(200g) 한 개에도 못 미친다. 한사람이 하루에 밥 한 공기도 먹지 않는 셈이다.
 
그러니 쌀 재고가 늘어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산지 가격 또한 하락세를 막기가 어렵다. 정부와 농협이 나서서 수매, 시장에서 격리한다지만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쌀 생산을 무턱대고 줄이기도 어렵다. 농가 소득 문제도 걸려있고, 만약의 사태를 고려한 식량안보와도 직결된다.
 
쌀 산업은 다양한 공익기능도 제공한다. 집중호우 기간에 논에 물을 저장함으로써 홍수조절 역할을 한다.

벼가 자라는 동안 논은 공기정화와 환경보전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직면하고 있는 지구촌의 식량위기 극복에 한국이 적극 나서달라”는 데이비드 비즐라 WFP(세계식량계획)사무총장의 제안에도 우리가 답할 때다.
 
쌀 산업 선진국의 역할 고려할 때
 
최근 방한했던 비즐라사무총장이 전한 세계 식량위기는 이렇다.

극심한 식량위기에 처한 인구가 전 세계 3억4500만명,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인구는 8억2800만명, 45개국 5000만명은 기근 직전 상태다.
 
우리나라는 58년 전인 1964년 WFP와 FAO(유엔식량농업기구)등 국제기구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아 식량부족에 대처했다.

그 후 20년만인 1984년에 한국은 원조국에서 조기 졸업했고, 이제는 상위 15위의 식량 공여국이다.
 
식량자급을 최단기간에 달성한 한국은 개도국의 성공 모델이다. 이러한 빛나는 경험을 후발 개도국에 전수하고 식량 나눔을 적극화할 필요가 있다.
 
쌀의 날을 맞는 한국의 농민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아울러 원조받은 쌀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과거를 우리가 잊어선 안된다.

쌀 산업 발전과 생산 잉여국으로서의 지혜로운 해법을 머리 맞대고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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