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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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도 교체되면 묵은 체증을 걸러내고,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 반성의 기회를 갖는다. 그리하여 새 출발을 기약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서 짧으면 5년, 길면 10년에 정권이 바뀐다. 정권이 바뀌면서 인수인계가 깔끔하면 좋으련만, 극심한 혼란으로 허송세월하니 국민들만 피곤하다.
정치 세력 간 반목과 갈등 반발로 권력을 빼앗기고, 쟁취한 신구(新舊) 권력 간의 싸움은 끝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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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 )과 을(乙)만 바뀐 채 공수(攻守) 교대 양상이다. 내용도 대동소이다. ‘적폐청산’이다 ‘정치보복’이다 라며 싸우는 꼴이 정확히 5년 전 모습 재연이다. 메뉴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황금 같은 정권 초기는 날아가고, 심하면 2~3년씩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다 보면 대통령 임기 중반까지 내닫는 경우도 있다.
임기 중반까지 적폐 청산 논란
문재인 윤석열 두 대통령이 임무를 교대한 지 반년여다. 교체기 혼란은 여느 때 못지않게 혼란스럽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보자. 전 정권 말기에 무리하게 추진했던 이른바 ‘검수완박’은 새 정권이 들어서자 마자 이른바 ‘시행령 통치’로 맞서면서 정면 대립 상태다.
원전 축소 정책은 새 정부가 전면 폐기를 선언했다. 전 정권(前政權)이 역점사업으로 펼쳤던 태양광 산업은 이제 ‘거대 이권’ 의혹에 휩싸여 전방위 조사를 받고 있다.
전 정권이 취해 온 남북문제, 한일(韓日) 관계 등에 관한 정책도 큰 변화를 가져오면서 신 구 정치 세력 간의 힘겨루기가 심하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인사들은 물러나야 한다는 새 정권 측과, 임기가 보장돼야 한다는 구 정권 측 신경전도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대표적인 것이 원전 관련 기관장이다. 원전 정책이 180도 바뀌었는데 탈원전 주의자여서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가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도 어쩐지 어색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갖가지 비리 의혹에 관한 수사는 신 구 권력 간의 가장 첨예한 문제다.
난국 타개 리더십이 안보인다
이렇듯, 어느 한 가지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난제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여 야의 리더십을 발견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거대 야당은 한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당 또한 협치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없다.
여 야 협치 없이는 아무리 정부 여당이 좋은 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거대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 한 관련 입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번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극심한 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정부 여당 하는 꼴로만 보면 지난번 지방선거 때와 같은 총선 승리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대책은 없는걸까.
여 야 간에 통 큰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탁월한 리디십을 발휘하면 좋을 터이다.
자신을 평생 감옥에 가두고 핍박했던 정적을 집권 후 용서와 화해로 감싸 안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같은, 역시 피해자였던 사람이 후에 용서의 리더십으로 화해를 취한 김대중 같은 위인은 없을까.
우리 시대에 그 같은 큰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일단 무리다. 그렇다고 이대로 나라가 혼란을 지속해선 국민 피해가 너무 크다.
과거 청산은 보복 처벌보다 재발 방지에 역점
여 야가 머리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적폐 청산 문제다. 쌓인 적폐는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고인 물 걸러내야 한다. 다만 그 작업이 처벌이나 보복 차원에서 이뤄지면 안된다.
재발 방지에 우선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이를 적출해 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시스템 개발에 역점을 두어야 발전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폐 청산 추진 주체가 새 정권 세력이어선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는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청산위원회’를 구성해서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 차원의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시실 관계에 충실한 공평무사한 백서를 만들고, 이에 근거한 항구적 대책을 만들어 5년마다 반복되는 소모적인 적폐 청산이 사라져야 한다.
예컨대 정권 말기 알박기 인사 같은 것도 원천적으로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새 정부에서 계속 업무를 수행하는 넌센스는 없어져야 한다 .
이미 몇몇 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플럼북)가 시행 중이다. 참고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명백한 형사 범죄라든가,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사건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처벌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정책의 입안이나 추진 과정에서의 오류나 잘못은 적나라한 백서 발간을 통해 온천하에 공개함으로써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 대한 책임추궁으로 만족하면 된다.
그래야만 소모적인 정권 교체기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