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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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매입 등 선심에 기댄 농업서 탈피해야
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과 함께 인근 지역 농민들이 남당리를 많이 찾았다고 한다. 논에는 수확을 앞둔 벼가 널려 있고 이미 추수를 마친 곳도 있었다. 정부가 공공비축미 45만t 외에 비슷한 물량을 추가로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이후 산지 쌀값이 오름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쌀값 걱정이 화제가 될 분위기는 아니었다. 먼 길을 오가면서 나눈 친구들과의 대화 역시 쌀값에 집중하기보다 농촌지역 인구 감소와 지방 중소도시 공동화 등에 쏠렸다.
민주당은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떨어지거나 생산량이 예상 수요를 3% 이상 넘어설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토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나라의 미래와 농업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개정안을 이달 19일 소관 상임위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지난 12일에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야당 몫으로 세워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민의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 1991년 1인당 연간 116.3kg에서 지난해 절반 이하인 56.1kg로 줄었다. 쌀생산조정 등 구조조정을 통해 쌀재배 면적을 줄였지만 소비감소가 훨씬 빨라 만성적인 과잉생산이 지속되고 있다.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며 무리하게 관세화 유예를 위한 의무수입을 선택해 과잉생산 부담이 커졌다. 반면 쌀농사의 기계화율은 다른 작물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져 고령의 농민도 농사짓기가 비교적 수월해졌다. 전체 농가 중 쌀농사를 짓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고 쌀생산액이 여전히 1위를 차지한다.
농촌경제연구소는 민주당 개정안을 시행할 경우 2030년 초과생산량이 64만t에 달해 이를 사들이는데 연간 1조4000억원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연평균 20만t 가량 과잉생산되는 쌀을 사들여 보관하는데 해마다 수천억원씩 세금을 들였다. 이렇게 사들인 쌀은 3년 보관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료용이나 주정용 등으로 헐값에 팔린다. 보관비용을 제하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어 매입예산이 사실상 모두 날아가는 셈이다.
양곡관리법이 바뀌면 정부는 무조건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해야 하므로 쌀농사를 짓는 농가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농업구조조정에 역행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한 ‘방탄 개정안’이라고 꼬집었다.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일부 농민단체들은 최근 성명을 내고 민주당 개정안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공세를 차단하고 농민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묘안이라고 자평하는 듯하다.
그러나 농정(農政)이 농업 퍼주기로 변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반발도 만만치 않다. 보호장벽을 낮추고 무역과 금융 자유화로 가는 글로벌 경제의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은 농업과 농촌을 지키기 위해 지난 수십년간 구조조정 보조와 세금감면 등 지원정책을 꾸준히 펼쳐왔다. 연간 농업보조금이 10조원 규모에 이를 정도다. 연간 41만t에 가까운 의무수입 물량도 사실 국내 쌀농사를 보호하기 위한 무리한 선택이었다. 쌀직불제와 대체작물지원, 축산시설 개선, 귀농 귀촌 지원, 농촌주택 개선, 각종 수당 등 여러 명목으로 보조 및 지원금을 농촌에 투입해왔다. 투입 예산에 비해 성과가 미미한 과잉투자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농업 생산 외에도 수질개선과 토양보전 등 환경보호와 경관, 기후에 영향을 주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인해 농정이 포퓰리즘으로 흐른다는 비판이 고조하면 자칫 농업과 농촌을 보는 국민 공감대가 흔들릴 우려가 없지 않다. 검수완박 입법처럼 몰아치는 거대 야당의 위력으로 개정안이 끝내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통과될 경우 농정 전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농업 보조금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져 농업과 농촌이 여론에서 소외당하는 역효과가 걱정된다.
농민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타산을 앞세울 게 아니라 국민이 납득하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강 기능쌀 등 품질 좋은 다양한 쌀을 생산하고 밀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 재배도 확대해야 한다. 직파재배를 널리 보급해 인력투입과 생산량을 함께 감축하되 한편으로 아직 여지가 많은 쌀가공식품 개발을 공격적으로 지원하는 대안이 요망된다. 쌀에 집착할 게 아니라 농업 생산에 가공 제조업과 서비스를 결합한 6차 산업, 그리고 스마트팜을 통해 농촌의 미래를 여는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쌀 의무매입 등에 쏠리면 농업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농민이 앞장서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생산기반과 경쟁력 강화 등 농정의 변화를 요구하는 공세에 나서야 농업과 농촌이 생존할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