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내린 집중호우로 서울 등 전국 곳곳에 땅이 꺼지는 싱크홀(sink hole)이 급증했다. 이번 주에 서울에서 접수된 땅꺼짐 신고만도 무려 1000 건이 넘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대로 한복판  횡단보도에 큰 구멍이 생기는 가 하면 논현동에서는 골목을 달리던 트럭이 그대로 싱크홀에 처박히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관악구 신림동에선 땅꺼짐 현상으로 도로가 소실됐고 동작구에서는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덜컹거리며 한쪽으로 주저앉아 승객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일도 전개됐다.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내려앉으면서 사람과 자동차, 건물 등을 빨아들이는 싱크홀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인공적으로 생긴다. 자연 발생 싱크홀은 주로 물에 잘 녹는 석회암과 백운암, 암염 지대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국토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있는 우리나라는 땅 속에 빈 공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은 비교적 안전할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실상은 사흘에 두 번 이상 꼴로 싱크홀이 발생,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도심에서 인공적인 지반 침하 현상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2021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지반 침하는 1176건에 달했다. 사흘에 두 번 이상 발생한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여러 대도시에서 지반 침하 현상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심의 지뢰밭 싱크홀 공포가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된지 오래다.
 
 지하는 물과 토사, 암반 등으로 오랜 기간 다져져 안정적인 구조로 지반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하 굴착작업을 하게 되면 지하수의 변동에 의해 토사가 물과 함께 흘러내리면서 공동이 생기고 결국은 지표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싱크홀 발생 원인을 보면 대부분 자연적이 아니라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공사 등으로 지반구조가 파괴되거나 상하수도 배관의 노후화로 인한 누수에 의한 것이다. 이번처럼 집중 호우 등으로 지반구조가 변화하면서 발생하기도 한다. 
  
 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싱크홀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인공적으로 생기는 싱크홀은 사전 예방하면 막을 수 있는 인재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91.2%가 전체 면적의 16%에 불과한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지반 침하로 인한 붕괴사고가 대규모 인명 및 재산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또한 지반 침하 사고의 30%가 장마와 태풍이 다가오는 여름철(6∼8월)에 발생한다.  여름철 월평균 발생건수가 350~500여 건으로 겨울철의 100여 건, 봄·가을의 200여 건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는 집중호우 등으로 지반이 약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집중호우에 따른 지질 변화가 예상돼 앞으로 땅 꺼짐 현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도심에서 일어나는 지반침하는 무분별한 지하공간 개발로 인한 ‘인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스관과 같은 매설된 관로 현황과 연약지반, 지하수 깊이, 토양 성질에 관한 정보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 긴요하다. 하지만 2015년 시작된 ‘지하공간 통합지도 구축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하공간 통합지도 구축사업은 지하에 매설된 가스관·상하수도관·통신선 등 15가지 정보를 3차원 입체지도로 구현하는 사업이다.  지하수에 대한 기초자료 확보 역시 정부가 1990년부터 시작해 30년 넘게 조사를 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아직까지도 전국 조사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등 대도시는 도심지 땅 부족으로 갈수록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GTX(광역철도)건설 등으로 지하 생활공간은 계속 확장되는 추세다. 그럴수록 싱크홀과 같은 안전사고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땅속 정보를 낱낱이 알리는 지반 조사 작업을 서둘러야 하겠다. 아울러 도심 지반침하가 주변 부실공사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거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공사현장도 보다 엄격히 관리해 나가야 하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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