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慧眼·연구진 노력 등 民官軍 산업협력의 結晶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건군(建軍) 74주년을 맞은 지난 1일 국군의날은 역사적으로나 대내외적으로 뜻깊은 날이었다.

대한민국이 마침내 세계 6대 군사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물론 순수 국산 기술로 생산한 무기를 전 세계에 수출하며 대한민국 국방력의 우수함을 알리고 있는 ‘K-방산(防産)‘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이 한국의 무기 수출에 부러움을 드러냈겠는가.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닛케이)은 최근 '한국 무기수출 3배, 8위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작년 한국의 무기 수출이 전년의 2배로 늘어난 70억 달러 수준에 달했다며 올해 수출액은 2020년의 3배 가까운 100억 달러로 증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의 2017~2021년 무기 수출은 2012~2016년의 2.8배로 늘었다. 이 기간 글로벌 무기 수출 규모에서 한국의 순위는 14위에서 8위로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황을 지켜본 국가들이 최첨단 병기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도 적의 침공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한국제 무기의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닛케이는 특히 한국의 경쟁력으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주문형' 수출을 진행하고 있는 점을 꼽으며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 방산의 도약(跳躍)을 세계 각국 언론들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CNN은 “한국이 폴란드와의 대규모 무기수출 계약으로 ‘방산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산 무기가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세계 방산시장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미국의소리·VOA), “한국이 세계 방산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일본 요미우리·讀賣)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1∼2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국제 방산전시회이자 국내 최대 규모 지상 분야 방산전시회인 대한민국방위산업전(DX 코리아 2022, 육군협회 주최, 디펜스엑스포·군수산업연합회 주관)은 ’K-방산‘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폴란드에 수출 대박을 터뜨린 K-방산이 품질보증 가성비 높은 수출 경쟁력으로 위용을 떨치자, 특히 러시아 위협을 실감하는 동유럽·중부유럽을 비롯한 중동·동남아 등 해외의 군과 국방 당국이 이번 DX코리아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DX코리아에 군이나 국방부 대표를 보낸 나라가 30개국에 이른다.

특히 북으로 폴란드, 동으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의 위협을 절감하는 중부 유럽 국가 중 하나로 폴란드가 FA-50 경공격기, K2 흑표전차, K9 자주포 등 40조원 대에 이르는 K-방산 구매로 전력을 강화하는 데 자극받아 무기 현대화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전세기 편으로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K-방산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4강'을 노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진입으로 방산 산업을 전략 산업화하고 방산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7∼2021년 세계 방산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8%로 8위였고 4위 중국 4.6%, 5위 독일 4.5%, 6위 이탈리아 3.1%, 7위 영국 2.9%로 격차가 촘촘해 거리가 멀지 않다.

2012∼2016년과 2017∼2021년의 점유율을 비교한 성장세는 한국이 177%로 2017∼2021년 점유율 상위 25개국 가운데 독보적 1위여서 이 추세라면 4강은 꿈이 아니다.

이제는 이른바 K-방산(방위산업) 열풍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지난 7월 27일 폴란드 국방부와 K2 전차 980대(18조 원), K9 자주포 670문(4조 원), FA―50경공격기 48대(3조8000억 원) 납품 등에 대한 기본계약을 맺었다. 총사업 규모는 28조 원이고, 탄약·부품 등을 포함하면 총 수출액은 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상 최대 규모의 역대급 무기 수출이다.

UAE, 호주, 이집트도 대규모로 수출 계약을 맺었다.

작년에 72억 5000만 달러였던 방산 수출액이 200억 달러를 넘어설 기세다.

한국 무기가 세계 각국의 호응을 얻는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가성비(價性比)’ 때문이다.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경우 미국, 독일, 이스라엘 등이 개발한 동종 기종과 성능이 대등하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한 결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무기’를 독자 개발한 덕분이다.

주요 무기별로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춰 수요자가 원하는 시기에 최대한 맞춰서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K―방산의 강점으로 꼽힌다. 북한의 전면도발에 대비해 1970년대부터 신속하게 주요무기를 양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국산무기 납기(納期) 신뢰도를 높이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유지보수 등 후속 군수지원 측면의 강점도 ‘방산 한류(韓流)’의 주된 요인이다. 한국산 무기는 타국 기종보다 운영 유지비가 낮은 데다 오랜 기간 운용 경험과 이력이 축적되면서 부품조달 등 후속 군수지원도 용이해서 한번 구매한 국가는 다른 기종 도입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또한 K9 자주포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의 선제공격을 받고도 즉각 응사하는 등 국산무기의 실전 성능이 검증된 점도 ‘K-방산’의 신뢰도 제고에 톡톡히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세계 각국이 서방세계와 강대국에 지나치게 편중된 무기 구매처를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국가 브랜드와 신뢰도가 높은 한국산 무기를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러시아나 중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 때문에 미국, 유럽의 무기를 구입하기가 껄끄러운 아시아, 유럽국가들에 한국산 무기는 훌륭한 대안(代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의 방산 수출은 피복·장구류나 탄약·소화기 등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저가 로테크(low-tech) 장비 위주였다. 이후 국내 첨단산업 역량이 발전하고 이를 무기 체계 개발에 적용하면서 K-방산은 세계 첨단 수준의 강력한 무기 체계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소총이나 탄환을 산다면 굳이 첨단 체계가 필요하지 않고 가성비가 주요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방의 핵심 주력 장비인 전차·자주포·전투기 등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정상적인 국력으로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국가라면 가성비만으로 주력 장비를 결정하진 않는다.

폴란드의 선택을 봐도 명확하다. 폴란드는 무려 230대의 전차와 110문의 자주포·다연장로켓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규격 장비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 따라 러시아와 곧바로 대치해야만 하는 현실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하고 우수한 무기 체계를 갖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시작은 미미했다. 1975년 ㈜풍산이 필리핀에 M1 소총 탄약을 수출했다. 고작 47만달러였다. 그마저도 미국의 전폭적인 기술 지원 덕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K-방산이 이제는 세계 무기 수출 시장의 2.8%를 차지해 미국(39%), 러시아(19%). 프랑스(11%). 중국(5%)에 이은 세계 8위 방산 강국이다. 올해에는 독일. 영국.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5위로 진입할 전망이다.

대한민국의 방산은 시대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국내 방위산업은 미국의 닉슨 독트린과 베트남 공산화 소용돌이 속에서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일환으로 태동했다.

‘싸우며 건설하자’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9년 1월 1일 신년 휘호(揮毫)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공산당과의 싸움은 말로 싸워서는 아무 소용 없고, 오로지 힘으로 싸워야 한다.”

당시 ‘70년대 적화통일’을 목표로 거듭된 북한의 도발과 만행에 맞서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방과 건설이라는 두 가지 과제는 결코 서로 떨어진 두 개의 임무가 아니며, 국방이 즉 건설이요, 건설이 곧 국방이라는 얘기다.

적수공권(赤手空拳)이나 다름없는 처지에서 시작한 방위산업 육성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경제력이 취약한 데다 전반적인 기술력마저 미흡한 상황에서 다른 것도 아닌 국방 관련 기술을 습득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우방국 미국도 번번이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 등 군사력 강화에 제동을 걸거나 경원시(敬遠視)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국가 지도자의 혜안(慧眼)과 용단(勇斷), 정부 및 방위산업 관계자, 연구진 등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갖은 난관(難關)을 극복하기에 이른다.

그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결과가 이제 본격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큰 뜻을 세운 지 반세기만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The beginning is weak, but the end will be great)’라는 성경(聖經)말씀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우리의 방산 요체(要諦)는 ‘자주국방의 초석(礎石)’이라는 기치 아래 1970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ADD). 일찍이 중화학공업 육성과 맞물려 국방에 필요한 병기·장비 및 물자의 조사·연구·개발·시험 등을 담당하는 국방과학기술 연구기관을 출범시킨 것.

‘대전기계창’으로 알려진 ADD는 공대생들에게 선망의 직장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소총, 화포, 탱크까지 생산하고 있던 북한에 비해 우리의 기술은 초라했다. 한국형 K2가 첫 작품이었다. K2 소총은 세계 10여개 국가에 수출한 효자 방산 제품이다. 민군(民軍) 협력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1970년대 소총·야포 등 기본 무기 제작을 발판 삼아 1980년대엔 독자적인 무기 체계 개발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K1 전차와 K200 장갑차를 자체 개발했고 해외 기술 도입을 통해 제공호와 장보고급 잠수함도 만들었다. 1990년엔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첨단 정밀무기 개발과 생산에도 힘을 쏟았다. K1A1 전차와 K9 자주포 등을 개발 생산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의 냉전(冷戰) 종식 이후 전차, 자주포 재래식 무기 생산을 포기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됐다.

재래식 무기의 대량 생산이 더욱 절실해졌기 떄문이다. 우리가 개발한 K-방산의 종류도 화려하다. 1990년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한국형 장갑차, 차량, 함정 등의 주력 무기가 이제는 폴란드에 수출하는 K2흑표 전차, K9 자주포, FA-50경공격기 등으로 탈바꿈했다. UAE에 수출하는 천궁∥라는 지대공 요격 미사일도 있다.

세계 8번째로 자체 개발하고 있는 초음속 전투기 KF-21(보라매) 도 K-방산의 대열에 합류했다.

스텔스 기능까지 갖춘 완벽한 4.5세대 전투기로 2002년 T-50 고등훈련기(골든 이글) 개발 이후 20년만이다. 방산 강국 이스라엘이나 대만보다 앞서서 이룩한 성과다. 해상에서 탄도미사일을 탐지 추적하는 것은 물론 직접 요격까지 할 수 있는 차세데 이지스 구축함도 개발했다.

한편 한국 방산이 지금의 위치를 넘어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첨단기술 기반의 질 좋은 부품 개발 등을 위한 강(强)소기업 육성과 함꼐 업체 주도의 개발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해외에서 자국 상황에 맞게 무기를 개조·개발하도록 요구할 경우, 화기나 탄약류를 개별 업체 차원에서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현실 에서는 적절히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금처럼 정부가 지원 대상과 범위를 선별하는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대처가 쉽지 않다. 오히려 방산 업체들의 자유로운 연구 개발 생태계를 보장해 주는 게 수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큰 과제는 과거의 ‘방산 비리(非理)’ 프레임을 넘어서는 것이다. 비리를 털기 위해 과도한 감시와 압박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꼭 필요한 투자와 기술 개발마저 위축되곤 했었다. 정부의 역할은 비리 가능성은 철저히 차단하되 세계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조성해 주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원스톱 서비스 등 해외 고객 유치를 위해 보조를 맞춰나갈 때 K-방산의 미래도 함께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업계와 군 안팎에선 수출 주력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K―방산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사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체상금(납기지연벌금)의 대폭 감면과 불합리한 방산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세계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내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을 방위산업에 접목해 국산 무기장비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연구 인력과 기술,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는 ‘컨트롤타워’ 설치 등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발표했지만 정작 방산에 전폭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없어 방산기업들은 여전히 속만 태우고 있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민간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고 국방에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도 폐쇄적인 방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기업이 투자하기 어려운 최첨단 국방기술 연구에 대한 혁신적인 국가 정책적 조치를 모색해야만 저비용·고효율의 국가 차원 자원 절약형 군사 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과거에 맞춘 법률과 제도를 현재와 미래에 필요한 수준으로 개혁해나가기 위해 반드시 방산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실에 방산비서관을 신설해 방산 부문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교통정리를 해나가야 하며, 더 나아가 유야무야됐던 방산진흥원 창설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산 분야도 결국 미래 과학기술 강군(强軍)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방산 자체가 고도의 최첨단 무기 체계를 필요로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관(民官)이 협력해 전체 산업 기술을 선도하는 형태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민군(民軍) 협력과 산업 협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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