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postmaster@todaykorea.co.kr
기자페이지
감세로 유통기능 키워 충격 흡수해야
금리상승과 집값 하락은 당장 가계와 중소건설회사, 제 2금융권을 옥죄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이 세계경제를 압박하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에 대응, 기준금리를 잇달아 올리면서 해외 수출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중국은 달러 강세와 위안화 약세 속에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져 위기론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도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어렵게 빚을 내 집을 구매한 가계들은 하락장세에서 이자를 부담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부동산 중개시장이 얼어붙고 건설업계와 이사, 인테리어, 가구 등 관련 업계가 도산과 감원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회복기에 들어선 세계부동산시장은 공급에 비해 빠르게 증가한 수요와 저금리 덕분에 10여년간 호황을 맞았다. 문재인 정부는 뛰는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중과에 대출규제로 압박을 더했으나 공급대책에는 소홀했다. 코로나 감염증 확산에 맞서 각종 지원금을 풀고 저금리 정책을 이어갔다. 집값이 폭등할 여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문 정부 5년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아파트값이 금리 인상과 함께 급락하자 시장은 대세 하락기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기울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폭락세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집값이 폭락하고 10만 가구가 넘는 미분양이 쌓여 기업도산이 속출하는 참혹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집값이 급등락을 거듭하며 때로 위기국면을 초래하는 배경에는 불안한 시장 기능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 시장은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기능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주택 수급에서 이 기능은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다주택 보유를 투기라는 관점에서 비윤리적 행위로, 심지어 범법 행위로 몰아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양도소득세를 중과함으로써 민간부문에서 완충 역할을 할 여지를 없앴다. 그렇다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비싼 아파트를 사들여 비축할 여유는 없고 바람직스럽지도 못하다. 유통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민간 여유자금이 집값이 폭락할 때 시장에 들어와 미분양을 줄이고 상승기에는 공급을 확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정부는 ‘다주택=투기’라는 등식을 강요해 보유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일관했다. 때로는 주택정책의 실패로 인한 시장 불안을 민간에 전가하는 논리로 억지 등식을 동원했다.
토지 확보에 한계가 있고 공기가 오래 걸리는 특성으로 인해 어느 전직 장관의 말처럼 빵을 찍어내듯 주택 공급을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금을 중과, 보유와 유통을 압박하면 시장의 완충기능을 회복하기 어렵다. 최근 집값이 크게 떨어지자 주택건설 인허가물량과 착공실적이 동시에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집값이 급락하는 시기에는 민간 여유자금이 미분양 물량을 소화해주어야 공급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건설회사도 안정적인 경영을 기대할 수 있다. 오름세로 돌아서면 민간 보유물량이 유통시장에 나와 급격한 가격변동을 막고 분양시장의 과열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다주택 중과세, 단계적 완화 추진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토부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도 담보대출을 허용하고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을 추가로 해제하는 등 규제완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이 급격하게 식어가는 시기에 부분적인 완화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 미지수이다. 정부는 소극적인 대책을 넘어 세제와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후속대책을 단계별로 준비해야 한다. 다주택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유통시장을 활성화하는 단계도 검토할 때가 왔다.
다주택에 대한 과세가 완화될 경우 부동산 투자가 몰리는 과열을 우려할 수 있으나 이는 단계적인 세율 조정과 정교한 과세를 통해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 ‘부자감세’라는 상투적인 반대 공세는 합리적인 논리를 내세워 여론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미분양적체로 인한 연쇄도산 사태는 결국 양도세를 비롯한 중과세금을 대폭 감면하거나 한시 면제하는 방안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 다주택에 대한 저주를 해소하고 시장의 완충기능을 살리는 좋은 기회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