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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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선을 구울 때처럼 섬세하고 신중한 자세로 정책들을 돌보겠다”
이 말은 노자(老子)의 도덕경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다루는 것과 같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정책(생선)을 함부로 다루어서 국민이 고통받고 피해를 입는(생선이 상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국가를 운영하는데 “국민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도 헛되지만 않는다면 감동적이다.
대통령은 또 밤 낮 없는 시위 소음으로 고통받는 전임자(문재인 대통령) 사저 부근에 “직접 찾아가 고충을 들어라”고 경호실에 지시했다.
이 지시 이후 곧바로 지나친 시위가 사라지고, 문대통령의 집밖 산책 모습도 나타났다.
홍보 부재라는 지적으로 새 홍보수석에 앉은 김은혜는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의 기대와 바람을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만 지켜져도 그의 역할은 기대 이상일 것이다.
이 와중에서 우리를 슬프고 가슴 아프게 하는 두 사건이 잇달아 매스컴을 통해 전달됐다.
지난번 수해 때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40대 자매와 어린 딸의 죽음이다.
지병이 있는 70대 노모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 언니, 열세 살짜리 딸까지 4인 가족을 백화점 면세점 협력업체 판매직으로 일하는 40대 여성 가장이 부양했다.
수마가 반지하를 겹쳐 3 가족이 희생됐다. 그때 노모는 현장에 없어 피해를 면했다.
며칠 뒤엔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이 숨진 지 한참 만에 발견됐다. 엄마는 암 투병 중이고, 두 딸은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세 모녀가 모진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였다.
국민소득 3만달러 한국에서 빚어지는 비극
이 두 비극을 보면서 국민소득 3만 달러인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부끄러움을 감추기가 어렵다.
칼럼 머리에 정부 최고위층 사람들의 발언을 올린 이유는 바로 이 두 비극을 보면서 정치를 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제발 민생 챙기는데 게으르지 않았으면 하는 절실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림동 반지하 비극이 알려지자 서울시장은 반지하 주거를 점차 없애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 공급하고 임대료도 지원한다는 얘기지만 현실 모르는 소리다.
임대주택을 주어도 살 형편이 못될 뿐 만 아니라 생계 터전을 떠나기도 힘들다. 탁상공론식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
잘 못 판단하고 졸속으로 추진한 정책 때문에 국민이, 국가가 입은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은 지금도 ‘잘 했느니’ ‘잘 못했느니’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보를 막았다 텄다 하기를 수 차례 반복하며 나라 세금을 물 쓰듯 해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脫)원전 정책은 5년 만에 없었던 정책으로 돌아간다. 그뿐인가,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정책과 각종 세제(稅制)는 물론 이른바 검수완박도 정권 교체와 함께 사라질 운명이다.
정권 바뀌면 사라지는 졸속 정책
잘못된 정책들이 대부분 정상화의 길로 바뀌는 것 같다. 하지만 반발도 많다. 이를 추진해온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정상화의 걸림돌이다.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나 다름없는 4대강이나 탈 원전 정책들을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 즉흥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고, 향후 국민이 부담해야 할 짐이 되고 있다.
4대강 사업도 시행 타당성이 없지 않을 터. 그러나 국민적 합의 없이 대통령의 고집 소신만으로 추진함으로써 지금도 타당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탈원전은 더욱 그렇다. 문대통령이 몇 사람 말만 듣고, 책 몇권 읽고 탈원전 정책을 밀어 붙였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만 5세 취학 학제 개편을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거둬들인 새 정권도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경찰국 신설 문제도 검수완박 보완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이지만 좀더 국민 의사를 존중하고 경청해가며 추진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작은 생선 굽는 자세’로, ‘국민 숨소리 하나라도 경청하는 자세’로라는 대(對)국민 약속 하나만이라도 지키길 윤석열 대통령과 그 참모들에게 간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